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활동가, “한국산연 원정투쟁에 왜 연대하냐고요?”

[국제통신]한일 노동자의 국제연대

일본 사이타마현에 산켄전기라는 기업이 있다. 도요타, 소니처럼 큰 기업이 아니지만, 전원이나 전력제어 반도체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품제조 기업이다.

  창원 한국산연 [출처] 한국산연분회를 지원하는 모임 페이스북

그 산켄전기 본사 앞에서 매일 아침 불법 정리해고 철폐를 외치며 선전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금속노조 경남지부 한국산연분회의 일본 원정투쟁단 조합원들이다. 이들이 정리해고통지서를 받은 것은 지난 9월 30일. 한국산연 경영진은 노조와의 교섭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경영 악화에 의해, 생산 부문을 폐지, 외주화하고 영업 전문 회사로 남게 되었기 때문에 생산직노동자는 전원 해고한다고 했다.

노조 측은 이번 정리해고가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법에 명기된 해고 회피 노력도, 단체협약에 명기된 노조와의 동의도 없었다. 노조는 그동안 정리해고를 막으려고 모든 노력을 다했다. 고용을 지키기 위해서 노동조건 절하, 임금 감축도 감수했다. 잘 나가던 때엔 수백 명이 일했지만 여러 차례의 희망퇴직을 거쳐 지금은 34명만 남았다. 지역의 노동시민단체, 종교계, 노동위원회, 그리고 지역 국회의원들도, 노조의 동의 없는 정리해고는 불법이라며 회사 측에 노조와의 교섭에 응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지방노동위원회도 지난 12월27일, 한국산연의 정리해고는 부당해고다고 판정했다. 그럼에도 사측은 여전히 정리해고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노조 측은 회사가 중노위, 대법까지 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 사측의 태도에 창원 노동계는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해고를 인정하면, 이후 비슷한 부당해고가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한국 국민의 세금으로 각종 특혜를 받으면서, 이익은 지역에 환원하지 않고 일본 본사로 갈 것이다. 한국산연 정리해고는 지역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다.

한국산연분회는 이번 정리해고 방침은 일본 산켄전기본사가 지시한 것이라며, 한국산연 경영진에는 당사자 능력이 없다고 판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에서 직접 산켄전기 본사와의 교섭을 결의하고, 지난 10월 일본으로 와 원정투쟁을 시작했다.

산켄전기 본사는 “한국산연은 한국의 기업이다. 한국의 일은 한국에서 해결해라”라고 할 뿐, 교섭 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는다. 일본 산켄전기 본사가 100% 투자해 설립하고, 100% 주식을 가지고 일본 본사가 한국산연의 경영진을 임명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산연은 별도 법인”이기 때문에 교섭을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산켄전기 본사의 말을 누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국제노동기구(ILO) 다국적기업선언이나 OECD다국적기업행동지침에도 모회사는 현지법인의 노사분쟁에 책임을 요구하며, 유엔글로벌콤팩트도 노동조합과의 성실한 교섭을 추구하고 있다. 또, 일본 국내에서도 모회사가 자회사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 경우 노조는 모회사에 단체교섭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새벽 5시에 시작하는 한국산연 노동자들의 투쟁

현재, 한국산연분회는 일본 산켄전기 본사와 교섭하기 위해, 일본의 노동조합, 노동단체 활동가, 시민단체 활동가 등과 함께 산켄전기 본사나 공장, 영업소와 길거리에서 선전전 등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산켄전기 본사에서 버스로 약 30분 거리의 장소에 위치한 숙소에 생활하고 있다. 그들의 하루는 어두운 새벽 5시 기상부터 시작된다.

씻고 아침을 먹고, 하루를 시작하며 첫차를 타고 본사 앞에 간다. 마이크를 설치하고 현수막을 펼치곤 유인물을 돌리며 낯선 외국 땅에서의 투쟁을 시작한다. 일본인 연대자들은 한국 노동자들의 절박한 외침을 일본어로 통역해, 출근길 산켄전기 사원들과 시민들에게 한국산연에서 일어난 부당한 일들을 호소한다. 일본본사 근로자들은 무슨 지시가 있었는지, 선전물을 보지도 않고, 빠르게 회사 안에 들어간다. 그래도 누군가는 꼭 듣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호소는 계속된다.

