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후보의 ‘정규직’을 밝혀라

[워커스] 너와 나의 계급의식

두 유력 대통령 후보가 적폐청산의 시작점이자 첫 번째 일자리 대책으로 똑같이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약속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임금을 얼마간 끌어올리고, 일부 ‘정규직화’를 하겠다는 게 골자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두 후보 중 한 명에게 투표하겠다는 응답자가 75%를 넘었다 하니, 새 정부의 본격적 과제는 비정규직과 관련해 가동될 가능성이 큰 셈이다.

두 후보의 비정규직 공약은 정부가 곧 ‘사측’인 공공부문에서부터 모범을 만들겠다는 방침에서도 겹친다. 내가 일하는 노조의 기대도 커서, 지난주 업무로 나는 두 후보의 비정규직 공약을 꼼꼼히 검토하고 질의서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소회를 담아 이번 글은 하나의 예언으로 시작하려 한다. 예언인즉슨, “그들은 절대 쉬운 해고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출처: 자료사진]

사실 비정규직 정책의 핵심이 두 후보 모두 ‘고용 안정’ 이기는 하다. 계약이 만료돼 쉽게 해고되는 사례부터 다스리겠단 거다. 두 후보는 이것을 ‘고용 안정화’, 나아가 ‘정규직화’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공공부문에는 그 비슷한 사례가 이미 많이 있다. 이름 하여 ‘무기계약직’. ‘원칙적으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라는 규정으로 2006년 국무총리 훈령 제3조에 등장한 직군이다. 한편 이 조항의 괄호 속 이름은 ‘기간제근로자의 사용원칙’이다. 애초 무기계약직은 정규직에 붙은 새로운 이름이라기 보단, 기간제 일자리의 열악한 처우를 일부 개선한다는 취지 정도로 만들어진 일자리란 뜻이다.

근로계약서에 기간이 사라졌다고 하면 많이들 ‘정규직이 됐다’고 여기는 것 같다. 실제로 무기계약직을 도입하고 양산한 지난 정부들도, 작년 12월 207명의 간접고용 청소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 국회도 모두 자신들이 ‘정규직화’를 이뤘다며 뿌듯해 했다.

그러나 무기계약직 해고가 그리 어렵거나 드문 일은 아니다. 사업장 통폐합, 직제개편, 예산축소, 심지어 민간위탁 결정을 사유로, 또는 평가와 연동해서 언제든 해고될 수 있다. 제대로 된 임금 수당 체계가 없고 경력 근속 인정이 미미하기로는 기간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 무기계약직이 흔히 ‘가짜 정규직’이나 ‘무기 비정규직’으로 불리는 이유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역시 돈이 문제다.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이 호소하는 여전한 고용 불안의 현실은 ‘정규직화’ 실적을 내세우면서도 인건비 추가 지출은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가 설계한 최선의 꼼수였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바로 최근까지도 맹렬히 추진됐고 여전히 꺾이지 않은 자본의 꿈, 임금 체계가 와해되고 해고와 취업 규칙 변경은 더 쉬워진 세상을 떠올리게 한다. ‘경영상 긴박한 사유’나 ‘평가’라는 명분 아래 자본의 몸집과 이동에 맞춰 노동자가 채용되거나 해고되는 ‘유연한’ 세상. 이 유연한 세상에서 일자리에 대한 사람들의 통념과 기대는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 세상으로 가기 위한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 시도는 우리가 익히 알고 흔히 바라는 정규직, 경력을 쌓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일자리로서의 정규직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는 협박과도 같았다.

자본의 입장에서 안정된 고용을 보장하는 것은 임금을 인상하고 처우를 개선해 주는 것과는 규모가 다른 비용이자 격이 다른 속박일 것이다. 그 굴레가 사라졌을 때 해고는 노동자, 특히 노조에 휘두를 수 있는 가장 간편하고도 확실한 무기가 된다. 괜히 ‘해고는 살인’이란 문구가 나온 게 아니다. 또한 쉬운 해고는 노동자 계급이 받는 전체 임금에 여러 구멍과 절단을 만들어내 그 자체로도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임금 삭감의 시도가 된다. 자본에겐 최고의 기쁨 중 하나다.

지금 두 유력 대통령 후보가 고용 안정을 보장해 주겠다며 말하는 ‘정규직’은 과연 어떤 정규직일까? 어떤 점에서 우리가 아는 정규직이 맞고 또 아닐까? 가슴 속 촛불을 아직 끄지 않은 우리는 지금 두 후보가 예산 확보안을 갖고 있든 아니든, 차기 정부에서 추가적 재정 지출이 가능하든 아니든, 대통령 될 사람의 ‘속셈’부터 파악하겠단 태세를 갖춰야 한다. 가령 다음의 것들이 꼭 체크돼야 한다.

첫째, 문 후보가 자신의 ‘좋은 일자리 만들기’ 공약을 발표하면서 박근혜 정부를 포함한 지난 정부들이 기간제 노동자들을 대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 사례를 모범으로 꼽았다는 점. 그리고 앞서 전했듯 지금 공공부문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은 여전한 차별과 고용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는 점.

둘째, 안 후보가 비정규직 처우 개선책과 연동해 공정한 임금 체계를 갖춘 새 시대의 일자리 표준으로 ‘직무형 정규직’ 이라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기획은 직무/성과 평가와 그에 따른 조치를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는 점.

이 두 가지를 곱씹으면서 나는 노동자들에게 기간제 고용 축소나 임금 인상을 약속할지언정, 유연한 해고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두 후보의 의지를 감지했다.

게다가 두 후보는 그 의지를 ‘공정함’으로 포장할 준비도 했다. 예컨대 두 후보의 공약에는 우리 사회 비정규직의 임금을 정규직 대비 70~80% 수준(문 후보) 또는 “평균적 임금 수준”(안 후보)으로 보장하겠단 내용이 있다. ‘어떻게’가 빠지긴 했어도 어쨌든 지금의 저임금 현실을 방치할 순 없단 입장만은 표명된 셈이다. 다만 눈여겨볼 것은 두 후보가 임금 격차를 줄이겠다고만 하지 않고, 자꾸 임금이 ‘공정’해야 한단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거다. 과연 그들의 공정함이 임금피크제나 성과연봉제의 공정함과는 얼마나 다를지도 두고 볼 일이다.

박근혜 없이도 박근혜 체제가 잘만 굴러가더라는 말이 있다. 두 후보 중 누가 대통령이 되든 결국 비정규직 문제를 뿌리 뽑진 못할 것이다. 애초 뿌리 뽑을 의지가 없다는, 두 후보도 적폐의 일부라는 비난도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거짓 의지와 숨은 의지를 미리미리 들추고 자꾸만 평가하는 것이 당장의 방법일 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된 3월에 이어, 다시는 가만히 있지 말자고 한 번 더 다짐했을 4월도 다 지났다. 5월이 곧장 새 정치를 열여 주진 않겠지만, 낡은 공약이 슬쩍 우리 틈에 들어서려는 것만은 같이 막으며 5월을 만끽하고 싶다.[워커스 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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