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오늘의 배달호를 괴롭히는 손배가압류

노동자 겨냥 손배가압류 1천 500억,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03년 1월 9일 새벽, 배달호 열사는 그가 일하던 경남 창원 두산중공업 내 노동자광장에서 분신자살했다. 그의 승용차 안엔 꾹꾹 눌러쓴 유서 두 장이 발견됐다.

두산이 해도 너무한다. 해고자 18명, 징계자 90명 정도 재산가압류, 급여가압류 노동조합 말살 악랄한 정책에 우리가 여기서 밀려난다면 전사원의 고용은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중략) 이제 이틀 후면 급여 받는 날이다. 약 6개월 이상 급여 받은 적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들어오는 돈은 없을 것이다. 두산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인간들이 아닌가? -고 배달호 열사 유서 중-

당시 두산중공업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1천 명을 쫓아내고 이에 저항하는 노조를 몰아세웠다.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했고, 노조 간부 징계해고, 노조 간부를 상대로 65억 원의 손배가압류(손해배상 및 가압류)를 단행했다. 6개월 동안 임금 한 푼 받지 못한, 손배가압류를 벗어날 방책도 없던 열사는 결국 죽음을 택했다.

[출처: 금속노조 한국지엠창원 비정규직지회]

배달호 열사 14주기를 맞이한 지난 9일, 노동자광장엔 고 배달호 열사의 추모식이 열렸다. 금속노조 경남지부 두산중공업지회, 배달호열사 정신계승사업회 등의 주최로 300여 명이 모였다. 모인 이들은 추모제 때마다 가장 먼저 국밥집으로 간다. 벌써 10년이 넘은 전통이다. 2002년 두산중공업지회의 파업을 함께해준 지역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담아 국밥 한 그릇을 대접한다는 의미다. 추모제 마지막엔 그의 유언이 담긴 묵념곡 ‘배달호 열사의 노래’를 함께 부른다.

열사를 기리는 이들의 마음은 여전히 뜨겁지만 아름답게 끝나지 않는다. 14년 전 한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손배가압류는 점점 더 진화해 더 많은 노동자를 괴롭히고 있다.

2012년 한진중공업의 최강서 열사도 158억 원에 달하는 손배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유서는 자신의 죽음이 손배에서 비롯됐다고 정확히 알려준다.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죽어라고 밀어내는 한진 악질 자본 (중략) 지회로 돌아오세요, 동지들. 여지껏 어떻게 지켜낸 민주노조입니까? 꼭 돌아와서 승리해주십시오 -고 최강서 열사 유서 중-

손배가압류 금액 지난 15년간 5배 늘어

민주노총 집계에 따르면 2002년 39개 사업장에 345억 원 규모의 손배가 청구됐다. 이 금액은 점점 증가해 이명박 정권 동안 1천억 원대에 진입했으며, 박근혜 정권 들어선 1,691억 원(2014년)으로 정점을 찍었다. 지난해 8월까지 민주노총과 손잡고(손배가압류를잡자!손에손을잡고)가 공동 집계한 조사에 따르면 사업주가 제기한 최초 손배청구액 규모는 1,521억 원(20개 사업장 57건)에 달한다.

청구액 중 절반 이상이 금속노조 사업장에 제기된 소송들이다. 총 57건의 손배소송 중 44건이 금속노조 사업장에 걸려 있다. 그리고 1,500억여 원이 훨씬 넘는 최초청구금액에 선고금액은 340억여 원으로, 사용자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액수를 주장하며 소송을 걸었는지 알 수 있다.

강웅표 배달호열사 정신계승사업회 회장은 증가하는 손배는 노조 탄압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금속노조 사업장이 특히 많은 손배가 걸리는 이유는 투쟁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손배가압류를 때리면서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최근엔 간부들뿐만 아니라 일반 조합원들까지 손배를 물린다. 파업도 하지 말고, 집회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라면서 노동 3권 무력화로 귀결되는 손배의 속성을 설명했다.

