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프레임 전쟁의 시작

[워커스 28호] 경제로 보는 세상

[출처: 홍진훤]

조기 대선과 꿈틀대는 경제프레임 논쟁

탄핵가결 이후, 정세는 빠르게 바뀌고 있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유력해지면서, 야권 대선 주자 간 신경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집권당인 새누리당은 친박-비박 간 첨예한 갈등으로 분당의 갈림길로 가고 있으며, 다른 쪽에선 ‘혁신보수-중도’ 연합이라는 프레임이 개헌론을 등에 업고 꿈틀대고 있다. 한편 특검수사가 본격화되면서 그동안 의혹에 쌓여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들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고, 이에 또 한 번 격분한 촛불시민들은 이 혐오스러운 대통령을 당장 구속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소리소문없이 가장 먼저 대선 프레임 전쟁의 서막을 올린 이가 있었다. 바로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 논쟁을 촉발했던 김종인이다. 그는 “경제민주화 변질에서 탄핵 사태 시작되었다”고 일갈하면서, 사라진 ‘공약 1번’ 경제민주화를 다시 거론했다. 그리고 곧 “다시 화두는 경제민주화”라고 프레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난 2012년 대선의 중심 화두였던 경제민주화는 ‘대기업 신규 순환출자 금지’, ‘일감 몰아주기 규제’ 정도만을 성과로 남긴 채 ‘경제 살리기’에 밀려 1년 만에 사라지고 말았다. 지난 총선에서 당을 갈아타면서까지 민주당의 키맨으로 재등장한 그가 다시 경제민주화를 던짐으로써 대선 후보들 간의 경제논쟁 촉발이 예견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탄핵 가결 이후 첫 주를 맞이하면서 주요 대선주자들과 싱크탱크들에서 경제정책의 화두를 하나씩 던지기 시작했다. 먼저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는 '포스트 박근혜 게이트'의 핵심 과제로 공정 국가, 책임 국가, 협력 국가를 내세웠다. 그는 자신의 대선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이 국회에서 연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제1차 포럼' 기조연설에서 “대한민국은 불평등, 불공정, 부정부패 등 3불과 결별해야 한다”며 새로운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비전으로는 공정, 책임, 협력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기존에 자신이 내세웠던 ‘소득주도 성장론’의 확장된 버전인 ‘국민성장론’을 제시했다.

문재인과 ‘사이다-고구마’ 논쟁을 일으켰던 이재명 성남시장은 한국판 샌더스가 되고 싶다는 견해를 일찍부터 피력했다. 그가 중앙정부와의 갈등 속에서도 꿋꿋하게 밀어붙였던 청년배당과 여러 무상복지정책들(공공산후조리원, 공공의료원, 교복 지원)은 한 차례 평가단계를 거칠 정도로 안착하고 있다. 특히 ‘기본소득론’과 맞닿아 있는 그의 청년배당 정책은 기본소득 지지자들 사이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고, 기본소득 논쟁을 심화하는 매개가 되고 있다. 실제 이재명은 기본소득 첫 주인공을 뽑는 공개 추첨 행사에 참석해 “기본소득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울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고, 최근엔 “국민기본소득보장제 도입에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재명에게 지지율을 역전당한 채 계속 추락하고 있는 안철수의 경우 기자 인터뷰에서 “개헌 필요하다”고 언급하면서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개헌론을 고리로 연대 및 연합 제안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내비쳤다. 여기에 새누리당 탈당을 전제로 한 유승민과 연대설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또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통일 토크쇼에서 ‘북방 뉴딜’을 주창하면서, “인구구조의 변화와 기후변화, 그리고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경제의 입장에서 북방으로의 진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륙철도를 연결하고 러시아의 가스관을 연결하려면 북한을 통과해야 하는 만큼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확고한 의지, 남북 신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아직 낮은 지지율에 머물러 있는 그는 개헌수준에 가까운 분권형 대통령제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데, “대통령제는 이제 완전한 분권형 정부로 바꿔야 한다”며 “청와대는 내놓고, 대통령 집무실은 정부종합청사로 옮겨, 영국의 다우닝 10번가처럼 국민과 호흡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빈 수레는 원래 요란하다

