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한 때

[연속 기고] (3) “(가칭) 노동악법 철폐! 노동법 전면 제·개정! 노동3권 쟁취! 투쟁본부” 구성을 위한 전국 순회투쟁을 다녀와서

‘노동악법철폐, 노동법 전면 제·개정, 노동3권 쟁취 투쟁본부 구성을 위한 전국순회투쟁’에 함께 했다. 순회투쟁에 참가한 동지들은 전국의 투쟁사업장 동지들로, 박근혜 게이트로 달아오른 퇴진투쟁 이전부터 거리에서 박근혜 퇴진을 주장하며 투쟁했던 이들이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까지 거리에 남아있을 동지들이기도 하다.

박근혜는 파면됐지만 구체제의 위력은 여전하다. 매주 백만의 촛불들이 모여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며 거리를 메운 것은, 새로운 사회가 가능하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했던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러나 5개월에 걸친 그 투쟁에도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구체제를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못했고, 열린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대중적인 자각은 쉽게 타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조직된 노동이 이 운동을 주도하지도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동투쟁의 동지들이 전국순회투쟁에 나섰던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일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문제는 전면에 드러나지 못했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들도 드러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근혜 파면 이후 급속도로 빠져들어 간 대선국면은 촛불에서 간간히 드러났던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력을 덮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노동자계급에게 선택지가 없는 선거에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출처: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 노동3권 쟁취” 노동자·민중 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사업장 공동행동]

전국순회투쟁이 분명 현 정국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지만, 왜, 나서야 하고, 그 구체적인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조직적인 공유와 계획은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순회투쟁에 참여했던 동지들이 요구했던 것은 정말 새로운 사회에 대한 갈망이었나, 아니면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랐던 것이었나? 물론 계급적 인식은 불균등하게 발전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투쟁의 과정에서 그 격차를 좁히고 발전시키기 위한 충분한 계획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순회투쟁은 투쟁사업장을 방문하고, 대표자에게 공동투쟁에 참여하겠다는 서명을 받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특히 ‘투표를 넘어 투쟁으로’라는 구호는 자칫 조합주의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위험한 구호이기도 하다. 물론 현 대선국면에서 딱히 지지할만한 정당과 후보가 없다는 것, 민주노조의 경력을 팔아 부르주아정당에 넘어가는 상황에서 유력한 정당과 정치인에게 노동자계급의 미래를 의탁하려는 의회주의에 대한 비판이 필요한 지점이라는 측면에서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구호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이 중심이 되고,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온전하게 담아내고, 노동자계급의 투쟁으로 건설하고, 전국적인 단일한 투쟁을 지도할 수 있는 노동자계급의 정당을 통한 정치투쟁으로 노동자계급의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선진노동자계급의 임무라는 것을 거부하는 생디칼리즘의 모습일 수 있으며, 생디칼리즘은 노동자계급의 사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전국적인 투쟁전선을 건설하기 위해 실천에 나선 것은 무조건 지지하고 연대해야 한다. 투쟁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앞선 비판들의 문제의식에 공감한다면 이후의 계획에서 토론을 통해 공유하고 공감하는 과정을 거치면 ‘공동투쟁’은 단위 사업장의 생존권투쟁의 한계를 뛰어넘어 계급투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온전하게 전국순회투쟁에 참여했던 동지들에게 남겨진 몫이다. 물론 그것은 지금까지 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력을 충분하게 자극할 때 가능할 것이다. 그 모습을 지금부터 함께 그려가자.

* 이 글은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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