부르는 게 값인 손배청구액

손잡고는 지난해 상반기 손배가압류현황을 발표하며 최근 제기된 손배소송의 특징 세 가지를 꼽았다. △결성 1년 남짓한 신규 노조와 조합원을 대상으로 하면서 범위가 확대 △구호, 피켓, 소식지 문구 등 폭력이나 재물손괴가 포함되지 않은 쟁의행위에 대해서까지 문제 삼기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손배청구 사례 증가 등이다.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 동양시멘트지부 조합원 23명에겐 50여억 원의 손배가 걸려있다. 가압류 6억 원은 이미 집행돼 조합원 평균 1천 5백만 원의 재산이 압류된 상태. 동양시멘트지부는 101명의 부당해고에 대응해 2015년 출근투쟁을 했다. 사측은 이 때문에 생산 활동에 차질을 빚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이인용 부지부장은 말도 안 되는 계산이라고 말했다. “겨울엔 물량도 없고 시설 보수라든가 다른 일 하면서 생산을 줄인다. 당시 사측에선 노조 탈퇴한 사람들 데리고 일하겠다면서 1개 조, 열 몇 명을 데리고 와서 일하는 시늉만 냈다. 이것도 쇼인 게 미숙련자들은 아무 일도 못 했다.” 이 부지부장은 “투쟁을 시작하기 전, 가압류에 대비해 미리 재산 정리를 해놔야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유리한 법을 선택적으로

법률 사건을 챙기는 안영철 동양시멘트지부 사무국장은 가압류가 자본이 있는 사측에게만 유리한 제도라고 답답해했다. 안 사무국장은 “노사 다툼에서 가압류는 실질적으로 사측에 의해 악용된다. 노동자 생계와 직결되는 문제인데 법원은 사측이 신청하면 정황을 따지지 않고 너무 쉽게 받아준다. 몇십 억 공탁금을 걸 수 있는 것도 자본이 있어야만 가능한데 노조에선 할 수 없지 않은가?”라며 문제를 지적했다.

한편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동양시멘트지부가 제기한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불법 파견관계가 인정된다는 취지였고, 정규직에 해당하는 처우를 받아야 한다는 판결문이 나왔다.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이번 서울중앙지법까지 동양시멘트 하청노동자들은 원청 소속의 정규직이며 그동안의 하청구조는 잘못됐다는 판결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사측은 유리한 법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며 고용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에 제기된 손배의 경우 그동안 볼 수 없던 흐름을 관찰할 수 있다. 하이디스가 이상목 지회장에게 제기한 손배는 총 3건으로, 모욕(1억), 명예훼손(4억), 업무방해(22억) 등이다. 모욕과 명예훼손은 그동안의 손배 제기 이유와 다른 부분이다.

대만 원정 투쟁 기간, 투쟁단은 경영진 사진을 세워두고 신발을 던져 맞추는 게임을 했다. 이를 어떻게 알았는지 신발을 직접 던진 조합원과, 노조 간부로서 책임이 있다는 지회장에게 1억 원의 손배가 떨어졌다. 오는 24일 1심 결과가 나온다. 지회장을 뺀 2명은 형사소송에서 2심까지 패소했다. 결론이 빨리 나오는 형사소송은 뒤에 있는 민사소송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모욕감 제공이 죄가 됐다. 12번 대만 원정투쟁을 감행한 노동자에게 울분을 제공한 사측은 얼마를 물어야 할까?

이 지회장은 “공장을 점거하고 생산을 멈춘 것도 아니고 최소한의 쟁의 행동만 했는데 이런 식의 부르는 게 값인 손배가 어이없을 뿐이다. 소위 말하는 과격한 시위도 안 했는데 각종 소송을 걸고 돈줄을 움켜쥐는 건 입을 틀어막으려는 의도다”라고 말했다.

현재 8억 가까이 가압류가 걸린 이 지회장. 그는 가압류로 인한 심리적 고통을 호소했다. “계좌도 막히고, 정상적인 금융생활이 불가능하다. 평생 안 쓰고 벌어도 쥘까 말까 한 돈이 가압류되고, 손배가 날아오니 이것 때문에 자살했던 분들의 심정을 알 것 같다. 가족들도 투쟁 2년 내내 고소장 날아오는 상황을 힘들게 지켜보고 있다. 아마 나보다 더 힘들 수 있다”

14년 전 열사는 본인은 평온한 하늘나라로 먼저 올라가지만, 동지들이 끝까지 싸워 승리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승리의 길이 아직 먼 것인지, 더 멀어진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벼랑 끝에서도 끝까지 싸우겠다는 노동자가 있어 열사의 하늘이 조금은 편할 것 같다. 동료를 깨우고, 격려했다던 그 호루라기로 흩어져 있는 노동자를 다시 한번 불러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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