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광풍, 고공농성 노동자들을 보라

[기고] 우리 내부의 적폐청산 시급하다

대선 광풍 속의 외로운 목소리

세월호는 한국사회의 적폐이고 사드는 국제사회의 적폐라고들 한다. 또 많은 정치인들은 대선에서 자신이 승리한다면 재벌, 언론, 검찰 등 한국사회에 만연해있는 적폐를 반드시 청산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들의 말들을 단 1%도 믿지 않는다. 10년 전, 자칭 민주정권이라 주장하며 들어섰던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시기의 극심한 노동탄압과 사회양극화 심화 등이 눈에 선하다. 10년 전이나 후나 노동자 민중에 대한 자본가정권과 자본가들의 노동탄압은 도토리 키 재기에 불과할 뿐이다. 누가 누구의 적폐를 청산할 수 있단 말인가?

나와 함께 사업장 내에서 노동했던 두 명의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 노동자가 사업장 밖 고가도로 교량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은 구조조정 중단과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 그리고 노조할 권리를 요구하면서 총고용보장을 위해 원·하청공동투쟁을 하자고 외치고 있다. 교각 고공농성을 돌입하기 전 이들은 나와 함께 현장사무실과 출퇴근 문을 오가면서 함께 싸우자며 동지들의 연대를 절박하게 호소해왔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투쟁을 해야 할 정규직 노조집행부는 보이지 않았고, 민주파 현장활동가들 또한 연대투쟁을 외면하였다. 정규직 조합원들과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침묵하고 지켜볼 뿐, 그 누구도 연대의 손길을 보내지 않았다. 결국 자신이 다녔던 노동현장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한달째 교량위 고공농성을 벌이고있는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 이성호, 전영수 노동자 [출처] 현장노동자투쟁위원회

절박하지만 투쟁은 사라진 현장

지금 현대중공업 그룹의 구조조정은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9월 1일 MOS 분사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기업 분할을 단행했다. 분사와 분할은 재벌 경영세습과,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과 임금 등을 후퇴시키면서, 무엇보다 정규직 민주노조운동을 무력화시키려는 노골적인 저의가 있다. 이는 분할 이후에는 별도의 기업이기 때문에 별도의 노사관계여야 한다는 현대중공업 사측 입장에서 확인된다.

하청노동자들을 대상으로는 하청업체 통폐합과 인력감축, 즉 대량해고를 자행하고 있다. 조선업종 독점자본들은 작년에 30% 인력감축을 계획했다. 그런데 생산현장에서 하청노동자 비율이 2/3인 현실에서, 전체 인력의 30%를 감축하는 것은 직영노동자들은 감축하지 않으면서 하청노동자들을 절반 정도 대량해고 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는 실제 현대중공업 원청사 인원 계획에서도 공공연히 확인된 사실이다. 같은 그룹사 현대미포조선의 경우에도 2017년 인원계획에 직영 노동자는 그대로인데, 하청노동자들은 7천여명에서 1/3넘게 줄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년 하반기 하청노동자 대량해고는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지금은 조선사업부와 현대미포조선에서 단계적으로 착착 진행되고 있다. 주4일근무 강제실시에서부터 무급순환휴가 강제신청, 정년퇴직 긴급실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긴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현장은 절박함으로 가득 차 있지만,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사업장 안에서는 원·하청 노동자들의 공동투쟁이 사라진지 오래다. 그런데 ‘구조조정 중단 원·하청 공동집회’는 단 한 번도 개최하지 않으면서, 노동조합과 지역상인들 그리고 지역정치인들이 함께하는 지역경제 살리기 주민총궐기는 성황리에 개최하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졌다.

물론 전술적으로 유연하게 지역의 소자산가들과 연합을 할 수도 있다. 백번 양보해서 구조조정을 저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다른 계급과의 연합은 아무리 전술적 유연함일지라도 노동자계급 내 단결이 전제가 되지 않는다면 계급성 상실이라는 결과를 낳을 뿐, 구조조정저지 투쟁에 승리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정규직 정서에의 굴종을 넘어

현중그룹이 무엇보다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원·하청 노동자들의 공동투쟁, 공동파업이다. 하청노동자들이 이미 과반수인 조선업종에서 구조조정 중단은 계급적 단결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하청노동자들과의 계급적 단결을 위해서는 정규직 민주노조운동의 조합주의를 시급히 극복해야 한다. 하청노동자를 정규직의 고용안정과 고임금, 안전을 위해 대신 해고와 저임금, 위험을 짊어지어야 할 대상 정도로만 바라보는 시각과 정서가 너무나 팽배하고, 활동가들이라는 이들 역시 이제는 정규직 정서를 거스르는 건 현실 앞에 무력한 공허한 원칙 정도로 치부하며 최선을 포기하고 차악을 고르자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차악을 고르는 사이 노동현장은 최악으로 치달아 왔고, 여기에는 어떤 브레이크도 없었다.

치솟는 부동산과 자녀 교육비, 사회적 위신의 유지를 위해 당장 내 고용과 임금만 보장해준다면 옆의 청년들이 반의 반도 안 되는 월급으로 더 힘들게 일하다 잘리고 크레인에서 추락하는 현실에 눈을 감고, 되려 그들의 외로운 목소리마저 뭉개는 짓도 서슴치 않는, 양심과 수치를 내다 버린 정규직 이기주의, 조합주의라는 거대한 수레바퀴를 멈추는 건 전혀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불가능을 꿈꾸는 게 운동이고, 운동은 불가능을 현실로 만들어왔다. 운동은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을 바꾸어내고, 평범한 사람들을 역사의 주인으로 변모시켜왔다. 이 믿음을 잃지 않는다면, 그리고 운동을 가로막는 우리 안의 적폐를 과감히 드러내고 결연히 청산해갈 의지만 있다면 끝은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 나는 원·하청 공동투쟁이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라 믿는다.

적폐청산을 외치는 정권으로 바뀐다고 노동자들의 삶은 달라질게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시기 필요한 것은 5.1절 정신, 전태일 정신, 열사정신이다. 구호는 있으나 실천이 없는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적폐를 하루빨리 청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