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퇴진과 노동자민중의 과제

[새책] <진보평론>, 겨울호(메이데이, 2016)

한국사회가 다시금 거대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있다. 지난 십 여 년의 시간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의 소용돌이는 어쩌면 늘 예견되어 왔던 것이었고, 따라서 딱히 2016년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한국사회가 언젠가는 감당해야 할 숭고한 정치적 제례인 셈이다.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의 조문을 끊임없이 외치며 이 나라와 이 사회가, 그리고 우리사회의 정치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촛불을 든 시민과 대중이 한시도 잊지 않았던 헌법 1조의 정신을 그간 정치는 짐짓 모른 척 외면해왔고, 이렇듯 민주공화국의 정치가 자신의 근본을 잃고 오히려 끊임없이 시민들의 삶을 배신해왔다면, 이제 권력의 진정한 주체인 시민들 스스로가 근본 잃은 정치를 부정하고 전복시키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제 우리는 역사적 효력이 다한 ‘87년 체제’를 넘어 우리사회를 유지하고 존속시킬 새로운 원칙과 이념들에 합의해야 할 때를 맞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여 년 간 한국사회 내 민주주의의 위기는 언제나 경제적 영역이 갖는 배제성에서 추동되고 증폭되어 왔다는 측면에서 맹목적 시장주의를 넘어 사회의 경제적 영역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규율하고 통제할 것인가가 앞으로 우리사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광장에서 저항하는 시민들의 요구는 단순한 정권퇴진을 넘어 경제적 영역을 포괄하는 우리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것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으로선 메시아적 반동의 정치가 아닌 시민들의 끊임없는 요구와 저항만이 위기에 빠진 한국사회와 시민 스스로의 삶을 구원해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 말로 시민 자신이 1987년 이후의 반동의 정치를 거부하고 소수 엘리트들에게 위임했던 자신의 권력을 거두어들여 사려 깊은 주권자로서 자신의 자리에 복귀해야 할 때이다. 자기 삶에 기초한 주권자로서 시민의 복귀야 말로 정치가 시민적 삶을 배신해온 지금, 우리사회에 남겨진 유일한 희망이요 구원이다.

그래서 이번 <진보평론> 70호 특집 주제를 ‘박근혜 퇴진과 노동자민중의 과제’로 정했다. 우선 배성인은 “박근혜 퇴진과 민주평등 국가시스템 건설”에서 이번 촛불에서의 희망은 구체제의 청산이고 새로운 민주평등 국가시스템의 건설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구체제를 청산한다는 것은 구체제가 정의롭지도 않고 당장 불행하고 인간을 억압하고 지배계급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대중들의 재산을 빼앗고 착취하는데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정과 학교와 일터에서 주권자가 되지 않는 한 박근혜가 퇴진해도 굴종하는 삶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박근혜 없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일 뿐이다. 따라서 진보-좌파가 선두에서 민중적 의제를 확장하고 주도하는 역할을 대중적으로 책임성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시웅은 “박근혜정권 퇴진투쟁, 민주주의 투쟁을 넘어 반자본주의 투쟁으로 발전시키자”에서 촛불투쟁을 ‘반자본주의 투쟁’으로 규정하고 그 계기를 반재벌 투쟁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는 박근혜일당 비리와 관련된 재벌총수 구속과 재벌권력의 해체 그리고 사내유보금 환수와 재벌의 사회화를 위한 투쟁을 강조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 변혁 전망 하에서 노동자민중이 소유하고, 노동자민중의 민주적 통제를 통해 이뤄지는 재벌의 사회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고민택은 “박근혜정권 퇴진정국의 정치학”에서 광장의 성격과 분석 평가하면서 진보-좌파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광장의 정치화를 속도감있게 추진해야 하고, 광장을 대선 때까지 유지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한다. 그것도 광장을 최대한 ‘진보-좌파’의 대선 기지로 만들면서 말이다. 그는 광장은 이제 즉각퇴진/탄핵인용을 한편으로 외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보다 더 전면에 노동자민중의 요구를 결합시켜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정주는 “촛불의 저항에서 대항 헤게모니로”에서 광장에서의 시민적 저항이 한국사회 전체의 구조전환을 강제할 하나의 혁명적 힘으로 전화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것은 곧 대항 헤게모니를 가져야 한다는 것인데, 노동자 계급과 대중들의 삶의 영역 속에서 자본과는 상이하면서 결코 자본에 양도할 수 없는 새로운 계급적 이해관계, 혹은 대중적 이해관계를 창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호에는 “진보운동의 현재와 전망”이라는 기획을 마련해서 4편의 글을 실었다. 김인식, 최일붕은 최근 민주노총에서 가장 뜨거운 현안이 되고 있는 “정치전략”(안)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 핵심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연대/연합을 이룰 수 있는 가능하고 현실적인 방안을 찾을 것을 현실에 바탕하여 논증하고 있다. 즉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비판을 통해 ‘진보’와 ‘좌파’ 사이의 연대/연합 정치를 성립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아직도 ‘진보대통합(당)’을 주장하고 있는 세력은 김인식, 최일붕의 비판을 귀담아 새겨들어야 할 점이 많다고 할 것이다.

