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의 죄책감은 국가가 느끼라”

[연속기고] 투표는 되는데 낙태는 ‘외 않되’?

나는 서울지역 백팔십팔만육천오백칠십 호 자궁이다. 여자아이 100명당 110.1명의 남자아이가 출생했던 91년도에 보지를 달고도 기적적으로 태어난 여아낙태의 생존자이기도 하다.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도 탄핵했다. 이번 정권 교체 시기에 여성의 힘으로 여성의 재생산권과 성적 권리, 더 나아가 여성의 생명권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작년 9월 22일 보건복지부는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한 의사를 최대 12개월까지 자격 정지시키는 내용이 포함된 개정안이었다. 이에 대한산부인과협회는 ‘개정안이 시행되는 그 날부터 모든 인공임신중절 시술을 거부하겠다’고 맞대응했다.

의사와 국가가 여성의 생명을 담보로 의사자격증과 ‘적정인구수 못잃어~~’하며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정작 그 법으로 인해 실제로 피를 흘리게 되고 생명의 위협을 겪게 되는 건 여성들이었지만 여성들이 직접 나서기 전까지는 그들에게 우리에 고통은 안중에도 없었다. 하지만 여성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그리고 친구를 위해 직접 거리로 나섰고, 개정안 전면 철회라는 승리를 이뤄냈다.

나는 당시 생업 때문에 직접 그 가슴 벅찬 승리를 함께 하진 못했지만 항상 시위상황을 기사로, SNS로 보면서 주변지인들에게 ‘낙태는 살인이 아니고, 낙태한 여성은 살인자가 아니야’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살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리곤 말을 더 잇지 못하고 갑자기 어딘가로 뛰어가더니 한참을 울다가 되돌아왔다.

나는 안다. 그 친구가 임신중단을 한 여성을 탓하려는 게 아니라는 걸. 친구는 아이를 낳고 싶어 했지만 남자친구가 원하지 않고, 아니 아무 생각이 없었고,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 때문에 시골에 내려가 불법임신중단시술을 받았던 경험이 있었다. 친구는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지만 죄책감은 온전히 친구 혼자만의 몫이었다.

또 다른 상처가 될까봐 친구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에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국가는 사회경제적 이유 때문에 임신중단을 결정한 나의 친구에게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가?

2005년 고려대가 실시한 전국 인공임신중절수술 실태조사결과를 따르면 전체 35만 건의 시술 중 단 4.4%만이 당시 모자보건법 상 ‘합법’이었다. 나머지 95.6%의 불법시술 중에서 90%는 아이를 양육하기 어려운 ‘사회 경제적 사유’로 인한 것이었다.

대선 후보님들!? 여러분이 내 친구의 상황이었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겠는가? 도대체 나의 친구가 임신 중단 말고 무슨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삶을 중단하는 것이어야 했을까?

생명권은 살 조건까지 보장받을 권리

생명권이라는 것은 단순히 태어날 권리만이 아니라 태어나서 살아가는 조건까지 보장받을 권리여야 한다. 낙태죄를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선택권 문제로 보는 것은 국가의 책임을 지우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낙태죄는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선택권 문제가 아니라 국가 대 생명의 문제다. 아이가 태어나서 생명으로 살아갈 조건을 국가가 책임지고 있지 않은 문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여성에게 떠넘기고 있는 문제다. 죄책감을 느껴야 할 건 내 친구가 아니라 국가이다. 내 친구가 죄책감을 느끼기에 국가의 죄는 너무 크고 악의적이다. 과거의 산아제한정책부터 최근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개정안과 ‘가임기 여성 분포도’까지 이제 더 이상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여성에게 떠넘기지 말길 바란다.

여성의 재생산권과 임신과 출산이 아니라 내가 섹스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사람과 섹스 할 성적 권리, 그리고 국가가 호주제와 산아제한정책으로 조장한 여아낙태에서 살아남은 현재 20대 여성들이 사람답게 살 생명권까지, 이제 그만 돌려주길 바란다. 국가가 통제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여성이 당당하게 보장받아야 할 여성의 권리이다.

국가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인 생명존중을 실천하길 바란다. 모든 대선 후보들은 낙태죄 문제를 부디 똑바로 보고, 그 문제는 여성이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바란다. 기독교단체에 표심에 눈이 멀어서 여성의 삶을 죄책감에 짓눌리게 하지 말라.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지 않는 대통령 후보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아니다. 바로 지금 우리와 함께 낙태죄 폐지를 외치길 당당히 요구한다.
최신기사
기획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온라인 뉴스구독

뉴스레터를 신청하시면 귀하의 이메일로 주요뉴스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