“예뻐하지도 기특해하지도 마라”

[워커스 28호] 광장이 남긴 평등

[출처: 사진/정운]

“강남 아줌마 하나가 이 나라 전체를 갖고 놀았다. XX년은 자기 판단 없이 정권을 아줌마 손에 쥐여줬다. 그래서 내가 우리가 이 추위에 여기에 나와 이 고생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2차 범국민행동 시민 발언 중)
“올해 병신년이 가고 있다. 병신년과 함께 한 병신년이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2차 범국민행동 시민 발언 중)
“‘친구들과 집회에 나갔다. 어른들은 고등학생이 여기에는 왜 왔어? 기특하네’라고 말했다.” (한 고등학생이 SNS에 올린 글)


광장의 익숙한 불평등

헌정 사상 최대 규모라고 일컬어진 촛불집회는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다. 집회의 외형은 분명 평화다. 하지만 광장의 말은 집회와 다르다. 분노한 시민들은 평화롭게 촛불을 들었지만 발언대에 올라서는 분노를 오롯이 쏟아낸다. 여성을 혐오하고, 장애인을 비하하고, 청소년을 아래로 본 ‘말’을 통해서다. 대통령을 계집, 년, 미쓰 박으로, 최순실을 강남 아줌마로 치환하는 발언이 넘친다. 장애인을 비하하는 용어인 ‘병신’도 자주 쓰인다. 청소년이 참가해 발언할 때에는 ‘기특하다, 예쁘다’며 손뼉을 치는 이들도 많다. 여성, 장애인, 청소년을 타자화하는 구호다.

정치인의 발언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 언론사는 이재명 성남시장이 지난 10월 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박근혜는 이미 국민이 맡긴, 무한 책임져야 할 그 권력을 근본을 알 수 없는 저잣거리 아녀자에게 던져주고 말았습니다”라고 발언한 사실을 보도했다. 이 시장은 이후 ‘신중하지 못한 표현이었다’고 SNS를 통해 사과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전 비대위원장은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대단히 미안하지만 우리 대한민국에서 앞으로 100년 내로는 여성 대통령 꿈도 꾸지 마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박지원 의원 역시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 했던 말이라며, 이를 보도한 신문사에 “그런 의도는 아닌데 그렇게 들렸다면 죄송하다”고 했다 한다.

DJ.DOC의 광화문 촛불집회 무대가 논란이 된 것도 이들의 여성 혐오적 가사 때문이다. DJ. DOC의 곡 ‘수취인분명’에는 ‘미스박 YOU 노답’, ‘잘가요 미스박 세뇨리땅’ 등 성별을 부각시키는 ‘미스 박’이라는 표현이 수차례 등장한다. 곡의 부제도 ‘미스 박’이다. 이 같은 가사 때문에 국정농단 사안에 대한 비판이 아닌 조롱 섞인 혐오 표현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페미니즘 액션그룹 ‘강남역 10번 출구’는 공식 입장문을 통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공간에서만큼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프레임을 함의한 노래가 울려 퍼져서는 안 된다”며 “여성혐오와 민주주의는 함께 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결국 DJ. DOC는 문제가 되었던 일부 가사를 바꾸고 7차 촛불집회 사전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몇몇 이들은 “여성단체가 반대해 DJ. DOC가 무대에 못 오를 뻔했다. 유난이다”며 비판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발언대에 올라온 말은 낯설지만 익숙한 표현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은 ‘그 남자’로 비판받은 적 없다. ‘그놈, 그 아저씨가 나라를 망쳤다’고 욕하지 않는다. 성별과 상관없는 이름과 직위 안에서 비리의 행실이 드러날 뿐이다. 반면 미쓰 박, XX년, 장애인을 비하한 용어는 익숙한 표현이다. 가해자가 여성일 때 혹은 피해자 일지라도 기사는 ‘XX녀’ 등 여성을 제목으로 대상화한다. 광장의 용어가 낯설지 않은 건 여성과 장애인 등 소수자에게 사용된 용어들이 그대로 재현되기 때문이다.

