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의 갈림길에 선 노동운동진영의 ‘민중후보’ 전술

오는 7일 민주노총 대대 ‘정치방침’ 결정...입장 차이 좁힐까

조기대선 대응 전술을 둘러싸고 노동운동진영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르면 4월말께로 예상되는 조기대선까지 남은 시간은 세달 남짓. 하지만 노동진영 내부는 의견 충돌로 대선 대응 전술에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애초 ‘민중경선’카드를 들고 나왔던 민주노총은 오는 7일 대의원대회에서 최종 정치방침을 결정한다는 계획이지만, 각 정치세력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여서 반발이 터져 나올 가능성도 상당하다.

  참세상 자료사진

대선 ‘민중단일후보’ 전술은 ‘동의’, ‘선거연합정당’ 추진은 내부 논란

민주노총 정치현장특위(정치특위)가 내놓은 정치, 대선 방침 안은 총 5가지. 주요하게는 △2017년 대선 대응 민중단일후보 전술 채택 △2018년 지방자치단체선거 전에 새 진보정당을 아우르는 선거연합정당 추진 △선거연합정당을 위한 노동자 추진위원회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해당 안은 1월 17일 열린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고, 오는 2월 7일 대의원대회의 최종 의결을 앞두고 있다.

민주노총이 강하게 드라이브를 건 정치전략 안이지만, 결국 제 정치세력의 합의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정치특위는 정치세력들과의 합의를 위해 ‘정치연석회의’를 구성하고 지난해 11월 17일부터 1월 6일까지 3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정치연석회의에는 5개 진보정당(노동당, 녹색당, 사회변혁노동자당, 민중연합당, 정의당)과 11개 의견그룹 및 단체(노동전선, 노동자연대, 전국회의, 사회진보연대, 좌파노동자회, 현장노동자회, 현장실천연대, 새로하나, 새로운 활동가 조직 준비모임, 공공현장회, 민중의 꿈)가 참석했다. 총 두 차례에 걸친 진보정당 간담회도 진행했지만, 결과적으로 정치특위의 5개안에 합의를 보는 데에는 실패했다.

대다수가 ‘민중단일후보’라는 대선 전술에는 동의했지만, 복병은 ‘선거연합정당’ 추진이었다. 선거연합정당 건설은 민주노동당부터 통합진보당 건설의 흐름을 주도했던 노동진영 내 우파진영의 요구안이다. 민중연합당과 민중의 꿈 등이 단일 진보정당 건설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정치연석회의에 참석한 좌파진영은 선거연합정당 안이 폐기되지 않으면, 대선 공동대응도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녹색당과 현재 당내 대선후보 경선을 추진 중인 정의당도 ‘선거연합정당’에 대해서는 비판적 혹은 유보적인 입장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변혁당, 노동당, 노동자연대, 노동전선, 좌파노동자회 등이 선거연합정당에 반대했다”며 “녹색당도 반대 입장을 표명했고, 정의당은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결과를 지켜본 후 입장을 내놓지 않을까 본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이 내놓은 ‘선거연합정당’의 취지는 2018년 지자체선거에서의 승리다. 후보단일화 및 공동투쟁으로 조합원의 혼란과 진보정치의 분열을 방지하고, 정당명부투표 등의 전술을 통해 선거승리의 가능성을 꾀한다는 것이다. 지자체 선거에 대응하는 한시적 정당이자, 가설정당의 형태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가 않다. 현행법상 ‘가설정당’ 형태의 구성은 불가능하다. 한 지붕 아래에서 선거를 치르려면 5개의 진보정당이 기존의 당을 해산한 뒤 새로운 (연합)정당을 창당해야 한다. 사실상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창당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만약 지자체선거 후 연합정당이 흩어지려면, 각 정당은 다시 창당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한 진보정당 관계자는 “가설정당을 구성하기에는 불가능한 구조”라며 “사실상 통합진보정당을 구성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노동운동진영 내에서는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 파산에 대한 평가 및 대안이 선행되지 않는 한, 똑같은 역사가 반복될 것이라 우려해 왔다. 또 다른 민주노총 관계자는 “통합 진보정당의 역사에서 조합원들을 대상화한 점, 정치세력화에 대한 현장 논의가 부재했다는 점을 반성한 적이 있느냐고 물으면 답변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정치특위가 상정한 ‘선거연합정당을 위한 노동자 추진위원회’ 구성도 쟁점거리다. 진보정당 관계자는 “사실상 창당 부대를 만들겠다는 것 아니냐”며 우려를 나타냈다.

