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한 나의 인생, 기본소득 반대론자들이 밉다

[워커스 개강준비호] (5)기본소득느님,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어요?

[도비라] 이번에는 ‘기본소득’이다. 반값등록금, 기초노령연금에 이어 새롭게 발굴된 대선용 복지 이슈다. 만인에게 평등한 기본소득이라니. 왠지 지금의 궁핍한 생활과 불평등 구조를 일시에 해소할 만능키 같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자본주의 메커니즘이 불평등을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힘의 기울기부터가 불평등한데, 저들이 순순히 돈과 불평등의 권력을 내어놓으려고 할까. 뭔가 또 다른 속내가 숨겨져 있을 것만 같다. <참세상X워커스>는 궁금해졌다. 기본소득이 시행된 미래 사회에서 우리의 삶은 평등할까. 그리고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총 5회에 걸친 기획 연재기사를 싣기로 했다.

[연재순서]
1) 나는 기본소득 받고 싶은데, 너는 어때?(링크)
2) 네가 가라, 기본소득 사회(링크)
3) 기본소득 184조원 is뭔들(링크)
4) 기본소득, 1라운드 시작한 실리콘 벨리 사장님과 노동자들(링크)
5) 절박한 내 인생, 기본소득 반대론자들이 밉다



대선 국면의 핫 이슈로 떠오른 기본소득. 국민 절반 이상이 지지하는 잇아이템이기도 하다. 기본소득을 받으면 뭐부터 해야 할까? 들뜬 마음을 먹어보려는 찰나. 어디선가 살인태클을 거는 인사들이 등장한다. 기본소득이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역진적 정책이라는 주장과 함께. 더욱 배신감이 느껴지는 건, 이들이 ‘과잉복지’나 ‘나태’를 운운하는 보수 세력이 아닌, 진보 진영 인사들이라는 사실이다. 먹고 살기 힘들어 기본소득 좀 받아보겠다는데, 이들은 왜 간만에 주목받는 복지 이슈를 깎아내리려는 걸까. 그들에게 묻고 싶다. 기본소득만큼 확실하고 시급한 사회복지정책이 뭐가 있느냐고. 기본소득 발목을 잡고,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를 말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풍요속의 빈곤, 그 역시 빈곤의 굴레다

정리해고,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세상. 질 좋은 일자리를 찾아 헤매지만 결국 도달하는 곳은 고용절벽 뿐인 사회. 그리고 4차 산업 혁명으로 기계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암울한 미래. 이 모든 것을 타개할 대안으로 기본소득이 나왔다. 모든 국민에게 공평하고 평등하게, 어떠한 조건도 없이, 평생 동안 지급하는 현금소득. 보편적 복지의 끝판 왕. 굉장히 심플하다. 그래서 구미가 당긴다. 왠지 대한민국에 노숙인이 단 한 명도 남지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심플함은 간혹 중요한 변수들마저 단순화시키는 법. 기본소득 반대론자들이 주목하는 것 역시 심플함으로 퉁 치는 와중에 드러나는 여러 구멍들이다.

최근 기본소득 논쟁은 지난 무상급식 논쟁에서 ‘보편적 복지는 선하다’는 프레임이 유지, 발전하는 과정과 맥을 같이한다. 하지만 현재 사회구조 속에서 보편적 복지는 천사와 악마라는 두 얼굴의 야누스다. 사회복지와노동포럼의 제갈현숙 박사는 “국민기초생활보장기금 40만 원과 국민연금 20만 원을 수급하는 기초생활수급자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현재 그가 받을 수 있는 돈은 40만원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 말인 즉 슨, 현재 제도 설계가 중복연금 수급이 금지하고 있어 최고 수령액에 해당하는 연금만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사회보장제도가 축소되고 50만 원의 기본소득이 모든 국민에게 지급된다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받을 수 있는 소득은 여전히 50만원이다. 정부가 올해 기초생활보장 급여 수준 현실화 정책으로 내 놓은 평균 수급액은 54만 4천 원이다.

제갈현숙 박사는 “기본소득은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역진적인 정책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보편적, 선별적 복지는 선악의 문제가 아니며, 선별적 복지는 불평등 완화를 위해 무조건 작동해야 하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의 노동 조건을 끌어올려야 하는 것처럼, 빈곤층의 생활을 끌어올리려면 공공부조의 확대가 필수적이다. 진보진영의 기본소득 반대론자들이 강조하는 것 역시 이 지점이다. 우선적으로 비정규직과 노인, 청년, 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들의 소득보장을 셋팅하자는 것이다. 물론 현재 설계 된 복지제도로는 어림도 없다. 최근 이슈가 된 영화 속 장면처럼, 실업급여 하나 수급하는 데에도 엄청난 수치심을 감내해야 한다. 자격 요건을 증명하기 위해 온갖 개인정보들이 들춰지기도 한다. 제갈현숙 박사는 “현재의 사회복지체계는 바뀌어야 하는 것이 맞다”며 “하지만 아무리 문제가 많다고 해도 불평등 완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무조건 없애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문제를 진단하고 이를 고쳐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동의 시대가 저물고, 기본소득의 새날이 올까