  본사앞 출근길 선전전 [출처] 레이버넷 일본

오전 8시 반을 지나면 출근하는 발길이 끊어진다. 잠시 본사 앞에서 있다가, 가까운 시키역으로 이동한다.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이 지역에 위치한 산켄전기가 한국에서 어떤 부당한 일을 했는지 그리고 한국 노동자들이 이에 맞서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알리고 관심과 지원을 호소한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오는 사람도 있다. “열심히 해라”라고 응원해 준 시민도 있다.

오후 일정도 만만지 않다. 매주 수요일에 도쿄 이케부쿠로의 산켄전기 영업소 앞 광장에서 집회, 목요일에는 사이타마현 가와구치시 산켄전기 가와구치 공장에서 선전전, 그리고 연대하는 일본 노동조합의 투쟁 현장, 각종 집회에도 함께 한다. 밤 집회에 함께하다가 숙소에 돌아가면 한 밤중이 된다.

힘들게 숙소로 돌아온 뒤에는 저녁을 먹고 다음날 투쟁을 위한 준비를 하고, 창원에 있는 동지들과 정보공유를 한다.

“한국에서의 투쟁도 쉽지 않다. 그러나 가족과 동료들하고 떨어져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투쟁하는 것은 솔직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노동자의 권리란, 투쟁한 만큼 얻을 수 있다. 그리운 공장에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열심히 투쟁하는 밖에 방법은 없다.

한국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일본 노동자들

  지원모임 결성 집회 [출처] 레이버넷 일본

  지원모임 결성집회 [출처] 레이버넷 일본

한국산연분회 일본 원정투쟁에는 많은 일본 노동조합과 노동활동가들이 함께하며 투쟁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산연 뿐 아니라, 해외원정투쟁의 성공을 위해서는 현지 활동가들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 우선, 말이 안 통한다. 어디 가는 것도 안내가 필요하다. 작은 문제라도 외국인이 해결하려면 힘들 수 있다. 본사에 교섭을 요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현지 노조나 활동가가 갖고 있는 다양한 관계를 통해 교섭을 위한 길을 찾는 것도 필요하다.

한국산연분회 일본 원정투쟁에 모이는 사람들은, 1989년 한국 스미다 일본 원정투쟁 이래, 마산자유무역지역에 있었던 한국시티즌, 한국산본 등 일본기업 본사에 대한 장기 원정투쟁, 충남 천안에 있었던 발레오공조, 인천·대전 콜트·콜텍 단기 원정투쟁 등, 많은 일본 원정투쟁을 지원해 온 노조, 활동가들의 그룹이다. 이번에도 이들이 한국산연분회 지원을 맡였다. 지난 11월 17일 이들은 전노협을 중심으로 여러 노조와 활동가가 모여 “한국산연분회를 지원하는 모임(지원모임)”을 결성해, 장기화에 대비해서 숙소를 찾아, 일본국내 노조, 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지원 체제를 짜고 현장에서 필요한 통역을 배치하는 등 한국산연분회의 투쟁과 함께 하고 있다.

출근길 선전전에는 통역이 필요하다. 회사 경비, 경찰, 주민들과의 다툼에 대비해 현장을 책임을 지는 사람도 배치된다. 그리고 유인물을 나누거나 선전전에 함께하는 동지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들 역시 첫차를 타고 달려 온다.

지원모임의 간부들은 여러 단위들에 연락하여 낮의 일정을 조정한다. 오후에 일정이 있을 때는 목적지까지 안내나 통역을 조정하기도 한다.

전노협은 작은 노총과 같은 노조의 협의회이며 경험 풍부한 노동 활동가가 모이고 있다. 전노협은 막혀 있는 본사와의 교섭의 길을 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산하 노조에 연대를 요청도 한다.

지원모임에 모인 활동가들은 집회나 선전전, 재정지원 등을 돕는다. 때로는 익숙하지 않는 외국 땅에서 힘들게 투쟁하는 한국산연분회 동지들을 위로하기 위해, 회식 자리에 초대하기도 한다. 그렇게 100명을 넘는 일본 활동가, 시민들이 한국산연분회의 투쟁과 함께하고 있다.