오는 7일, 생사의 갈림길에 선 ‘민중단일후보’ 전술

민주노총 대선 전술 논의가 휘청거리면서, 노동당은 일찌감치 ‘거리두기’에 나섰다. 이갑용 노동당 대표는 지난달 23일 신년인사를 통해 “조기대선에서 노동당의 독자후보 전술이 필요하다는 점을 주장한다”며 독자 노선의 뜻을 내비쳤다. 또한 이 대표는 “민주노총과 우리당의 면담에서 저는 후보선출의 기준이 모호하고 현행법상 여러 조직이 함께 경선을 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전달했다”며 “민중후보의 준비와 별개로 노동당의 후보를 준비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노동당 뿐 아니라 변혁당 및 좌파세력들도 민주노총의 정치방침 안에 대한 공동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7일로 예정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는 좌파진영을 중심으로 △선거연합정당 추진 △선거연합정당을 위한 노동자 추진위원회 구성 안을 삭제하는 수정안이 올라올 가능성이 크다. 만약 표결을 통해 수정안이 부결되고, 원안 표결이 실시될 경우 내부 반발로 대의원대회 자체가 유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대의원대회 자체가 유회될 경우, 후순위 안건으로 상정된 올해 민주노총 사업까지 기약 없어진다는 점이다. 이후 임시 대의원대회를 개최한다 해도 최소 한 달 이상이 걸린다. 3-4월이 돼서야 대선방침을 정하기엔 너무 늦다. 그 때까지 진보 정당들이 ‘민중후보’만을 바라보며 스탠바이 하고 있을 가능성도 낮다. 게다가 민주노총은 그 기간 동안 올해 사업계획을 추진할 수 없게 된다. 대선 공간에서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되는 셈이다.

이 같은 우려들 때문에, 올해 민주노총 사업계획을 먼저 다루자는 회순 변경 요구도 나오고 있다. 지난 1일 열린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이와 관련한 논의가 있었지만, 일부 중집위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사실상 정치특위의 ‘선거연합정당’ 관철을 압박하는 전술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대의원대회에서도 회순 통과에서부터 논란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내 우파 진영은 ‘회순변경’을, 좌파 진영은 ‘정치전략안’을 막아설 가능성이 크다.

대선을 둘러싼 불안한 기운, ‘정권교체론’도 등장

이와는 별개로 민주노총 일각에서는 ‘민중경선’과는 다른 기류의 대선 대응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금속, 사무금융, 건설, 공공 및 지역 조합원 200여 명은 지난해 12월, 노동기반 복지국가를 위한 ‘사회연대노동포럼’을 출범시켰다. 상임대표로는 문성현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상임운영위원장으로는 정용건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공동운영위원장으로는 백순환 전 금속산업연맹 위원장이 이름을 올렸다. 김광식, 윤해모, 이경훈 등 현대차지부장 출신들도 대거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출범식 날,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를 초청 강사로 초대했으며, 향후 문 전 대표와 정책협약을 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나 독자적 대선 대응 노선과는 달리 ‘정권교체’에 힘을 싣고 있는 분위기다. 좌파단체에서는 ‘보수야당 지지자들이 민주노총을 민주당에 바치려 한다’며 강력 비판하고 나섰다.

사회변혁노동자정당은 성명을 통해 “노동운동 전,현직 지도자들이 야권연대론을 확산시키는 이유는, 야권연대가 그들에게 ‘관직’을 주기 때문”이라며 “노동기반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는 이들은 그 경로를 문재인과의 연대에서 찾으나, 문재인의 행적과 정책 그 어디에도 ‘노동기반 복지국가’의 흔적은 없다”고 비판했다. 노동전선 역시 성명을 발표하고 “거대한 촛불투쟁의 성과를 보수야당에게 송두리째 안겨주자고 하니 기가막힐 지경”이라며 “야당후보지지와 정권교체운동은 아무리 순수하고 소박한 열망을 배경으로 하더라도, 역사와 노동자계급에 대한 죄악이자 배신일 수밖에 없다”고 규탄했다.

사회연대노동포럼을 차치하고라도, 일각에서 ‘정권교체론’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는 것도 노동운동진영의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지난달 19일 열린 중앙위에서도 ‘박근혜부터 빨리 정리하자’, ‘(민주노총이) 너무 욕심내지 말자’, ‘차분하게 기다리자’ 등 좌우 세력과는 무관하게 이런 의견들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민중단일후보 전술마저 좌초될 경우, 민주노총은 내부의 보수야당 대선 운동을 손 놓고 바라봐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한편 사회연대노동포럼 핵심 관계자는 “(민중경선 입장에 대해)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결정사항을 지켜보고 있다”면서 “우리는 각종 노동 사안을 사회연대적 방안으로 풀어내기 위해 정책협약을 맺자는 거다. 정당에 가입한다든가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민중경선 관련) 후보가 끝까지 완주하느냐에 대한 쟁점도 있고. 끝까지 가지 않는다는 견해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곧 정책협약, 선거연합을 한다는 것 아니냐. 그런 면에서 (우리와) 큰 차이가 없다”며 “87년의 오류를 또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문재인이든, 이재명이든, 안희정이든, 심상정이든 그 사람을 중심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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