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나중에’ 차별금지법…문재인 논란으로 제정 운동 촉발

200여 단체 연대… “지금 시작해야 나중도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성 소수자 인권 배제 발언으로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 다시금 촉발했다. 246개 시민사회단체는 23일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펼쳐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출처: 김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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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제자리…정치인 표 계산에 미뤄진 차별금지법?

차별금지법은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보시절 내걸었던 공약이다. 2007년 10월에는 법무부가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에 따라 입법 예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수 기독교 단체 등의 반대에 부딪혀 성적지향과 병력 등의 사항이 삭제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사실상 폐기 절차를 밟았다.

2010년에도 법무부가 입법 시도했지만 역시 무산됐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기인 17-19대 국회에서도 연이어 발의됐지만 제정되지 못했다.

국제사회의 요구도 이어졌지만 변화는 없었다. 2011년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와 아동권리위원회, 2012년 8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2012년 UN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UPR) 등이 요청, 권고에 나섰지만, 차별금지법은 10년째 발이 묶여 있다.

진보단체 출신 시장이 집권한 서울시도 세계인권헌장을 폐기하는 등 성소수자의 인권은 외면했다. 지난 2014년, 서울시는 시민 190명과 함께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 등 헌법과 법률이 금지하는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를 포함한 세계인권헌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종교, 보수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폐기했다. 기독신문에 따르면 박원순 서울시장은 인권헌장 폐기 다음날(2014년 12월 1일) “동성애는 확실히 지지하지 않는다”며 “일부 언론에서 동성애를 지지한다는 보도는 와전됐다”고 말해 비판을 받았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정치인들은 지난 10년 동안 차별금지 법안을 발의했다가 자진 철회하고, 보수기독교 세력, 혐오 세력에게 가서 ‘나는, 우리당은 차별금지법 안 만든다’고 읍소해 왔다”며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사회적 소수자, 힘과 권력 없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 폭력을 묵인하고, 동조 세력에 명분과 권력을 주겠다는 것”이라며 정치권을 비판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는 “유력 대선 후보들이 차별금지법이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것처럼 얘기하는 걸 참을 수 없다”며 “세계 정치지도자들도 일관된 차별 금지 메시지를 던진다. 어느 순간에도 우리는 소수자의 편이라고 각인시켜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유력 정치지도자의 발언은 소수자를 고립시키고 있다”고 일침을 놨다.

김주온 녹색당 운영위원장은 “(문 전 대표는 차별금지법이) 사회적 합의가 안 됐단 변명을 할 수 없다”며 “(문 전 대표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고, 소수자 차별을 없애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느냐”고 지적했다. 또 ”‘시기상조, 나중’이란 말도 그만해야 한다. 지금 시작해야 나중도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김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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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은 모든 사회적 약자의 차별을 반대하는 법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정의는 ‘헌법의 평등 이념에 따라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 국가/민족/지역, 피부색, 용모, 사상,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 등 모든 영역에 있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이다. 성 정체성에 대한 차별을 포함해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는 인권법인 셈이다.

나경채 정의당 공동대표는 “헌법 11조에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데, 그럼 언급되지 않은 피부색, 빈곤, 성 정체성에 대한 차별은 괜찮은 것이냐”며 “여성 노동자는 남들이 월급 200만 원 받을 때, 126만 원을 받고, 이주여성 자녀는 학교에서 매년 6월 민족공동체의식 함양 숙제를 받고, 장애인은 아직도 고속버스를 못타고 있고, 동성애자는 결혼할 수 없다”고 모든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주장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은 몇십 년 전부터 (한국에) 존재했지만 지금도 차별받고 있다”며 “경찰은 사업주 편만 들고, 공무원은 있는 법도 지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말로만 평등을 얘기하는데, 실천하지 않고 있다”고 호소했다.

김광이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도 “한국 역대 정권을 거치며 이 지경까지 온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다”며 “법의 찬반 갈등 속에 차별로 지난한 삶을 살아온 장애인의 경험은 담겨 있었느냐”고 지적했다.

앞서 문 전 대표는 2월 13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찾아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다른 성적 지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배제되거나 차별돼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으므로, 추가 입법으로 인한 불필요한 논란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의 공식 입장”이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동성애나 동성혼을 위해 추가 입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고도 했다.

또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2월 16일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포럼에 참석한 문 전 대표를 찾아 “저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인데 제 인권을 반반으로 자를 수 있느냐”며 항의하자, 문 전 대표는 “나중에 말씀해달라”고 했다. 문 전 대표는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실효성 여부를 떠나 차별금지는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법제화돼 있다”며 “내가 여러분을 설득하면 모르겠는데 거꾸로 저를 어떻게 (설득)하려고 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이에 여성주의 단체인 연분홍치마는 “문 전 대표도 인정했듯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실효성이 부족하다”며 “(법적 강제력을 갖는) 차별금지법은 더 많은 인권과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해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렌스젠더라고 밝힌 박한희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활동가는 “차별금지법 제정 지연 현실에 항의하기 위해 (문 전 대표를) 찾아갔지만, 청중들은 ‘왜 이렇게 잘난 체하냐’고 화를 냈다”며 “그곳에 벌어진 일은 불평등한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전했다. 박한희 활동가는 “국가인권위원회는 성 소수자 95%는 온라인에서 혐오표현을 경험했다고 밝혔고, 54%는 친구들로부터 차별과 괴롭힘을 당했다고 밝혔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강애란 여성민우회 공동대표는 “광장은 더 나은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외친다”며 “보수적 시선, 남성 중심적 시선이 아닌, 다양한 소수자의 시선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차별금지법이 “기본적이고 당연한 법안”이라며 “진보를 자처하는 후보자조차 이 법에 거리 두고 주저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더 나은 민주주의로 나아가냐”고 문 전 대표를 지적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우리는 오늘(23일) 광장의 싸움이 차별받는 모든 사람의 연대의 장이 되기를 염원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의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낼 것”이라며 “새로운 세상을 정치인에 위탁하지 않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을 제정에 참여한 시민사회단체는 총 246개다. 인권운동사랑방, 한국여성민우회, 홈리스행동 등 시민단체 116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43개 단체),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27개 단체),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 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35개 단체) 등이 참여했다.

[출처: 김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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