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본소득 받고 싶은데, 너는 어때?

[워커스 개강준비호] (1)기본소득느님,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어요?

[도비라] 이번에는 ‘기본소득’이다. 반값등록금, 기초노령연금에 이어 새롭게 발굴된 대선용 복지 이슈다. 만인에게 평등한 기본소득이라니. 왠지 지금의 궁핍한 생활과 불평등 구조를 일시에 해소할 만능키 같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자본주의 매커니즘이 불평등을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힘의 기울기부터가 불평등한데, 저들이 순순히 돈과 불평등의 권력을 내어놓으려고 할까. 뭔가 또 다른 속내가 숨겨져 있을 것만 같다. <참세상X워커스>는 궁금해졌다. 기본소득이 시행된 미래 사회에서 우리의 삶은 평등할까. 그리고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총 5회에 걸친 기획 연재기사를 싣기로 했다.

[연재순서]
1) 나는 기본소득 받고 싶은데, 너는 어때?
2) 네가 가라, 기본소득 사회
3) 기본소득 184조원 is뭔들
4) 기본소득, 1라운드 시작한 실리콘 벨리 사장님과 노동자들
5) 절박한 내 인생, 기본소득 반대론자들이 밉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기본소득을 받고 싶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준다니! 뭐 애초에 큰돈을 바란 건 아니고, 한 달에 30만 원 만 받아도 행복하겠다 싶었다. 부푼 가슴을 안고 고민에 빠졌다. 기본소득을 받으면 뭐부터 할까? 우선은 전세자금대출 이자를 갚아야 하고, 나중에 전세 값 올려달라고 할 수도 있으니 돈을 좀 저축 해야지. 핸드폰 요금도 안정적으로 기본소득에서 해결했으면 좋겠다. 한 달에 10만원 씩 들어가는 교통비와, 은근 부담되는 생리대 비용도 해결해야겠다. 그리고 엄두가 나지 않아 마냥 참고 있었던 허리통증 치료도 한번 받아 볼까? 돈 쓸 생각은 한도 끝도 없었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 과연 기본소득 만으로 주거, 교통, 생필품, 병원비를 충당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얼마를 받아야만 생활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걸까? 정말 그만큼의 돈을 모두에게 나눠준다는 게 현실적인 일일까?

기본소득이 정치권에서 핫 이슈로 부각된 만큼, 사람들의 관심도 많겠다 싶었다. 여성만 가입할 수 있다는 꽤 유명한 인터넷 카페에 조언을 구했다. ‘기본소득 어떻게 생각하세요?’ 많지는 않지만 꽤 구체적인 댓글들이 달렸다. 누군가는 ‘우리보다 훨씬 부유하고 인구는 훨 적은 스위스에서 몇 년 전에 국민투표로 물었을 때도 실패했는데, 과연 될지 좀 의구심이 든다’고 답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시간당 기본임금이 만원도 안 되는 나라에서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많은 나라에서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했다. ‘일자리 늘려주는 게 더 좋다’는 사람도 있었다. 기본소득의 문제는 곧 노동 문제와 사회복지 제도의 문제로 치환됐다. 그렇다면 왜 이제와 기본소득이 핫한 문제로 자리를 잡은 걸까. 과연 우리가 원하는 것은 ‘기본소득’ 그 자체일까.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기본소득 받으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어?

보다 직접적으로 묻고, 구체적으로 듣고 싶었다.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하고 싶은가. 그리고 당신의 노동은 어떻게 변할 것이라 예상하나. 주관식 형태의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SNS와 유선전화를 통해 설문에 참여한 100명의 답변을 분석했다. 심플한 질문에 생활 밀착형 답변들이 딸려 나왔다. 기본소득으로 주거, 의료, 교육 등 복지영역 지출 비용을 충당하겠다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주거와 노후를 위해 저축을 하겠다는 사람도 상당했다. 누군가는 여유롭고 자발적인 노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낙관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노동 환경에는 변화가 없거나 더 열악해질 것이라 비관했다.


기본소득을 어떻게 사용할 것이냐는 첫 번째 문항.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한 답변은 주거, 의료, 교육 등 기본적 복지비용을 충당하겠다는 것이었다. 스물네 명의 응답자, 즉 24%가 이를 꼽았다. 이 중 ‘교육’과 ‘주거’가 각각 9%, ‘병원 등 건강’이 6%를 차지했다. 구체적으로는 ‘월세 걱정을 하지 않고 살고 싶다’는 답변에서부터 ‘매 학기 500만 원에 달하는 등록금에 보태기’, ‘틀어진 하체고정 치료’ 등에 기본소득을 사용하고 싶다고 답했다.

