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항쟁 134일, 우리의 삶은 바뀌었나

[워커스] 노동의 추억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간 134일이었다. 지난해 10월 29일부터 열렸던 총 20회의 촛불집회. 참가자는 1,600만 명에 달한다. 사람들의 찬사가 연일 쏟아진다. 미담들이 계속 발굴되고 회자된다. 집회에 나가도 바뀌는 것은 없다며 냉소하던 이들도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인다. 과거 어떤 항쟁보다 크고 광범위하게 타올랐던 ‘촛불항쟁’이었다.

2017년 3월 11일

3월 11일. 날씨는 포근했고, 광화문광장은 봄의 기운이 가득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가 울려 퍼지던 광장.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축제를 앞둔 설렘이 묻어났다. 그 곳에 자그마한 추모공간을 차렸다. 전주에 있는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에 현장실습을 나갔다 사망한 노동자 홍수연 님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2016년 9월 8일, 현장실습을 나간 홍수연 님은 ‘욕받이’ 부서라 불리는 해지방어 팀에 배정됐다. 회사는 현장실습협약으로 하루 7시간, 160만5천원을 약속했지만 일주일도 안 돼 기본급 113만5천원 근로계약서를 제시했다. 퇴근시간을 넘겨도 시간외수당은 받지 못했고, 온갖 욕설과 비난, 실적 압박은 그녀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결국 홍수연님은 1월 22일 친구에게 “나 죽으려고”라고 말하곤 이튿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돼 많은 시민들이 기쁨의 함성을 지르던 12월의 어느 날에도 홍수연님은 해지 전화를 받으며 욕설과 비난에 괴롭힘을 당했을 것이다. 실적을 압박하는 관리자의 등쌀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2017년 1월 9일 면담 기록에는 “업무스트레스가 약간 있으나, 극복하려 하며 잘해보겠다는 의지가 강함”이라고 적혀 있다. 첫 사회생활에서 낙오하면 안 된다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가족에게 보탬이 되겠다며 마음 추스르기를 수차례 반복했을 것이다. 광장의 민주주의가 밝혀지던 시간, 그 시간은 홍수연 님이 일터에서 겪었던 고통의 시간이기도 했다.

[출처: 문주현 참소리 기자]

2017년 3월 6일

문재인 후보 측근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최고위원인 양향자 의원이 반올림에 대해 “전문 시위꾼처럼 귀족노조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으로 한다”고 비난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 날은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목숨을 잃은 황유미 님의 10주기 추모문화제가 있던 날이었다. 3월 1일에는 문재인 캠프의 전윤철 공동선대위원장이 문 후보의 대표 공약인 ‘공공기관 일자리 81만개 창출’에 대해 “제조업은 한계에 직면했고 악성 노조까지 감안하면 민간기업에서 일자리를 창출할 여력이 적기에 사회적기업 등 공공서비스 일자리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악성노조라는 표현을 쓴지 5일 만의 일이다. 문재인 캠프의 연이은 노동조합 혐오 발언은 단순한 말실수의 문제가 아니다. 바른정당 유승민 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노동 공약, 노동자들의 자주적 조직인 노동조합을 약화시킬 정부 주도의 노동회의소 신설 검토, 삼성 직업병 피해 은폐 공작을 했던 김호기 영입 등 문재인 후보의 행보 어디에도 노동은 보이지 않는다.

‘촛불항쟁’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대선후보가 보이는 노동의 빈곤은 촛불광장 속에서 별다른 존재감이 없었던 노동운동의 책임이기도 하다. 온 세상이 주목하는 광장에서 노동의제를 중심으로 한 싸움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이게 나라냐”며 거리로 나온 수백만의 시민들 앞에서 적극적으로 노동의제를 선동하지 못했다. 매주 촛불집회를 준비하고, 조직하기 위해 헌신했지만 결국 촛불시민 속으로 스스로를 녹여버린 노동운동. ‘대통령 선거’에 온 신경이 가있을 문재인 후보에게 노동의제가 광장의 요구로 느껴지기는 했을까.

2016년 11월 10일

광장이 열리고, 청와대로 향하는 첫 행진을 연 것은 오체투지 행진을 한 유성기업 노동자들이었다. 서울 도심에 분향소를 차리고, 현대차 앞에서 몇 백일을 노숙하고, 상여로 100리를 걷고, 상주가 굶어도 악몽 같은 노조파괴는 끝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안 해본 투쟁이 없는 이들이 청와대 행진을 택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오체투지 행진을 계기로 촛불은 지속적으로 청와대를 향할 수 있었다. 누군가 시도하지 않았다면 열리지 않았을 길이었다. 300명도 채 되지 않았던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도전은 많은 촛불시민들과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매주 광화문 광장에 차려졌던 한광호 열사 분향소에는 추모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고, 시민들은 줄을 서고, 유시영 회장 구속 촉구 서명에 참여했다. 촛불 국면에서 노동을 외치기 위해 분투했던 이들은 유성기업 노동자들만이 아니었다. 재벌총수 청문회가 열렸던 국회에서 현대차 용역의 폭력에 의해 끌려 나왔던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재벌왕국의 민낯과 정몽구 회장의 불법을 온몸으로 고발했다. 전경련, 삼성본관, 현대차 본사 등 재벌총수를 상징하는 곳을 쳐들어가 재벌구속을 외쳤던 항의행동들은 사회적 공감을 얻어냈고, 결국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시키고 재벌개혁이라는 의제를 사회적으로 드러내는 성과를 남기기도 했다. 비정규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제안했던 ‘새로운 세상 길을 걷자-1박2일 대행진’은 많은 관심을 받으며, 노동의제를 사회적으로 제기해보기도 했다.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

박근혜를 파면시킨 지금, 적폐청산을 위해 촛불을 계속 들어야 한다고 많은 이들이 말한다. 맞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촛불을 어떻게 들어야 할지도 말해야 한다. 우리는 아직 12월 24일 창원광장 촛불집회에서 24살 전기공이 던졌던 “박근혜가 퇴진하더라도 제 삶이 나아질 기회가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직장생활 4년차지만 여전히 최저임금, 이 상태로는 가정을 꾸리고 삶을 계획 할 꿈도 꾸지 못한다는 전기공의 “이대로 20년, 30년 살라고 하면 못살 것 같습니다”라는 외침에 손 한 번 내밀어 보지 못했다.

깃발을 내리고, 대중가수들과 유명인들의 콘서트를 배치해야 한다는 강박과 시민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선전 ‘기술’에 대한 고민은 잠시 내려놓자. 조금 고루하고 상투적이면 어떤가. 보이지 않는 길을 개척해 왔던 노동자들의 힘은 미련하다고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끈기에서 나왔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냉소하는 사람들 앞에서 끊임없이 고공을 오르고, 곡기를 끊고, 거리에서 싸웠던 우직함이 노동자의 삶을 바꿔왔다.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사회적 연대를 이끌어 내던 절박함이 노동의제를 사회적으로 부각시켜 왔다. 대통령 하나 바꾸는 것을 넘어 일터를 바꾸는 촛불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워커스 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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