그런데 이런 프레임들을 하나씩 뜯어보면 그 내용에 있어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문재인의 국민성장론이 김종인의 경제민주화와 어디서부터 차별점이 있는지 분간하기 힘들다. 촛불민심을 타고 공정, 협력, 책임 국가를 강조하고 있는데, 원래 국가운영은 공정한 협치를 통해 책임을 다하는 것이 기본이다. 기본을 제대로 세우자는 의미를 다시 강조했을 뿐이다. 또한, 안철수의 ‘공정경제론’과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는데, 그동안 경쟁적이었던 두 대선후보의 차이점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특히 중도층을 겨냥해 “오히려 지금이 세계가 한국에 투자할 때”임을 강조하거나, “대한민국 안보와 경제도 걱정하지 말라”며 “혹시라도 북한이 지금의 상황을 오판해 무모한 도발을 해온다면 우리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 역설하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문재인은 앞으로도 대선국면에서 중도층을 겨냥한 외연 확장 프레임으로 계속 밀고 나갈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성장론(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해 일부 경제이론가들과 민중운동진영이 지속적인 호의를 보냈는데, 사실 요란한 커튼을 젖히고 나니 그게 동상이몽일 수도 있다는 염려까지 든다.

이재명의 국민소득보장제의 모티브가 되는 청년배당도 과도하게 포장된 부분이 없지 않다. 사실 그의 대표적인 정책 트레이드마크인 청년배당은 청년층에 대한 소득보전정책으로 기존 취약계층에 대한 보조금 지원정책과 크게 다른 건 아니다. 보통 기본소득론자들이 기존 복지국가 실패를 비판하면서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는데, 이재명의 청년배당이 과연 기본소득론에 근간을 둔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재명이 자신의 무상복지정책에 기본소득론이라는 이념적 프레임을 덧씌운 것 뿐일지도 모른다. 사실 무상급식 논쟁에서 시작된 무상복지정책과 현재 제기되고 있는 기본소득론은 근간이 서로 다르다. 하지만 워낙 복지정책이 척박했던 한국에서 무상 시리즈 논쟁이 주는 정치적 효과는 매우 컸다. 이런 맥락의 연장선에서 지금 부상하고 있는 기본소득론의 정치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대선지지도 면에서 이 둘과 비교해 열세이기는 하나, 박원순 서울시장이 주장하고 있는 북방 뉴딜은 노무현 정부의 서해평화지대론 구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북한과의 관계개선 문제를,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경제적 탈출구로 좁게 다뤄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왜냐하면, 뉴딜의 대상인 북한이 자신의 안정과 번영을 남한과 동등하게 약속받아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남한의 경제적 탈출구라는 인식으로 접근해서는 협상 자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북한이 자신의 고립된 처지를 탈출하고자 우리가 조금만 손을 내밀면 이런 제안을 쉽게 받아들일 것이라는 생각도 매우 오만하고 비현실적인 분석이다. 북한이 원하는 북미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일정 정도 수준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면 사실 북방 뉴딜은 선거 때마다 의례 튀어나오는 말의 성찬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당장 큰 해법을 찾기 어려우니 정치와 경제를 분리 대응하자는 식의 이런 논리는 언뜻 현실적인 것처럼 보여도, 분단체제의 모순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장 비현실적인 주장이다. 이는 중국에 대한 태도에서도 똑같이 드러나는데, 정치군사외교는 미국과 동맹관계 속에서 풀고, 경제 쪽은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실용주의적 태도와 유사하다. 이런 식의 얌체 같은 북방 뉴딜론에 북한과 중국이 관심을 가질 리 만무하다.

