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노조, 12년 만에 민주노총으로

“대규모 구조조정, 세습 위한 분사 작업 맞서 나갈 것”

[출처: 현대중공업노동조합]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위원장 백형록)이 12년 만에 민주노총으로 복귀한다. 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두게 된 노조가 대규모 구조조정에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2일, 조직형태 변경에 관한 조합원 투표를 시행한 현대중공업 노조는 2/3 이상의 찬성을 얻어 민주노총 금속노조로 조직전환을 가결했다. 전체 조합원 1만 4,440명 가운데 1만 1,683명(80.9%)이 투표에 참여했고 8,917명(76.3%)의 조합원이 금속노조 가입에 찬성표를 던졌다.

12년 만에 금속노조 지위를 얻게 된 현대중공업노조는 “성숙한 조합원이 이뤄낸 쾌거”라며 자축했다. 노조는 “조합원들의 이러한 선택은 재벌 3세 세습구도 완성을 위해 스스로가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 현실을 더는 묵과하지 않겠다는 의지”라고 산별 전환의 의미를 기록했다.

현대중공업노조의 산별 전환 배경엔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인한 고용 불안과 노동조건 후퇴 등이 있다. 지난해부터 현대중공업은 경영 위기를 이유로 사무직 희망퇴직, 강제분사, 사업분할, 하청 기성금 삭감 등의 정리해고를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정규직 3,100여 명, 비정규직 노동자 1만 2,0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노동계는 이를 ‘3세 경영세습을 위한 사전작업’이라고 보고 있다. 올해 1조 2,000억 원의 흑자를 냈고 안정적 재무 구조로 돼 있는데 굳이 4개 회사로 분리하는 것은 자녀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인위적 분할이라고 주장한다. 세습을 위해 조선업 불황을 역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문대성 현대중공업노조 사무국장은 “올해 임단협을 못 끝냈다. 또 분사, 전환배치 등을 거부하는 530여 명이 매일 투쟁을 하는 등 현장 상황은 급박하다”며 “당면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조합원들의 의지와 민주노총의 연대로 싸워나가겠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한때 우리나라 민주노조운동을 이끄는 선봉에 있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물꼬를 트고 거대한 투쟁으로 발전시킨 주역이었다. 중장비를 앞세운 가두시위와 수십 건의 파업으로 민주노조를 설립했고 사내하청 직영화 등을 쟁취했다. 민주노조를 수호하기 위해 1988년부터 1989년까지 벌인 128일의 파업,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탄압에 따른 골리앗 파업 등은 노동 운동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기록된다.

하지만 어용세력이 가세하며 급기야 2002년엔 어용 집행부가 탄생했다. 2004년엔 비정규직 차별 철폐 등을 외치며 분신한 박일수 열사의 영안실에 집행부가 난입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일로 민주노총은 "열사투쟁 정신을 훼손하고 영안실에 난입하는 등 반노동자적 행위를 했다”고 현대중공업노조를 제명했다.

민주노총으로의 복귀 움직임은 20대 정병모 집행부 때부터 시작됐다. 민주파 정병모 집행부는 18년 만에 부분파업을 결의하고 대규모 집회를 열며 투쟁력을 다져 왔다. 사내하청지회와 함께 하청노조 가입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해 당선된 21대 백형록 위원장은 상급단체 가입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민주노총 재가입을 추진하겠다고 취임 일성을 밝힌 바 있다.

민주노총은 23일 논평을 내고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의 민주노총 가입을 뜨거운 가슴으로 환영한다”며 “현대중공업 자본은 조합원들의 압도적 가결이 보여주는 의미를 무겁게 수용하고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모든 구조조정을 즉각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소속 김종훈 의원(울산 동구)도 “조선산업 일방적 구조조정 저지를 통한 고용안정과 조선산업 살리기 그리고 중대재해, 하청노동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시급한 노동문제에서 사회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국회와 정부에 제안할 수 있는 조직 태세를 갖추게 됐다”고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노조는 금속노조 소속 지위 획득을 위해 1월 안에 1인당 3만 원인 금속노조 가입기금을 납부하고, 늦어도 2월 중순까지 조합비 납부를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2월 27일 주주총회 전엔 금속노조 가입을 끝낸다는 계획이다. 금속노조 소속으로 산별 전환이 중요한 이유는 사측이 노조 지위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을 때 논란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다. 형식적 절차가 끝나면 임단협, 구조조정, 회사 분할 문제 등 당면한 과제들을 풀어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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