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시대’를 시작하며

[노동의 시대]노동자의 삶과 투쟁을 담은 기록

10여 년 전 민중언론 <참세상>의 출발을 고민하는 자리에 함께 했다. 여러 사람들의 고민 끝에 제115주년 메이데이에 바뀐 미래의 이름을 매체 이름으로 정해 참세상은 출범했고 박수를 보냈다. 이후 어려운 현실적 조건에서 고군분투하는 관계자들을 보면서도 마음으로만 응원했다. 현장 운동의 영역에 있으면서 언론에서 역할을 하는 것은 능력과 일정 모두 언감생심 가당치도 않았다. 하지만 편집진으로부터 유무형의 역할을 끊임없이 요청받았으나 제대로 무엇을 한 기억이 없다. 늘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얼마 전 참세상 편집진이 새롭게 구성되면서 작은 실천이라도 하라는 기고요청에 고심했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두듯이 응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어쭙잖은 글을 쓰기 시작해 ‘길에서 만난 사람’이라는 책도 출판했으니 조금의 성의만 얹으면 가능한 일. 과유불급이라는 생각이지만 겸손한 자세로 용기를 냈다. 언론사 정기기고라는 특별하고 새로운 역할이 아니라 운동의 관점에서 역할의 재조정이라고 생각하겠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월1회를 기본으로 여력이 되면 격주정도로 한편의 글을 쓰려고 한다. 노동자와 농민, 빈민 등 민중의 삶을 보도하는 언론사 <참세상>의 ‘길’에 누가 되지 않도록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독자님들께 드린다.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린다.

우선 꼭지 이름을 작명하는 것이 과제였다. <낮은 시선>, <활화산들의 이야기, <호동과 노동>, <프레임 밖 풍경>, <요동치는 노동>, <전국 파이터 다 모였네>, <노동을 쓰다> 등이 제안되었다.

정국 상황 때문에 웃음기 잃고 몇 달을 보내는 와중에 <호동과 노동>은 제안의 기발함에 웃다가 뒤로 넘어갈 뻔 했다. 큰 웃음을 주었지만 막상 선정하기에는 ‘거시기’해서 어렵게 참았다.

결국 오래 전 감옥에서 읽었던 우리 시대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저서에서 영감을 얻어 ‘노동의 시대’로 결정했다. 그는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극단의 시대’로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자본주의와 인류사회의 변화 발전과정을 통찰한 멋진 사람이다. 자본의 시대에 노동의 시대를 꿈꾸는 지향적 의미를 담았다. 개인적으로는 역사를 공부하고, 역사를 살고, 역사를 기록하며 운동의 은퇴시점까지 성찰과 반성의 자세로 전력질주하자는 의미를 담은 꼭지이름이다. ‘노동의 시대’.

4개월이 넘게 촛불의 함성과 이에 대한 국민적 성원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에 국정농단 범죄 집단의 주범 박근혜는 반성과 책임을 거부하며 청와대에 유폐되어 있다. 구치소로 갈 것인지 고목에 마지막 생기가 돌 것인지는 며칠 후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인용 또는 기각여부로 결정될 것이다. 취임 후부터 퇴임 전까지 열려있는 자진사퇴의 문제는 그동안의 행태로 보아 하든 말든 거론하고 싶지도 않다.

오늘 2월 25일은 “박근혜 4년 너희들의 세상은 끝났다”는 주제로 민중총궐기의 날이다. 작년 10월 29일부터 시작된 17차 범국민행동의 날이다. 박근혜에게는 대통령 취임 4주년 기념일이다. 글쓴이에게는 철도, 발전, 가스산업 노동자들이 민영화에 반대해 총파업에 돌입했던 2.25 파업 15주년 기념일이다. 지난 15년간 중단되었던 전력산업 민영화를 박근혜와 황교안이라는 환상의 복식조가 추진하고 있어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지만 2월 25일부터 ‘노동의 시대’를 시작한다.

앞으로 ‘노동의 시대’를 통해 각종 투쟁 현장과 노동자의 삶을 살펴보고, 노동자들의 사연을 담은 인터뷰와 간담회 등을 기록할 생각이다. ‘자본천국 노동지옥’을 때로는 현미경으로 때로는 망원경으로 관찰하며, 참세상인 ‘노동의 시대’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려고 한다. 민중언론 <참세상>의 창간사에 담긴 “인간의 인간에 의한 착취, 자연의 인간에 의한 파괴가 사라진 세상, 우리 서로 평등하고 자유롭게 생산하고 활동할 수 있는 세상, 호혜와 연대를 기반으로 각자 마음껏 자신의 에너지를 펼치는 세상, 지배와 함께 허위도 사라진 아름다운 세상”이 노동의 시대라 부르고 싶다. 우리가 지향하는 세상의 이름, 봄을 부르는 늦겨울의 아지랑이처럼 저만치 머뭇거리고 있는 참세상을 향해 희망의 화살을 아낌없이 발사하자는 취지이다.

그리하여, 노동의 계급적 ‘어울림’과 실천적 ‘기다림’을 통해 창졸간에 맞이하게 될 ‘노동의 시대’를 꿈꾸며 함께 하자는 염원을 담아 출발한다. 정중하고 간절하게 독자제현의 지도편달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