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자동차 판매노동자, 금속노조 가입 또 막혀

판매연대 9개월 간 방치...금속노조 내홍, 대의원대회까지 유회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위원장 김상구)이 비정규직 노조 승인 문제를 둘러싸고 내홍을 겪고 있다. 현대, 기아차 정규직 판매 조합원들이 대리점 비정규직 판매 사원들의 금속노조 가입을 막아선 까닭이다. 2일 열린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서도 해당 문제가 논의됐지만 오랜 공방만 벌이다 대회가 유회됐다. 비정규직 자동차 판매 노동자들은 9개월 째 금속노조 가입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2일 오후 2시, 충북 제천 청풍리조트에서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했다. 언쟁이 높아진 것은 비정규직 자동차 판매사원들이 결성한 ‘전국자동차판매노동자연대노조(판매연대)’의 금속노조 가입 승인 건이 현장 발의안으로 올라온 직후부터다. 오후 7시부터 11시 까지 장장 4시간 동안의 논쟁 끝에 대의원대회는 결국 파행을 맞게 됐다.

현재 금속노조에는 완성차 판매 노동자들이 결성한 ‘현대차지부 판매위원회’와 ‘기아차지부 판매지회’가 있다. 모두 현대, 기아차 직영 지점에서 일하는 정규직 판매 노동자들이다. 반면 현대, 기아차 대리점에서 일하는 판매 노동자들은 모두 비정규직이다. 이들은 그동안 ‘특수고용노동자’ 즉 개인사업자로 분류 돼, 기본급이나 4대 보험 적용을 받지 못했다. 기아차, 현대차의 직영 지점 대비 대리점 비율은 각각 60%, 50%가량에 달한다. 비정규직 판매 노동자들은 ‘판매연대’라는 노조를 결성하고, 지난해 5월 금속노조에 가입을 신청했다. 하지만 정규직 노조들은 직영-대리점 노동자들의 오랜 갈등과 정규직의 생존권 위협 등을 이유로 이들의 노조 승인을 막아섰다.

갈등이 불거지면서 5차례의 간담회 등을 진행했지만 이견을 좁히진 못했다. 지난 20일 열린 중앙위원회에서도 가입 승인은 이뤄지지 않았다. 중앙위원회 결정은 우선 TF팀을 구성해 논의해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오랜 공방 속에, 판매 노조의 상급단체 가입은 벌써 9개월째 미뤄지고 있다. 2일 열린 임시 대의원대회에서도 논란은 이어졌다. 정규직 노조 대의원은 “20년 갈등의 역사를 단 5번의 간담회로 해결할 수는 없다”며 당장의 판매연대 가입 승인은 불가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정규직 대의원 역시 “20여 년간 사측의 대리점 정책과 싸워왔다”며 “어떤 대안도 없이 함께 할 수는 없다. 직영 판매 노동자 1만 명의 고용문제를 무슨 권한으로 결정하나”고 반발했다.

박유기 현대차지부장 역시 “대의원대회에서 (가입 찬반)결정이 이뤄진다면, (정규직 노조가)운동적으로 매장되든, 금속노조 조직이 무너지든 둘 중 하나일 것”이라며 “판매연대가 금속노조에 가입할 경우 조직편제, 원청과의 협상 문제, 기존 노사 합의서 문제 등에 직면하게 될 거다. 대안이 있어야 승인을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마치 현대차 정규직지부가 약자를 짓밟는 이기적 집단인 것처럼 매장하는 방식으로 운동을 이어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반면 금속노조 규약, 규정에 따라 조속히 가입을 승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판매연대가 사측의 탄압에 시달리고 있는 만큼, 하루 빨리 금속노조 울타리 안에서 투쟁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요구도 이어졌다. 한 대의원은 “9개월간 가입 승인이 미뤄지면서 400여 명에 육박했던 조합원들이 징계, 해고당해 100명으로 줄었다. 다 해고되고 쫓겨나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느냐”며 “대리점과 직영간의 갈등과 경쟁, 분열을 만든 것은 정몽구다.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 현재 직영과 대리점 비율이 1:1이다. 현대차는 계속 대리점을 확대시키려 하는데, 지금처럼 분열하면 둘 다 죽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대의원 역시 “TF팀을 만들어 논의하겠다는 것은 판매연대가 고사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말”이라며 “민주노조의 원칙적인 문제를 왜 이렇게 복잡하게 푸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장장 4시간가량의 논쟁 이어지는 과정에서 대의원들이 현장을 이탈해, 회의는 정족수 미달로 유회됐다. 송보석 금속노조 대변인은 “현장 발의안은 소멸됐지만, 당사자와 지역지부장 2명 등을 포함해 TF팀을 구성한다는 중앙위원회 결정사항은 남아 있다”며 “거기서 여러 의견을 좁혀 방안을 만들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50여 명의 노동시민사회단체 대표단과 30여 개의 노동, 인권, 종교, 장애인, 법조 단체들은 성명을 발표하고 금속노조의 판매연대 가입 승인을 요청했다. 이들은 “산별노조가 직접 조직해야 할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해고를 비롯한 갖은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노조를 만들어 지금까지 유지해 왔고 금속노조에 가입을 신청했음에도 번번이 가입 승인이 가로막히는 일이 다름 아닌 한국을 대표하는 금속노조에서 벌어졌다”며 “우리 안의 치부를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왔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어서 “비정규직 문제는 민주노조운동의 명운이 걸린 시대 과제다. 이제라도 지난 잘못을 바로잡고 한국을 대표하는 금속노조가 산별노조로서 제 몫을 다해야 한다”며 “판매연대 가입 승인이 민주노조 정신에 걸맞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해주시길 동지애를 담아 요청 드린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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