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에 또 버스 못 타는 장애인...‘다음 명절 고향 가게 법 고쳐달라’

귀성객에게 ‘고속버스 등 장애인 이동권 의무화’ 교통약자법 개정 필요성 알려

장애인들이 명절마다 시외, 고속버스터미널을 찾은 지 올해로 4년이나 됐다. 올해 설 명절기간에도 장애인들은 고속버스터미널로 발길을 옮겼다. 그 사이 호화로운 프리미엄 버스가 운행하는 변화가 있었지만, 정작 장애인 탑승 설비가 된 차량은 단 한 대도 없었다.

장애인들은 다음 명절에는 시외,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에 갈 수 있도록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아래 교통약자법)을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고 귀성객들에게 직접 알렸다.

  26일 설 연휴 전날에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 버스 타러 온 장애인들이 귀성객들에게 "고향 잘 다녀오세요. 다음 명절에는 함께 가요"라며 손을 흔들고 있다. [출처: 비마이너]

김상희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과 최영은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설 연휴 전날인 26일 서울 고속버스터미널(경부선)에서 오후 2시 40분 부산으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타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들이 구매한 표는 휴지 조각이 됐다.

김 씨는 “지금까지 고속버스를 타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만약에 버스에 타려면 누군가 나를 안고 타야 하는데, 짐짝처럼 옮겨져서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을 해야 한다.”라며 “저상버스가 있다면 우리도 다른 승객들과 똑같이 편하게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 저상버스를 도입하라는 우리의 요구는 무참히 무시당했다.”라고 분노했다.

최 활동가도 “얼마 전 엄마 보러 지방에 내려가는데, 저상버스가 없어서 수동휠체어 타고 갔다. 수동휠체어에 타면 내가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곳이 없어 자유를 침해당한 느낌이 든다.”라며 “전동휠체어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닌 내 다리와 같다. 고속버스에 전동휠체어로 탑승할 수 없는 것은 나를 거부하는 것과 같다.”라고 강조했다.

최 활동가는 “명절마다 내가 타고 갈 수 있는 버스가 없어서 집에 내려가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프리미엄 버스는 만들면서 왜 장애인 타는 버스는 안 만드는가. 비장애인만 탈 수 있는 버스는 이제 그만 도입하고 장애인도 탈 수 있는 버스를 도입했으면 한다.”라고 촉구했다.

  승객들이 부산행 버스에 탑승하는 동안 오른쪽에 있던 김상희 씨는 버스에 타지 못했다. [출처: 비마이너]

같은 시각 시민들은 버스 문턱에서 멈춰선 김 씨 등을 지나쳐 부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날 김 씨 등과 함께 고속터미널에 온 100여 명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승객들에게 설 선물로 장바구니를 나눠줬다. 선물이 담긴 상자 겉면에는 다음 명절에는 장애인도 버스 타고 고향 갈 수 있게 해달라는 호소와 교통약자법 개정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당부의 메시지가 담겼다.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법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차별 없이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는 이동수단, 장애인 이동 편의시설 등을 갖추는 것은 법이 정하는 국가, 지방자치단체, 운송 사업자들의 의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시외, 고속버스에 장애인 탑승 설비를 갖추도록 강제하는 조항이 이 법에는 없다.

이에 전장연과 박주민 의원, 최경환 국민의당 의원 등은 △프리미엄 버스, 고속버스, 시외버스, 마을버스 도입 시 교통약자 이동권 보장 의무화 및 지원 방안 명시 △시내버스 및 광역버스 대폐차 차량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특별교통수단에 대한 국토교통부 및 광역지자체장 의무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교통약자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박 의원은 “프리미엄 버스에 장애인들은 타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을 찾아봤다. 그랬더니 고속버스에는 장애인이 탈 수 있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이 없어 충격을 받았다.”라며 “법을 개정해서 장애인들이 표를 사고도 고향에 가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최용기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언제까지 우리는 고향을 그리워만 해야 하나. 우리도 시민 여러분들과 함께 고향에 가고 싶다."라며 "이동권 보장은 국가와 운송 사업자의 당연한 책무인데도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지키지 않고 있다. 더는 장애인들이 발이 묶여서 이동 못하고 소외, 배제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라고 촉구했다.

  김상희 씨 등이 구매했으나 탑승에는 실패한 오후 2시 40분 부산행 승차권. [출처: 비마이너]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이 교통약자법 개정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하며 승객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있다. [출처: 비마이너]

  한 활동가가 '장애인도 버스 타고 고향에 가고 싶다'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 비마이너]
덧붙이는 말

갈홍식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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