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대행진, 특검부터 청와대까지…“새로운 세상 위해 걷는다”

숨진 노동자 신발 30켤레 특검 앞에 놓여

“지난 연말 경남 창원 촛불집회에서 ‘박근혜가 퇴진하면 내 삶도 나아질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던 24살 전기공의 질문에 우리는 대답을 해야 합니다.” - 10일 ‘새로운 세상, 길을 걷자. 박근혜, 재벌 총수를 감옥으로 대행진’ 출발 전 김태연 퇴진행동 재벌구속특위 위원장의 발언

노동자, 시민 약 천 명이 10일 오후 4시 반 서울 대치동 특검사무실부터 청와대까지 이르는 대행진에 나섰다. 거리만 16km, 행진 시간은 30시간, 기온은 영하 10도였다.

  김성민 유성기업 영동지회장 [출처: 김한주 기자]


‘새로운 세상, 길을 걷자. 박근혜, 재벌 총수를 감옥으로 대행진 준비위원회(준비위)’는 “하청노동자가 지하철 안전문을 수리하다 전동차에 치여 숨지고, 비정규직 기사가 에어컨을 수리하다 난간에서 떨어져 죽고, 파견노동자가 메탄올에 중독돼 실명하는 사회가 계속되면 안 된다”며 “박근혜만 바뀌는 세상이 아니라, 평등하고 공정한 새로운 세상을 위한 행진”이라며 취지를 밝혔다.

이번 대행진은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가 중심이 됐다. 준비위는 “1,100만 촛불은 한국 사회 불평등에 대한 분노였지만, 광장에서 불평등의 근간인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문제를 해결하라는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며 “그래서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가 모여, 박근혜 이후는 달라진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시민의 마음을 모아 행진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김수억 기아차화성사내하청분회장은 “박근혜 이후의 세상은 비정규직 없는 세상, 노동자가 해고 불안에 떨지 않는 세상, 노조가 탄압받지 않는 세상, 한반도에 사드가 없고, 세월호를 인양해 민중이 주인인 세상이어야 한다”며 대행진에 임하는 각오를 밝혔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공동대표)은 “이 싸움은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아닌, 범죄자 비호세력에 맞서 정의를 밝히려는 자들의 싸움”이라며 “1박 2일 동안 노동자들이 국민의 뜻을 안고, 헌재가 특검을 받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도록 만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수억 기아차화성사내하청분회장 [출처: 김한주 기자]

황유미 10년, 한광호 1년... ‘노동자 연쇄 살인극’

대행진에 앞서 특검 앞에서 진행된 집회는 ‘재벌의 추억, 노동자 연쇄 살인극’이란 이름으로 열렸다. 특검 앞에는 삼성, 현대 등 대기업 노동자로 일하다 숨진 노동자들의 신발 30켤레가 놓였다. 또 대기업 일터에서 숨진 노동자 유가족들이 편지를 낭독했다.

  숨진 노동자들의 신발 [출처: 김한주 기자]

삼성 반도체 직업병으로 숨진 황유미 씨의 아버지인 황상기 씨는 “유미가 떠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건 없다”며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숨진 노동자만 79명이고, 피해자들은 후유장애, 생계문제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돈 없고, 힘 없다고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며 “법 위의 삼성을 법 아래로 끌어내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유성기업 노조 파괴로 숨진 지 330일이 넘은 한광호 씨의 형인 국석호 씨는 “남들은 3일이면 치르는 장례를 1백 배가 넘는 시간 동안 너(고 한광호)의 주검을 차가운 냉동고에 묶어둬야 하는 못난 형을 용서해다오”라며 “이제는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고, 보내고 싶어도 보내지 못하는 한 맺힌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며 심경을 전했다.

그는 “네(고 한광호)가 얼마나 평화로운 공장을 원했는지,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바랐는지 알고 있기에 (조합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있다”며 “지금은 눈물도 얼어버려 쓰라리지만 네가 바랐던 싸움의 승전보를 전할 수 있는 날, 너의 영정 앞에 시원한 막걸리 올리고 원 없이 울어보련다”고 말했다.