위계로 청소년을 대하는 것 역시 ‘아이들이 뭘 안다고’에서 비롯된 익숙한 표현이다. 정치를 어른의 논의로 한정하는 태도다. 이는 투표권을 요구하고 학교 내부의 문제를 지적하는 학생들에게 어른인 ‘선생’이 ‘잠자코 공부나 해라’던 호통과 같은 맥락이다. 동의하지 않은 문제에서는 입을 닫으라 명령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처럼 비판에 동의하는 발언에는 기특하다고 여긴다. 청소년의 발언을 존중하기보다는 자기 뜻과 다를 때는 건방지다 하고, 같을 때는 어리지만 뭘 좀 안다 하는 태도는 존중, 평등과는 거리가 먼 위계적 시선이다.

노력하는 평등, 광장의 변화

평등의 노력이 시작됐다. 불평등한 발언, 위계적 태도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11월의 1차 2차 집회가 끝난 후 SNS에는 광장에서 겪은 성폭력을 고발하는 글이 넘쳐났다. 당시 SNS를 통해 사람이 많은 틈을 탄 신체 접촉과 ‘여자가~’로 시작하는 모욕적인 말들, 진보를 자칭하는 남초 사이트에 올라온 ‘촛불 여고딩 XX하기’ 게시물을 고발하는 여성들의 움직임이 일었다. 곧 평등한 집회에 대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촛불을 들고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것은 민주주의다. 차별과 비하 없는 국정농단 비판도 민주주의다. 성폭력과 외모품평 없는 광장도 민주주의다”라며 민주주의를 위한 실천을 펼쳤다. 차별과 폭력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집회를 물타기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외려 이를 성찰하고 해결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설명한다.

집회에서 나오는 성차별적 발언에 대한 모니터링도 이어졌다. 불꽃페미액션은 지난달 ‘여성혐오 발언’에 대한 기록을 시작했다. 시국대회가 끝나면 의견서를 통해 불평등한 발언, 상황에 대한 의견을 듣는 방식이다. 불꽃페미액션은 지난 5월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이후 페미니즘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곳이다. 이들은 “박근혜 아몰랑~??????”, “이래서 여자가 정치하면~”, “(경찰과 대치상황에서) 여자들은 뒤로 빠지세요”, “(집회장소를 정리하는 여성참가자들에게) 야 역시 여자가 좋네” 등 차별적 발언을 모으고 있다. 집회에서 들었던 참가자들에 대한 성폭력 발언, 여성참가자를 소외시키고 불편하게 했던 상황에 대한 수집이다.

페이스북 페이지인 ‘평등한 연대’는 평등한 집회를 위한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이들은 집회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성폭력과 위계 폭력을 경계하고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 7가지의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알렸다. 체크리스트는 집회장소와 무대공간에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지, 장애인 화장실이 공지됐는지, 특정인과 특정 집단의 외모 비하와 장애, 질병을 비하하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지 등을 확인하도록 만들어졌다. 평등한 집회에 대해 제안도 한다. 집회를 시작할 때 “오늘 집회는 평등한 집회입니다. 평등 로고송을 함께 부르며 집회를 시작해볼까요?”라고 하거나 “오늘 집회에 대해 일주일 동안 평가 의견을 받습니다. 인권침해, 폭력, 차별 등의 일을 겪으셨다면 000으로 연락주세요. 수고하셨습니다”로 마무리하는 것을 권하는 식이다.

촛불이 계속된다. 광장의 평등을 위한 노력도 이어진다. 집회를 주최하는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은 시민 발언 전 “성별, 장애인, 청소년 관련 비하 발언을 하지 말아 달라”며 “이러한 발언이 이어질 시 발언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안내한다. 하지만 광장의 평등은 쉽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해 국회의원이 투표하는 날, 실시간 중계를 하는 한 방송의 채팅 창에는 ‘여성 국회의원에 대한 외모 품평’이 이어졌다. ‘새누리당이긴 하지만 이쁘다’는 표현에 ‘여성을 대상화하는 부적절한 말’이라는 지적이 있자 ‘예쁜 것을 예쁘다고 하는 게 뭐가 문제냐’라는 반박이 이어졌다. 만 명이 넘는 채팅 창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평등은 쉽지 않다. 차별적 용어와 문제가 있는 발언의 논박은 계속될 것이다. 다만 평등을 향한 노력, 불평등에 대한 불편함과 문제 제기가 광장의 희망 아닐까. (워커스 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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