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1사1노조 분리, “가해자를 바꿔치기 했다”

[워커스 인터뷰] 기아차 화성 사내하청분회 김수억 분회장, 김남규 조직실장

4월 29일.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의 1사1노조 분리 총회 투표가 71%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노동계 안팎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정규직 노조를 향한 분노도 상당했다. 언론과 정치권은 재빠르게 사건을 규정했다. 노노갈등을 부각시켰고 정규직노조의 패권주의를 비판했다. 정규직은 가해자로, 비정규직은 피해자로 낙인찍었다. 그리고 정규직노조를 비롯해 금속노조, 민주노총에 ‘귀족노조’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순식간에 노동운동진영이 ‘적폐’의 대상이 됐다. 애초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요구는 회사가 불법파견 법원 판결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불법을 저지른 자본은 사건에서 사라졌다. 남은 것은 정권과 자본이 만들어 낸 ‘귀족노조’ 프레임 뿐. 그렇다면 당사자인 기아차 비정규직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기아차 사내하청분회 김수억 분회장과 김남규 조직실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수억 기아차 사내하청분회 분회장

사건의 발단은 어디서부터 시작됐나

김수억 분회장(이하 김수억) : 지난해 10월 31일 특별채용 합의(사내하청노동자 1,049명에 대한 일부 선별채용) 이후 이견이 발생했다. 특별채용 합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부는 강행했다. 그리고 정규직 전환 투쟁 과정에서의 전술 차이가 있었다. 작년 쟁의대책위원회의 화두였다. 회사가 우리의 요구에 답하지 않으면 분회 자체적인 투쟁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정규직은 반대했다. 분회는 불가피하게 지난해 세 번의 추가파업을 했다. ‘추가파업’이라 함은 지부의 파업을 수임한 뒤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를 위해 추가적으로 파업을 했다는 의미다. 정규직 현장과 지부에서 비판과 반대가 이어졌다. 발단이 된 쟁점은 두 가지다. 특별채용 합의 수용 여부와 사내하청 독자 파업 인정 여부였다.

“발단은 두 가지. 특별채용 합의 수용과 사내하청 독자 파업 인정 여부다”

  김남규 기아차 사내하청분회 조직실장

총회투표 가결 이후 어떤 절차를 밟고 있나

김남규 조직실장(이하 김남규) : 총회투표 가결 다음 주가 휴무기간이었다. 금속노조, 기아차 지부와 편제 변경 논의 등 후속 조치 작업을 했다. 금속노조 지역지부로 편제되기 위한 절차다. 지난 16일까지 3차례의 비정규직 대의원대회를 소집해 편제 변경 및 새로운 비정규직지회로 재편하기 위한 규칙개정과 이후 투쟁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22일 금속노조 경기지부 운영위에서 편제 변경 안건이 통과되면, 규칙개정 총회 및 대의원 보궐선거를 진행할 예정이다. 올해 임금협상 관련해서는 우리와 금속노조가 공문을 보내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다소 혼란이 생겼다. 최대한 빨리 임투(임금 투쟁)를 진행하고 쟁의권 확보를 염두에 둔 투쟁계획을 확정할 예정이다.

사내하청 조합원들 사이의 내부 동요는 없나

김남규 : ‘집행부의 강경노선 때문에 이렇게 된 것 아니냐’, ‘정규직과 조율해야 하는 것 아니냐’ 등의 의견은 투쟁을 배치할 때부터 존재했다. 다만 이것이 다수의 의견이 될 수 없는 두 가지 큰 이유가 있다. 특별채용 합의 당시 단서조항이 있었다. 1,049명 이외에 단 한 명의 추가 정규직 전환도 없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비정규직 강제 전적 문제가 있었다. 만약 추가교섭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나머지 조합원의 미래는 차단되는 거다. 분회가 반대한 것에 대해서도, 그리고 투쟁 방식에 대해서도 잘못했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만약 특별채용 합의에서 점진적인 정규직 전환의 내용이 나왔으면 현장이 갈라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규직 전환 자체를 막는 것에 어떻게 합의할 수 있나.

김수억 : 강제전적 전환배치가 컸다. 정규직화해도 모자랄 판에, 특별채용 인원을 집어넣으면서 그 자리에 있던 특별채용에 반대하는 비정규직을 쫓아 보낸다니 받을 수 없었던 거다. 속되게 얘기하면 현재 소수의 활동가가 정규직 노조랑 갈등을 빚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강력한 반대를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는 비정규직 절대 다수가 반대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과반수가 찬성을 했다면 지부는 밀어 붙였을 거다.

“특별채용 반대의 근거는 비정규직 절대 다수가 반대한다는 사실이다”

분리 총회 후, 기아차지부뿐 아니라 금속노조, 민주노총에까지 ‘귀족노조’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 비정규직 당사자로서 여러 고민이 들 것 같다.