대행진에는 갑을오토텍지회, 기아차화성사내하청분회,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유성기업아산·영동지회,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등 노동 및 시민사회단체 82개가 참여했다.

특검에서 대행진을 출발한 노동자와 시민들은 삼성, 법원, 국회를 거쳐 오는 11일 오후 4시 광화문 15차 범국민행동에 결합할 예정이다.

[출처: 김한주 기자]

[출처: 김한주 기자]

  '새로운 세상, 길을 걷자 박근혜-재벌총수를 감옥으로 대행진' [출처: 김한주 기자]


유성기업 고 한광호 조합원 유족 국석호의 편지

유성기업 고 한광호 조합원 유족 국석호의 편지

광호야!!
네가 우리 곁을 떠난 지 어느덧 330일이 넘어서고 있구나....아니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고 보내고 싶어도 보내지 못하는 한 맺힌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

미안하다. 광호야.
남들은 3일이면 치르는 장례를 그 열배, 백배가 넘는 시간동안 너의 주검을 차가운 냉동고에 묶어두어야 하는 못난 형을 용서해다오.
정말 어머니를 뵐 면목조차 없어 부끄럽다.
언젠가 어머니께서 “우리 광호 동료들 그만 괴롭히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라고 말씀하신 적이있다.
“내 아들 살려내라”도 아니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라는데 유시영한테 그 말 한마디 듣기가 이렇게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릴 줄 몰랐다.

20여년 유성기업에 근무한 사원의 죽음에 “안타깝고 유감이다”고 적어놓은 찌라시가 고작 회사의 입장이다.
형이 겪어 봤고 조합원들이 함께 겪고 있는 고소고발이...징계가...해고가 회사는 그저 장난쯤으로 여겨졌나 보다.
듣자하니 검찰의 압수수색 자료에 “영동 분신자살 조심”이라는 문구가 유시영의 아들 유현석의 수첩에 적혀 있었던 걸로 봐서 회사는 노조파괴로 인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끔직한 일을 벌이고도 반성이 없는 회사가 얼마나 잔인한지 알고 있으면서 그 잔인한 현장으로 돌아가겠다고 해고된 형은 이렇게 길거리에서 너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려 발버둥을 친다.
현대차가 직접 노조파괴를 지시했다는 명백한 증거를 보고 한겨울 엄동설한 조합원들은 열달이 넘도록 현대차 앞 에서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어쩌면 애초부터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싸움일지 모르나.... 광호야.
우리는 알고 있다. 네가 얼마나 평화로운 공장을 원했는지? 마음 편히 일 할 수 있는 현장을 바랬는지 알고 있기에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있다.
그것이 곧 너를 편하게 보낼 수 있는 길이고 죽음으로 벗어나려 했던 현장의 평화를 찾는 길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너를 온전히 보내지 못하는 형의 가슴이 찢어지고 구천을 떠도는 너의 영혼이 억울하지만 조금만 참아다오.
반드시 좋은 곳으로 보내주마. 편히 쉴 수있는 곳으로 보내주마.
회사는 너의 시신을 담보로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헛소리를 하고 있지만 형은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죽어서도 이 싸움 끝내기위해 조합원들 곁에 네가 남아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보고 싶은 내 동생 광호야.
형한테 너의 동지들에게 조금만 더 힘을 다오.
지금은 울고 싶어도 울 수 없고 눈물도 얼어버려 쓰라리지만 네가 바랐던 이 싸움의 승전보를 전할 수 있는 그날 너의 영전 앞에 시원한 막걸리 한잔 따라 올리고 원 없이 울어보련다.
그때까지 함께하자... 광호야. 보고 싶다.

2017년 2월10일 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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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 노동자 , 재벌 , 대행진 , 이재용 , 정몽구 , 정리해고 , 민주노총 , 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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