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 세 모녀’ 3년 지났지만… 빈곤 문제는 악화됐다

국회에서 ‘복지 사각지대 피해당사자 증언대회’ 열려

내가 가난한데 왜 가족 동의가 필요? ‘부양의무자 기준’ 덫에 걸린 사람들

임대아파트에 사는 ㄱ씨는 결혼한 자녀 소득에 따라 기초생활수급비가 오르락내리락 한다. 2017년 기초생활수급비 1인 가구 급여는 49만 원가량. 그러나 그는 자녀 소득으로 35만 원이 삭감되어 14만 원 밖에 못 받는다. 공과금 10여만 원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관리비는 계속 밀리고, 밥은 복지관과 주민센터에서 후원 들어오는 거로 “죽지 않을 정도만” 먹고 있다.

“지금 상태에선 목숨에 연연하고 그런 건 포기한 지 오래고,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버린 지 오래예요.”

ㄱ씨 수급비가 삭감되는 이유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상에 있는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이다. 가난한 이의 수급 여부는 수급권자의 1촌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의 소득 수준이 영향을 미친다. 국가가 ‘부모와 자녀’(1촌 직계혈족)에게 일차적으로 부양 의무를 지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ㄱ씨는 사실상 자녀와 연락이 끊겼다. 자녀 결혼식 때 본 게 마지막이었다. 그럼에도 부양의무자 기준은 적용된다.

고시원에 거주하는 ㄴ씨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홈리스 자립을 지원하는 빅이슈 판매원으로 일하고 있다. 번 돈의 절반 이상이 고시원비로 나간다. ㄴ씨는 정신장애와 간질장애가 있다. 하지만 그는 장애 등급을 받지 못했다.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하고 싶지만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신청하지 못했다. 그의 부모가 부양의무자 금융정보제공동의서에 동의해줘야 하는데 거절한 것이다.

“가족이 안 도와주려고 하는데 국가에서 왜 안 도와주는지 모르겠어요.”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가난함에도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2010년 기준 117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송파 세 모녀 3주기를 맞아 복지 사각지대 피해당사자들의 증언대회가 10일 국회의원회관 제4 간담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이 박근혜 대통령 후보 시절의 선거 공약집을 들고 이야기하고 있다. [출처: 비마이너]

송파 세 모녀 3주기, 국회에서 ‘복지 사각지대 피해당사자 증언대회’ 열려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지났음에도 빈곤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송파 세 모녀 사건 3주기를 맞아 복지 사각지대 피해당사자들의 증언대회가 10일 국회의원회관 제4 간담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번 증언대회는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가 공동주최하고 빈곤사회연대가 주관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의 세모녀가 생활고로 동반 자살한 사건 발생 이후 이런 사건의 재발을 막겠다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전면 개정했다. 일명 '송사 세모녀법'이다. 그러나 당시 빈곤사회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는 이 개정안으로는 송파 세 모녀가 살아 돌아온들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다며 ‘개악’이라고 비판했다. 실패는 예견되어 있었다.

노숙인, 가난한 어르신, 자활 참여자… 빈곤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

송파 세 모녀 등 사건이 일어나면 이야기되는 것 중 하나가 긴급복지지원제도다. 그러나 긴급복지지원제도는 전혀 긴급하게 운영되지 않는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빈곤의 최극단에 처해있는 노숙인의 경우엔 사실상 긴급복지지원제도의 적용을 거의 받을 수 없다. 제도가 현장과 괴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노숙인은 긴급복지지원제도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법은 노숙인 시설 및 노숙인 종합지원센터 등 시설을 거쳐야만 신청할 수 있게 해놨으며, 노숙 기간도 6개월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다.

박사라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이외에도 “실제 노숙하는 곳이 아닌 행정상 주소지에서 신청해야 하며, 주거를 먼저 확보해야만 신청할 수 있다”며 신청과정에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한 설령 긴급지원을 받게 된다고 해도 지원금이 늦게 입금되거나 지자체에서 주거비와 생계비 중 하나만 지원하는 점, 3개월의 긴급지원이 끝난 이후 대책이 전무한 점 등도 문제로 지적했다.

실제 홈리스행동이 공개한 노숙인에 대한 긴급복지지원제도 현황(2012년 3월~2015년 12월)을 보면 지원율은 무척 낮았다. 서울시 지자체 내에서 노숙인이 가장 많이 분포한 주요 6개 자치구를 중심으로 보면, 같은 기간 영등포는 172건이나 중구는 3건에 그쳤다. 담당 실무자의 개인 역량, 정보 접근의 한계 등에 의한 차이였다.

기초연금 또한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 중 하나다. 박근혜는 대통령 후보 당시 ‘모든 만65세 이상 노인에게 월 20만 원씩 주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모두’에게 준다는 기초연금은 ‘하위 70%’로 바뀌었고, 이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기초생활수급비를 받는 노인은 제외됐다. 정확히는 25일 기초연금 20만 원을 주고선 다음 달 20일 기초생활수급비에서 20만 원을 삭감한다. 줬다 뺏는 것이다.

동자동 쪽방에 사는 김호태 씨는 “세상에 이런 복지가 어디 있나. 없는 사람 거 뺏어 부자한테 주는 걸 복지라고 하는 나라는 세계에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이런 복지정책이 사람이 할 짓인가.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발언 좀 해달라”며 이날 참여한 국회의원들에게 호소했다.

자활에 참가하는 기초생활수급자의 신음도 터져 나왔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르면, ‘근로 능력이 있다’고 판정받은 이들은 자활에 참여해야만 수급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자활에 참여한 ㄷ씨는 “실제로는 근로 능력이 없는 사람들, 장애 등급 판정 문제로 등급을 받지 못한 사람들, 상담과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자활에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ㄷ씨 또한 심한 고혈압과 당뇨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은 웬만한 노동 못지않은 힘든 노동을 하지만 노동자가 아닌 ‘참여자’라는 이유로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못한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선 자활장려금 명목으로 지급된 자활소득 공제도 폐지됐다. 이로 인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자활소득이 전액 수입으로 산정되어 정작 자활수급자들이 수급권에서 탈락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복지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급선무

이날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일명 ‘송파 세모녀법’이라고 불리는 정부의 기초법 개정안에 대해 “어떻게 줄 것인가 방법만 바뀌고 방법은 더 복잡해졌다”면서 “다리가 아파서 찾아온 환자에게 목에 깁스해서 내보낸 꼴”이라고 비판했다.

김 사무국장은 “복지 사각지대 해소는 수급자 선정 기준과 보장 수준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풀 수 없다”며 예산 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사무국장은 복지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제1의 과제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꼽았다. 김 사무국장에 따르면 부양의무자 완전 폐지를 위해 필요한 비용은 7조 원. 현재 기초생활수급 예산은 8조 원가량이다. 김 사무국장은 “이 둘을 합한 15조 원이면 GDP의 1%”라면서 “GDP 1%면 가난으로 인간 존엄이 위협받을 때 수급권자가 될 수 있다. 20대 국회 과제로 꼭 이뤄지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근로능력평가에서 근로 능력이 있는 수급자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시 수급자격을 박탈하는 것, 폐지된 자활소득공제·자활장려금 원상 복구, 수급권자의 권리 구제 제도 개선 등도 시급히 개선할 점이라고 지적했다.

김 사무국장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제대로 운영한다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 얼마만큼의 복지를 결정하는가와 동시에 사람의 권리를 보장하고 빈곤을 국가와 사회의 책임으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라면서 “20대 국회가 가난한 사람들의 희망을 넓혀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덧붙이는 말

강혜민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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