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철도공사 성과연봉제 효력 정지… “사실상 노조의 완승”

“임금에 불이익 가능성 있으므로 노조 동의받았어야” 노조 논리 인정

한국철도공사가 노조 동의 없이 강행 도입한 성과연봉제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대전지법 민사21부(재판장 문보경)는 31일 전국철도노동조합이 낸 가처분 신청을 인용해 성과연봉제 효력을 임시로 정지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일부 근로자들의 임금 체계를 호봉제에서 연봉제로 변경하는 등 임금체계 자체가 본질적으로 변경되고, 저성과자로 평가된 근로자들의 경우 개정 전 취업규칙에 의할 때보다 임금액이나 임금 상승률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철도공사는 “채권자(철도노조)의 동의를 받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한 근거로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을 제시하며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근로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에 관하여 위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아야 함을 명시하고 있고, 채무자(철도노조)의 단체협약도 임금에 관한 사항은 단체교섭사항으로 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성과연봉제를 두고 노사 간의 충분한 교섭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재판부는 “취업규칙의 적용 시점이 늦추어지는 기간 동안 노조와 공사는 이 사건 취업규칙에 대해 보다 적극적이고 성실히 협의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고, 그러한 여유로 인해 노조에 헌법상 보장된 단체교섭권이 충분히 발현될 수 있다”고도 판시했다.

앞서 철도공사는 노사 합의를 거치지 않고 이사회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꼼수를 써 밀어붙였다. 철도노조는 이에 반발해 74일간의 파업을 벌였고, 철도공사를 상대로 취업규칙 중지 가처분 신청과 본안소송을 냈다.

성과연봉제는 정부가 공공기관 등을 압박해 5개월 만에 전면 도입한 제도로 저성과자를 구분해 임금에 차등을 두는 것이 골자다. 정부는 성과연봉제 도입을 추진하며 경쟁을 바탕으로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철도노조를 비롯한 노동계는 ‘성과퇴출제’라고 부르며 성과연봉제를 반대해왔다.

김정한 철도노조 대변인은 이번 판결에 대해 “노조의 완승”이라고 평가했다. 김 대변인은 “누군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성과연봉제는 노사 합의로 결정돼야 한다는 노조의 주장을 재판부가 인정해줬다”며 “74일 동안 흔들리지 않고 파업했던 것은 우리가 옳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또 “장기간의 파업으로 이를 추스르기 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번 가처분 인용이 여러 어려움을 해소해 줄 것”이라며 “본안 소송에 더욱 집중해 성과연봉제를 몰아 내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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