왜 일본 활동가, 시민들은 먼 외국에서 생긴 정리해고 철폐투쟁을 기꺼이 지원하는 것일까? 이유는 여러 가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노동자는 하나이기 때문에. 한국산연에서 진행하고 있는 자본의 횡포는 일본 노동자들이 당하고 있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일본에서도 자회사나 협력기업의 고용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노조혐오 때문에 노조원이 있는 부서를 구조조정의 이름으로 폐지하고, 조합원들을 해고할 경우도 많다. 아마도 한국 자본가들도 한국에서, 그리고 세계 여러나라에서 똑같은 횡포를 부리고 있을 것이다. 국경을 넘는 자본에 대항하는 노동자에게도 국경 따위는 없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한국 노동자들의 투쟁은 바로 일본에 사는 우리들의 투쟁인 것을 알게 된다.

어떤 사람한테는 그냥 한국 노동운동이 신기하고, 재미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매년 11월에 서울에서 열리는 노동자대회에는, 많은 일본 노동활동가들이 참석한다. 침체하고 있는 일본 노동운동은 한국 노동운동의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활동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한국에서 온 원정투쟁단과 함께 하는 것은 직접 한국노동운동 문화를 체험하는 좋은 기회이기도 한다. 느린 일본식 슬로건과 다른 한국의 리드미컬한 슬로건은 즐겁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 율동과 노동가요는 신기하기도 하고,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느끼게 해 주기도 한다.

  이케부쿠로 산켄영업소 앞 선전전 중 한국산연조합원들이 문선을 하고 있다. [출처] 레이버넷 일본

그러나, 한국산연분회 동지들의 투쟁에 냉담한 노동조합도 있다. 바로 일본 산켄전기 노동조합. 어쩌면 산켄전기 노동조합원 안에는, 한국의 동료의 투쟁에 함께 하고 싶은 이들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사협조가 주류인 일본 노동조합로서는 회사의 방침에 어긋나는 활동은 어려울 수도 있다. 외국에서 생긴 노동쟁의를 위해 오랫동안 유지해 온 좋은 노사관계를 파괴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적극적으로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는 하지만, 산켄전기노조는 결코 적이 아니다. 지금 한국산연분회과 지원모임은 국제적인 노동조합 네트워크를 통해 산켄전기노조에게 교섭 요구를 회사 측에 전해주기를 요청하고 있다. 함께 투쟁할 수는 없어도, 노조로서의 최소한의 역할은 다해 줄 것이라 믿고 있다. 그리고 원정투쟁단은 아침 출근길 선전전에서 그들에게 호소한다. 우리의 벼랑 끝 인생을 이해해 달라고. 될 수 있으면 회사 내에서 목소리를 내달라고.

일본에서 투쟁하고 있는 한국산연분회 동지들은 본사와의 교섭이 이루어질 때까지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의하고 있다. 그들과 연대하는 일본 동지들도 끝까지 연대한다고 결의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스미다, 한국시티즌, 한국산본 등등 많은 일본 원정투쟁단이 먼 일본 땅에서 긴 투쟁 끝에 결국 승리하고 귀국했다.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의 투쟁, 한겨울의 찬바람 또는 비바람 속에서 투쟁한 그때가 지금은 그립다. 연대하는 일본 동지들에 있어서 최고의 보수는 교섭타결, 투쟁승리의 소식이다.

하루라도 빨리 그 일을 맞이할 수 있게, 한국과 일본의 동지들은 하나가 되어 열심히 투쟁하고 있다. 긴 투쟁이 될 것이라고 각오는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꼭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말

참세상은 지구 곳곳 민중들의 삶과 투쟁을 전하는 ‘국제통신’ 연재를 시작합니다. 연재는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 야스다 유키히로 레이버넷 일본 공동대표, 뎡야핑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하남석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 최재훈 경계를넘어 활동가, 이유철 영국 브리스톨대 국제정치학 박사과정 연구자가 전해주실 계획입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