기본소득 논의는 미래의 일자리 문제, 즉 노동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4차 산업 혁명으로 많은 일자리가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위기. 그리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비자발적 실업자들의 생계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고민의 출발점이다. 고민의 결과는 ‘탈 노동’이다. 생산수단 소유의 문제를 건드리기 보다는 등을 지는 방식이다. 기본소득의 비현실성 역시 여기서 출발한다. 김성구 한신대 국제경제학 교수는 “노동의 토대 없이 복지정책은 존립할 수 없다”며 “복지정책을 시행하려면 재정이 있어야 하고, 재정이 있으려면 소득이 있어야 한다. 잉여가치나 지대소득을 생산하는 것은 기계가 아닌 노동자”라고 설명했다. 생산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배제될 경우 조세의 기반이 되는 부가가치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김 교수는 “노동자들이 축출되면 이윤율이 저하된다. 그러면 투자가 줄고 자본축적이 둔화 돼 일자리는 더 줄어들게 된다”며 “이렇게 부가가치 기반 재원이 없어진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받는다는 건 꿈같은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일자리를 둘러싼 질문 자체가 잘못 던져졌다는 비판도 있다. ‘일자리가 줄어든다면’이 아닌 ‘장시간 노동을 없앤다면’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갈현숙 박사는 “3차 산업 혁명 때는 전 세계 일자리 3분의 1이 사라진다고 했고, 컴퓨터가 발명되고는 단순 노동이 없어진다고 했다”며 “하지만 우리는 지금 컴퓨터 앞에서 밤을 새며 일한다. 10명이 할 일이 5명으로 줄어들었는지는 몰라도 노동 강도는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안정된 일자리를 줄여 고용 경쟁을 부추기고, 장시간 노동을 고착화 시키는 흔한 방식이다. 그리고 노동계는 꽤 오랫동안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나눠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여러 우려와 비판에도 ‘기본소득’은 여전히 정치권의 핫 이슈다. 여기서 따져봐야 할 것은, 그들이 필요한 것이 정말 ‘기본소득’인지, 아니면 기본소득이라는 ‘네이밍’인지다. 앞서 언급했듯, 기본소득은 아무런 조건 없이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지급하는 현금 소득이다. 하지만 기본소득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선 이재명 성남시장의 모델은 이와 다르다. 성남시에서 추진한 청년 배당에서부터, 그가 공약으로 내건 ‘아동, 청소년, 청년, 노인, 장애인, 농어민에게 연 100만원 지역화폐 배당’까지 모두 기본소득이라 명명했다. 김성구 교수는 “이재명 시장이 말하는 기본소득은 모두 기존에 존재했던 사회보장제도”라며 “대중의 지지는 단지 ‘기본소득’이라서가 아니라, 와해된 생존 조건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반응”이라고 분석했다. 정치권이 사회보장제도에 ‘기본소득’이라는 포장지를 씌운 까닭은 그 무엇보다 심플하다. 김 교수는 “반값등록금, 기초노령연금 등 대선 시기 정치권에서 이슈화 시킨 사회복지 공약들은 성공한 사례가 없다”며 “이미 대중이 환멸을 느끼는 실패한 공약들을 다시 꺼내 들 수는 없는 일 아니냐.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어쩌자는 것이냐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거냐. 간만에 나온 복지 이슈를 역사 속으로 밀어 넣어야 속이 후련하겠냐. 천만의 말씀이다. 다만 기본소득 논쟁의 좁은 울타리를 열어보자는 거다. 송명관 참세상연구소 연구위원은 “지금의 논쟁은 굉장히 사변적”이라며 “애초 ‘클리포드 더글러스’가 만들어낸 기본소득의 뿌리와 맥락은 사장한 채, 재원과 인플레, 기본소득 액수에 대한 논쟁으로만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기본소득의 뿌리는 1920년대, ‘클리포드 더글러스’가 쓴 <사회신용>이라는 저서에서 시작한다. 그의 제안은 두 가지다. 기업의 생산 총량이 항상 소비의 총량을 초과하는 것을 메우기 위해 보존화폐를 지급하자. 그리고 인플레이션 억제책으로 가격을 조정하는 매커니즘을 만들자. 한 마디로 기본소득으로 예상될 인플레를 막기 위해 정부가 가격을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송 연구위원은 “가격 통제가 없으면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공급자, 판매자에 의해 가격 상승이 이뤄질 수 있다”며 “판매자가 우위에 있는 주거, 교육, 의료 등을 시작으로, 광범위한 재화에 가격 통제가 이뤄진다면 결국 탈 시장화가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세금과 액수 논쟁을 넘어, 탈 시장화를 통한 사회화 논쟁으로까지 끌고나가야 한다는 요구다. 무엇보다 관건은 이재명 식 기본소득 모델의 진위를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청년, 노년, 저소득층 등을 타깃으로 한 소득보장 제도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이냐다.

송 연구위원은 “세금 논쟁에 갇히게 되면 밥그릇 싸움이 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에게는 중앙은행이라는 큰 밥그릇도 있다는 것”이라며 “청년, 노인, 빈곤 문제가 심각하고 중요하다면 어떤 밥그릇이라도 당겨 와야 한다. 박근혜가 구조조정 지원을 위한 양적완화를 언급했다가 좌파가 희화화 한 적도 있지 않나. 오히려 우리가 사회복지를 위해 돈을 더 찍어내자고 역제안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삶이 곤궁한 건 세상이 곤궁해져서가 아니라, 1%의 재벌이 부를 독점하고 있어서다. 빼앗아 오던, 찍어 내던, 결국 우리가 건드려야 할 것은 조그만 복지재정 밥그릇이 아닌, 돈이 쌓여있는 곳간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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