김남규 : (정규직 노조가)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비정규직들도 오죽하면 (특별채용 합의를) 반대했겠나. 2심까지 승소했고, 판결에 따라 법을 지키라는 당연한 요구였다. 결국엔 기아차 비정규직 문제만이 아니게 됐다. 회사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에서 권력과 재정을 쥐고 있는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들을 분리시키고야 말았다. 이번 사건은 회사 측의 분리 전략의 화룡정점을 찍었다. 기아차 지부장의 감정적인 결정으로, 혹은 기아차 조합원들의 이해관계만으로 만들어진 판이 아니다. 대선 과정에서 홍준표도 기아차지부를 귀족노조라 비판했다. 이제는 자본과 보수세력이 진보진영의 정당성 자체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노조운동의 귀족화, 노동운동이 귀족 정규직들만 대변한다는 프레임은 노동운동의 정당성 자체를 짓밟기 위한 기획이다. 기아차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공동의 피해자다.

“회사는 노동자 분리 전략에 화룡정점을 찍었다. 자본이 노동운동의 정당성 자체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김수억 : 본질적이고 중요한 문제다. 정몽구는 비정규직 불법파견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보수적인 정규직 조합원 심리를 이용해 분리 총회를 기획했다. 이들의 목표는 철저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분리하는 것이었다고 본다. 단순히 기아차만이 아니라 민주노총을, 전체 노동운동진영을 귀족노조로 마녀사냥 해 버렸다. 그 프레임에 말려들면 안 된다.

자본이 1사1노조 분리총회의 밑그림을 그렸다는 말인가

김남규 : 촛불과 민주노총의 요구는 재벌 개혁이었다. 이런 사회적 요구와 분위기를 차단하기 위해 조직 노동자들을 상대로 전선을 친 거다. 얼마 전까지는 재벌 총수가 적폐였는데, 1사 1노조 분리투표 이후에는 귀족노조가 적폐의 대상이 됐다. 가해자를 바꿔치기 한 거다. 재벌과 자본이 가해자였지만, 어느 순간 가해자가 정규직 노조로 바뀌어 있었다. 철저하게 말려 버린
거다.

김수억 : 재벌체제 76년 만에 이재용이 구속된 것은 재벌들에게 엄청난 두려움을 줬다. 그래서 전선을 죽여야 했다. 노조를 분리하건 말건, 현장 비정규직 주체들이 파업을 할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굳이 분리시키지 않았을 거다. 분리시켜도 파업이 안 될 것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동시에 죽인 거다. 거기서 정규직 노조는 활용가치가 있었다. 회사의 문건 유출은 이 같은 기획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문건의 핵심은 분리 총회가 가결되면 기아차지부는 물론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또한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 정규직 노조의 임금을 낮추고 고립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본질은 골칫거리였던 민주노총 대공장노조를 사회적으로 거세하고자 했던 작품이 정점에 와 있다는 거다. 애초 이 문제는 정규직-비정규직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과 정부의 문제였다.

“이재용 구속은 재벌에게 엄청난 두려움. 결국 가해자를 바꿔치기했다”

모든 언론과 정치권이 정규직 노조를 비판한다. 노동계 일각에서도 예전부터 정규직의 양보를 전제로 하는 임금체계 개편이나, 임금 상승분을 비정규직에게 양보하는 방안 등을 요구해 왔다. 정규직의 양보도 필요하다고 보나

김수억 : 우리가 언제 정규직들한테 돈 달라고 했나. 뜬금없는 소리다. 동정은 바라지 않는다. 그걸 하는 순간 정규직노조는 진짜 자신들이 귀족임을 인정하는 거다. 귀족이 아닌 사람에게 왜 귀족 행세를 바라나. 노동자에게 줘야 할 정당한 몫을 완전히 은폐하려는 의도다.

김남규 : 정규직 호봉표를 보면 최저임금 1만 원이 안 된다. 근속 30년이 넘으면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런 사람도 드물다. 초과노동, 심야노동 같은 장시간 노동과 성과급 등으로 임금이 보존되는 구조다. 내가 정규직을 대변할 이유가 어디 있나. 실제로 그렇다. 재작년 기아차 단체협상에서도 ‘아름다운 연대’라는 이름으로 정규직 임금 인상분을 적립해 비정규직 사업장 연대 기금으로 쓰자는 얘기가 나왔다.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반대했다. 중요한 건 불법파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다. 불법파견 문제는 해결하지 않으면서 정규직 임금을 깎아 비정규직에게 준다는 것은 동의되지 않는 일이다. 회사는 이를 통해 재벌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처럼 행세하고 싶어 한다. 노동자들끼리 제 살 깎아서 채워야 할 문제가 아니다. 자본이 채워야 하는 문제다. 화성공장에서는 분명히 반대했고, 그것 때문에 욕도 먹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김수억 : 우리에게는 벽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당면한 불법조차도 바로잡지 못하는 벽이다. 촛불 항쟁을 거친 지금, 이제 한 번은 비정규직 불법파견을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나. 그런 후에는 10년간 1,100만 비정규직을 양산한 비정규직 악법 철폐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또 하나의 벽은 1사1노조 분리로 정규직 노조와 금속노조가 귀족노조의 대표 선수처럼 집중포화를 당하는 현실이다. 원래 책임은 법을 만든 정부와 자본가에게 있는데 왜 노동자들이 표적이 돼야 하나. 문재인 정부의 진정성은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만들었던 정리해고법, 기간제법, 파견법을 폐기하는 것에 있어야 한다. 우리는 단지 1사1노조 논란에만 갇히지 않고, 그 싸움을 위해 노력할 거다.[워커스 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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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노동자

    가해자를 바꿔치기했다!
    관점을 바로 잡아주는 인터뷰였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