두 번째로 많이 꼽은 항목은 ‘저축’이었다. 총 23%의 응답자가 ‘주거 공간 마련’과 ‘노후 대책’을 위해 저축을 하겠노라 했다. 비싼 집값과 불안한 노후 생활을 위해 목돈을 마련하겠다는 거였다. 결국 저축의 용도는 주거, 노후 등 기본적 복지 문제로 포괄됐다. 개중에는 저축한 돈으로 여행을 가겠다는 응답자도 있었다. 17%의 응답자들은 기본소득으로 ‘여행과 여가생활’을 늘려보겠다고 했다. 기본소득이 시행되면 그동안 사치로만 여겨졌던 여행, 문화생활 등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겠냐는 기대였다. 기본소득을 ‘생활비’에 보태겠다는 응답자도 14%였다. 자녀 용돈, 보육비, 밀린 핸드폰 요금, 공과금, 식대 등이 ‘생활비’의 범주로 포함됐다. 한 응답자는 “돌도 안 된 아기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출근하고 있다”며 “엄마한테 매달 60만 원을 드리고 있는데 너무 빠듯하다. 그 돈이 생기면 아이 보육비로 다 나가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또 다른 응답자는 “건당 임금을 받는 형식이라 생활비를 충당하기 힘들다”며 “60만원을 받으면 고스란히 사람 만나고, 밥 먹는데 다 쓸 것 같다”고 답했다.

6%의 사람들은 기본소득을 받게 되면 ‘빚’을 상환하겠다고 했다. 누군가는 “없는 돈 쪼개가면서 갚고 있는 학자금 대출을 갚고 싶다”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전세자금대출 이자와 원금을 빨리 상환하고 싶다”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빚’의 명목도 주거와 교육비 등 기본적 복지 문제와 직결돼 있었다. 이 밖에도 5명의 응답자가 ‘사직을 하겠다’고 했고, 또 5명의 응답자는‘(사진 등의 예술) 작업을 하겠다’고 말했다. 문화예술인에게 기본소득은 곧 ‘생계비’였다. 반면 기본소득 자체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다. 한 응답자는 “기본소득 정책은 적절한 사회정책도, 진보진영이나 노동자운동이 주장할 정책도 아니다”라며 “정책 자체에 대한 검토 없이 이런 방식으로 설문을 진행하고 기사가 나오는 것도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기본소득이 시행된다면, 우리의 노동은 어떻게 변화할까?

누군가는 기본소득이 우리의 노동조건을 향상시킬 것이라 이야기한다. 완전고용이 불가능한 시대인 만큼, 노동중심의 사회복지정책이 아닌 조건 없는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정 반대의 의견도 있다. 불안정노동이 고착화 되고, 노동자들의 교섭력은 더욱 약화돼 노동조건이 하향평준화 될 것이라는 우려다. 만약 정말 기본소득이 시행된다면 우리의 노동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각각 다른 기대와 우려를 품고 있는 100명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역시 우려보다는 기대가 컸다. 39%의 응답자가 ‘여유롭고 자율적인 노동을 하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생존을 위한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닌, 가치 있는 노동을 찾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한 응답자는 “눈치를 덜 보고 할 수 있어 더 자유롭고 능률적이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빚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무리하게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동기부여가 돼 더 열심히 일할 것 같다”고 답한 사람들도 있었다.

비슷한 취지로 ‘노동시간이 줄어들 것’이라고 답한 비율도 11%였다. 굳이 잔업, 특근 등 초과노동을 하지 않아도 생활에 여유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였다. 한 응답자는 “지금 급여로는 생활비만 딱 나오는 수준이라, 기본소득이 시행된다면 급한 병원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 무리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본소득이 현재의 저임금을 보존하는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였다. 또 다른 응답자는 “잔업은 안 할 것이고 주 4일만 일하게 될 듯”이라고 답했고, 또 다른 응답자는 “잔업특근에 목맬 필요가 좀 덜해질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33%의 상당수 응답자들은 현재 노동환경에 변화가 없거나, 혹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응답자는 “월 60만원으로 힘든 직장을 그만두고 내가 원하는 노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물가가 올라도 (사업주가) 쉽게 임금을 올리지 않을 것”, “기업주들이 기본소득 핑계를 대며 저임금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낼 것 같다”고 전망하는 이들도 있었다. 기본소득을 핑계로 임금 인상이 정체되고, 결국 노동자들의 교섭력까지 악화 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그 돈으로는 편의점 알바도 그만 둘 수 없다”, “그 정도의 액수로 노동자들의 생활이나 노동환경이 획기적으로 달라지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는 등의 답변도 있었다. 일부는 기본소득이 오히려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답했다. 한 응답자는 “세금은 더 내야 할 테니 중위소득이라면 마찬가지”라며 “하지만 사회적 총 생산성은 낮아지고, 육아, 노인요양 등 더 필요한 공공서비스가 필요한 계층에게는 지출이 낮아지니 일부 시민의 삶의 질은 저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매달 통장으로 꼬박꼬박 들어오는 기본소득. 그것은 과연 우리의 생활과 노동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우리가 원하는 주거와 교육, 의료, 보육, 노후를 모두 책임지게 될 마스터키일까. 아니면 지금의 열악한 현실을 덮기 위한 과대 포장용기일까. 이제부터 ‘기본소득’과 함께 하게 될 미래의 일상을 상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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