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가 군인인 죄’에 대하여

[워커스] 레인보우

4월 13일,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해 처벌하라고 지시한 사건이 공개됐다. 이후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이들은 게이 소셜데이팅 어플과 SNS를 통해 무차별 함정 수사를 진행했으며, 협박과 유도심문으로 지인들의 구체적인 신상과 성경험 등을 조사했다. 육군은 자신들의 행위가 위법하지 않으며 군형법 92조의 6에 의거한 수사일 뿐이라고 변명했지만 이 같은 행위는 병사들의 성지향성 설문조사 등 적극적인 식별 활동을 금지하고 사생활 관련 질문을 하지 않도록 명시하는 국방부 훈령 제1932호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영장도 없이 기물을 무단수색하고 핸드폰을 압수해 포렌식으로 개인정보를 빼내기까지 했다. 군은 동성애자 군인이 성관계 사진을 SNS에 유포해 수사한 것이라고 했으나 정작 이 날 체포된 A대위는 정작 해당 사건과는 아무 관련도 없었을 뿐더러, 도주 우려나 증거인멸의 우려도 없었다. 그는 변호사를 선임해 출석하기 위해 출석 일자까지 알렸음에도, 소환에 불응했다는 이유로 구속기소됐다. 이 사실이 알려진 후 A대위 어머니의 탄원 호소문과 함께 3만7000명이 넘는 이들이 탄원서에 서명을 해 전달했으나, 결국 그는 17일 구속됐다.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육군 현장을 지도하고 있다. [출처] 육군

군형법 92조의 6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동성애자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다. 이 조항은 마치 군대 내 성폭력을 처벌하기 위한 조항인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성폭력의 경우 군형법 제15장 ‘강간과 추행의 죄’에 근거해 처벌할 수 있고 형법과 성폭력특별법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이 조항은 남성 간 성관계를 비하하는 표현인 ‘계간(鷄姦)’이라는 용어로 존속되다가 2013년 개정으로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으로 수정돼 유지돼 왔다. 때문에 이 조항은 실제 군대 내 위계를 이용한 동성 간 성폭력 사건에서 오히려 동성애자인 피해자를 처벌하는 근거로 활용된다.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군대 내 성폭력 실태조사’에 의하면 가해자가 동성애자인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한편, 조항 상으로는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으로 표현돼 있기에 이를 그대로 적용하자면 이성 간 항문성교에도 적용될 수 있지만 이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군 기강’을 이유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프랑스, 이스라엘, 덴마크, 독일, 대만 등도 별도의 제한이나 처벌 없이 동성애자 군인이 복무하고 있으며 미국도 2011년 ‘Don’t ask, Don’t tell’(묻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 미국의 동성애자 군 복무 금지 제도) 정책을 폐기했다. 한국이 남북 분단으로 항시적인 긴장 상태라지만 군사적 긴장으로 치자면 이스라엘이나 대만도 만만치 않다. 1999년 유럽인권재판소는 강제전역을 당한 2명의 병사가 영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당시 유럽인권재판소는 “동성애자 군인이 작전 효율과 전투력을 떨어 뜨린다”는 영국 정부의 주장에 “동성애자 군인에 대한 조사는 명백한 사생활 침해일 뿐 군부대의 작전 효율성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고 판결했다.

결국 군형법 92조의 6조항을 통해 유지되는 것은 ‘편견에 의한 폭력’일 뿐이다. 그리고 이는 동성애자 군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가정함으로써 도리어 군대 내에 만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권력과 성별 위계를 이용한 집단적, 개인적 성폭력의 근본 문제를 방기하게 만든다. 이번에 색출 명령을 지시한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의 경우 2015년 발생했던 여군 성폭행 사건에 대해서는 “여군들이 싫으면 명확하게 의사 표현을 하면 되지, 왜 안 하냐”며 여군에게 책임을 돌리는 발언을 해 비난을 받은 바 있다. 또한 상대적으로 취약한 후임병을 길들이겠다는 명목으로 벌어진 집단적 성폭력의 경우에는 정작 피해자가 아무리 피해를 호소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려도 제대로 처벌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민으로서 차출되지만, 국민의 자격은 의심받는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하고, 동성 간 합의된 성관계조차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은 마치 ‘편견의 종합세트’처럼 성차별적이고 반인권적인 생각들이 모두 녹아들어 있다. “젊은 남성 의무복무자들이 이성 간의 성적 욕구를 원활하게 해소할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장기간 폐쇄적인 단체생활을 해야 하기에 동성 간 비정상적 성적 교접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군의 전투력 보존에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밝힌 2011년 헌법재판소의 합헌 의견은 이러한 편견을 제대로 드러내고 있다. 군대는 기본적으로 ‘남성들의 집단’으로 설정되고, 그 안에서 남성들은 ‘이성 간의 성적 욕구’를 해소해야만 한다. 때문에 이성 간 성관계는 상대적으로 용인되고 심지어 여군에 대한 성폭력마저 쉽게 묵인, 방조되는 반면, 동성 간 성관계는 ‘이성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지 못한 결과’, 또는
‘강한 남성 집단’으로서 유지돼야 할 군의 기강과 전투력을 해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동성애자=AIDS’라는 인식까지 더해지면서, 결국 동성애자 군인이란 최상의 강인한 남성집단으로서 유지돼야 할 군대의 위상과 권력을 위협하는, 오직 성적이고, 위험하며, 불순한 존재일 뿐이다.

‘Don’t ask, Don’t tell’ 정책이 유지될 때, 모병제인 미국에서는 동성애자의 입대가 금지됐지만 드러나지만 않으면 군인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강제로 전역조치를 당해야 했다. 정책이 발효된 후 5년 동안, 이렇게 퇴출된 동성애자 군인은 연 평균 2000여 명에 달했다. 그러나 이들이 퇴출되자 실제로 군의 역량에도 문제가 생겼고, 결국 2011년 이 정책을 폐기한 미국은 이제 성소수자들의 축제에 와서 모병 활동을 벌인다.

징병제인 한국에서 군 복무는 동성애자들에게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러나 의무로 징집된 군대에서 이들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색출되고 처벌까지 당한다. 오직 죄가 있다면 ‘게이가 군인인 죄’. 그 뿐이다. 이들은 국민으로서 차출되지만, 국민의 자격을 의심받고, 심지어 국민에게 해를 끼친다며 색출당한다. 이 사건이 알려질 즈음 체첸 러시아 지역에서는 LGBTQ 인권단체의 프라이드 행진 허가 요청 이후 최소 100명의 게이 남성이 체포되고, 3명이 살해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SNS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홍정훈 씨를 지지하기 위한 릴레이 손글씨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었다. ‘게이임’을 처벌하는 군대의 징집 요구에 동성애자 군인은 응할 필요가 있을까? ‘군 복무를 마친 이성애자 남성’들에게 시민의 자격을 부여함으로써 유지되고 있는 것은 평화나 안보가 아니라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강압적으로 설정해 놓은 남성성을 증명하라 요구하는 폭력과 전쟁의 시스템일 뿐이다.[워커스 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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