촛불의 심장을 더욱 크게 뛰게 하자

200만 촛불민심을 확인한 정치권은 구체제의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며 열변을 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을 다시 쓰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촛불민심의 바람을 타고 막힌 둑이 터지듯 다양각색의 견해가 표출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만들고자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고, 여기에 핵심지지자들을 결집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이 국면에서 어떤 스탠스와 전략을 가지고 대응해야 할까? 정경유착으로 얽혀 있는 재벌체제와의 싸움에서 지난 수십 년간 가장 큰 고통과 처절함을 겪었던 이들에게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은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30년 전 5공 청문회에 섰던 그 재벌가의 자식들이 다시 이번 청문회장에 섰다. 그런데 드러난 그 정경유착의 고리는 뇌물죄 성립 여부를 따지는 시야에만 머물고 있다. 누구나 이 사회를 지배하는 재벌체제의 막강한 힘과 독점, 그로부터 발생하는 모순을 느끼지만, 지금 당장 우리가 따져 물을 수 있는 건 미르재단 자금모집에 얽힌 뇌물죄밖에 없다. 과연 이것으로 구체제 적폐 청산과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이 가능할까? 다시 30년 후 또 다른 청문회장에서 지금 모습이 재현되는 걸 막아야 한다.

지난 11월 30일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퇴진행동)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공범 재벌 총수 구속 전경련 해체 특별위원회(재벌구속특위)’를 발족했다. 특검에서 대통령의 뇌물죄 성립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상황에서 한국사회의 오래된 적폐인 재벌문제를 근본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대중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터라, 이런 특위 발족은 매우 시의적절해 보인다. 하지만 재벌개혁의 화두를 이미 선점하고 있는 다른 대선주자들과 차별성 있는 의제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특검의 재벌수사 결과만 뒤쫓다가 끝나버릴 수도 있다. 한국의 생산기반과 시장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재벌의 독식과 독점문제를 이번 대선국면 속에서 뜨거운 화두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김종인 부류의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프레임에 갇히고 만다.

그동안 제도가 없어서 재벌을 어쩌지 못한 것이 아니다. 제도만 놓고 보면, 재벌에 대한 규제가 가장 강력한 나라가 바로 우리다. 각종 규제를 만들어도 요리조리 빠져나간 것이 재벌이고, 그러다 보니 제도만 계속 복잡해졌을 뿐이다. 재벌 문제에서 핵심은 1%의 지분으로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이건희-이재용 총수 일가의 소유지배 문제다. 또 그런 가운데, 이재용으로 삼성 권력의 3대 세습을 인정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총수 일가의 소유지배가 부당하다면, 3대 세습이 부당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제의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가 오늘의 이재용을 낳았다. 거기에 어떤 개혁을 하던, 어떤 민주화를 하던, 재벌 총수 일가의 소유지배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주주나 어떤 개인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 이외에는 없다.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우리의 과제가 무엇인지 새겨보자. 가장 단순하고도 강력한 한 마디는 “재벌은 개인이 소유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이다 같은 이런 ‘재벌 사회화’ 논쟁을 촉발해 보자. 이재명의 사이다만 있는 게 아니다. 지난 20세기의 사회화 정책을 나열하는 관념론에 갇힐 게 아니라, 세기적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21세기의 사회화 논쟁을 진행해야 한다. 지난 몇 번의 경제위기 속에서 노동자와 서민의 희생으로 재벌들은 연명했다. 그것을 우리는 ‘손실의 사회화’라 비판했다. 그럼 그들에게 당당하게 말하자. 이제는 당신들이 독점하고 있는 ‘이윤을 사회화’할 차례라고 말이다.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촛불민심의 에너지가 이 겨울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과연 이 에너지가 대선 후보들 간의 눈살 찌푸리는 ‘나와바리’ 싸움 속에 서서히 유실될지, 아니면 새로운 사회 체제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장작불이 될지, 이를 좌우할 2017년 격동의 한해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촛불의 심장을 더욱 크게 뛰게 하자! (워커스 28호)
태그

경제 , 탄핵 , 프레임 , 조기 대선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송명관(참세상연구소)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