고민택은 지난 20년에 걸친 ‘진보(정당)정치’에 대한 평가를 한마디로 현실정세에 뒤떨어진 퇴화된 운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진보’가 새롭고, ‘좌파’가 낡았다는 세간의 평가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한국의 ‘진보(정당)정치’는 그 이념과 노선이 역사적, 세계적으로 이미 드러낸 문제 이전의 문제에서 벗어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끈질기게 지적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한국의 노동자계급이 투쟁으로 일군 성과를 부르주아 정치에 빼앗기게 하는 원인을 ‘진보(정당)정치’가 제공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된 현실에 대한 일단의 책임이 ‘좌파’에게도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고 있다.

박영균은 ‘진보’는 물론 ‘좌파’도 과거의 NL/PD 구도에 갇혀 있다는 점을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특히 ‘진보’는 단지 성공적이지 못해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진보적이지도 못했다는 측면이 더욱 큰 문제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 근거를 ‘진보’가 노출한 퇴행성에서 찾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직접민주주의와 인민의 자기-통치 이념을 받아들이고 실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심광현은 보다 포괄적으로 ‘진보’에 대한 평가를 시도한다.

심광현은 ‘정치’에 대한 규정으로부터 출발하여 그것의 실행 플랜까지를 종합적으로 설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루소와 맑스를 접합하고, 루소의 사회계약에 대한 알튀세르의 문제제기를 마키아벨리와 특히 그람시를 통해 극복하고자 한다. 심광현에게 정치는 개인(자기)-사회-자연의 관계를 선-순환시키기 위한 의식적, 능동적 행위다. 그 속에서 특수의지(정당/정파)를 일반의지로 전환하는 계기를 찾아야 하며, 찾을 수 있는 방안으로 정당/정파가 단지 상부구조로서 역할만이 아니라 미래의 생활세계를 지금의 현실에서 구현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국제정세는 한상원의 “억압된 것의 회귀: 브렉시트, 트럼프 그리고 증오의 포퓰리즘”을 실었다. 그는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이 전체주의를 향한 위험한 길에 놓여있다고 하면서 대중의 공격적 충동들이 새로운 극우 정치세력의 선동 속에 표면화되었다고 한다. 그 원인은 익히 알고 있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된 자본주의가 낳은 극단적 불평등과 만성적 사회 위기 때문이다. 대안은 ‘억압된 것의 회귀’에 대해 (대항적) ‘정치의 회귀’로 맞서는 것이다.

발언대는 두 편의 글을 실었다. 고준우는 “순수한 학생사회와 그 적들”에서 청년세대에 있어서의 순수성 이데올로기가 재생산되는 과정을 최근 위축되어 있는 학생운동과 학생사회의 조건과 연관시켜 대답하고 있다. 그는 학생운동이 지향하고 있는 구조적인 차원의 사회 변화와 당장 학생들이 당면해있는 어려움들 사이를 적절하게 중개하고 연결할 이론과 실천의 개발이 적절히 이뤄지지 못했다고 한다. 따라서 다양한 자기정치의 계기가 절실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시인 김희정은 문학계의 성폭력 사건을 말하고 있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인 한국 사회 곳곳이 성폭력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현실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대책 역시 구조적 차원에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할 여성의 언어를 지속적으로 발명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일반논문은 세편을 실었다. 박정원은 세르반테스 서거 400주년을 맞아 “돈키호테, ‘황금시대’를 그리다”에서 특별한 얘기를 한다. 마르크스가 가장 좋아했던 책 돈키호테. 박정원은 인류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공동체주의로 설장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자유와 정의와 평등이 실현되는 세상을 위해 투쟁하는 돈키호테가 사회 여러 분야에서 등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심아정은 “관동대지진 후 지면(地面)과 지면(紙面)에서 펼쳐지는 감각의 각성”에서 다이쇼 시기 활동 했던 시인 하기와라와 건축가 곤와지로를 비교하면서 삶의 의미와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것은 예술가들이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이게 만들고, 들리지 않던 소리들을 들리게 만드는 감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는 점이다.

이번 호에는 닐스 크리스티의 “소유물로서의 갈등”을 윤수종의 번역으로 실었다. 고도산업사회는 너무 많은 내적 갈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 적게 가지고 있다. 우리는 갈등이 양성되기도 하고 가시화되기도 하도록 사회체계를 조직해야 하고, 또한 직업가들이 그 갈등관리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범죄의 희생자들은 특히 자신들의 참여권리를 잃어버렸다. 갈등에 대한 참여자 자신의 권리를 회복시키는 법정 절차를 이 글에서 그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서평 두 편을 실었다. 멜린다 쿠퍼의 “잉여로서의 생명”(안성우 옮김)을 이정섭이 평가를 해줬고, 조희연의 “투 트랙 민주주의”에 대한 이승원의 서평이 실렸다. 호흡을 가다듬고 차분히 탐독하면 현 정세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2016년 겨울은 우리에게 구체제와의 결별을 고하는 마지막 겨울이 되었으면 한다. 더 이상의 고통과 착취와 억압의 사슬에서 해방되는 2017년을 맞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끈질긴 투쟁은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든다는 믿음을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목차>

특집: 박근혜퇴진과 노동자민중의 과제

촛불항쟁과 박근혜퇴진의 정치사회학 - 배성인
박근혜정권 퇴진투쟁, 민주주의 투쟁을 넘어 반자본주의 투쟁으로 발전시키자 - 김시웅
박근혜정권 퇴진정국의 정치학 - 고민택
촛불의 저항에서 대항 헤게모니로 - 김정주

기획: 진보정치의 현황과 전망

정치전략 토론안(案)에 대한 한 급진좌파의 의견 – 김인식·최일붕
‘진보(정당)정치’,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 고민택
한국의 진보정치, 무엇이 문제며 어디서 출발할 것인가? - 박영균
21세기 이행기 정치의 과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향한 <광장의 정치>와 <창조의 정치>의 파트너쉽을 위하여 - 심광현

국제정세
억압된 것의 회귀: 브렉시트, 트럼프 그리고 증오의 포퓰리즘 - 한상원

발언대
순수한 학생사회와 그 적들: 대학에서 재생산되는 순수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고찰 - 고준우
우리는 모두 ‘사건’에 응답해야 한다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 부쳐 - 김희정

일반논문
돈키호테, 「황금시대」를 그리다 - 박정원
관동대지진 후 지면(地面)과 지면(紙面)에서 펼쳐지는 감각의 각성 - 심아정

번역
소유물로서의 갈등 - 윤수종

서평
두 잉여 - 암(cancer)과 되기(becoming) - 이정섭
‘운동’이라는 호흡으로 ‘정치’를 살리려는 이론적 시도 – 이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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