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 참사 후 1년을 평가하다

‘너를 기억해’ 구의역 참사 1주기 추모토론회 열려

지난해 5월 28일 구의역 참사 이후 ‘안전의 외주화’ 시스템이 우리 사회 적폐로 떠올랐다. 승객과 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지하철 운영시스템의 면밀한 조사를 위해 진상조사단이 꾸려졌고 이들은 지난해 2차에 걸쳐 보고서를 내고 관련 대책을 서울시에 권고했다. 박원순 시장은 사과 담화문 발표와 함께 시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업무에 대해선 직영화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의 대책을 발표하며 안전의 외주화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의지가 있음을 피력했다.


진상조사단을 제안한 시민대책위는 1년이 지난 시점, 그간의 대책을 점검하고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울시의회 민생실천위원회, 지하철 비정규직 사망재해 해결과 안전사회를 위한 시민대책위(이하 시민대책위)는 25일 오전 10시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2동 제2대회의실에서 ‘너를 기억해’라는 이름의 추모토론회를 열었다. 지난 1년간의 서울시 대책을 평가하며 안전사회로 발돋움하기 위해 꼭 추진해야 할 청사진을 제시했다.

대책은 줄줄이 나왔는데 실행은 ‘글쎄…’

대책위는 서울시에 총 58개 대책을 권고했다. 발제에 나선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서울시의 권고안 이행에 대해 “딱 반타작했다”고 평가했다. 진상조사단과 거의 매주에 걸친 조사 및 회의에 함께 하며 개선 방향을 설정해가는 ‘협치’의 모습을 보였다는 데서 서울시의 행보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진상조사단이 핵심적인 권고안으로 꼽은 ‘노사민정 안전위원회’에 대해선 서울시가 전혀 실행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 ‘노사민정 안전위원회’는 시민사회(외부 전문가), 노동조합(일선 작업자)이 참여해 정책 결정자들이 놓쳤던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그룹이다. 한 사무처장은 “수직적이며, 경직된 대응방식을 완화하는 동시에 새로운 안전패러다임을 정착시킬 수 있는 기제로서, 지속 가능한 지하철 안전 달성을 위해 가장 시급히 추진돼야 할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토론에 참여한 박순철 안전사회시민네트워크(준) 사무처장 역시 “제도뿐 아니라 문화를 바꾸려면 노사민정 거버넌스가 핵심”이라고 밝혔다. 박 사무처장은 “현장 노동자에게 위험 작업을 거부하거나 중단할 권리, 업무 정보를 알 권리가 보장돼야 하는데 구체적인 실천으로 연결되기 위해선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당사자들의 아우성

고용과 관련해서도 미진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직고용 전환됐지만, 안전업무직이란 직군으로 정규직과 분리된 점, 안전 업무를 쪼개 직고용을 시도하는 점, 용역회사와 다를 바 없는 자회사를 설립한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박순철 사무처장은 “안전을 위해서 노동자들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고 이를 위해 직고용 전환을 추진했으나 여전히 ‘안전업무직’이라는 이름으로 정규직과 직군이 분리돼 있다”며 “위계가 남아있다면 소통을 방해가 되니 메트로와 서울시는 반드시 직군을 통합한 정규직화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 자회사인 도시철도ENG의 사례도 문제점으로 거론됐다. 도시철도ENG노조는 최근까지 소방, 전기, 급수, 환기 등 역사시설 정비업무의 직영화를 서울시에 요구했다. 지난해 9월 전동차정비 및 궤도보수분야만 쏙 빠져 직영화가 추진됐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지하철 양 공사 대표자 회의에서 ‘안전 관련업무는 위탁계약 종료 시 우선 직영화하고 미전환분야는 추후논의한다’는 결정이 있었지만 ‘안전분야 전환대상은 소방설비, 전기, 냉방, 환기로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윤동익 도시철도ENG노조 사무처장은 “지금 업무 중 안전과 관련되지 않은 게 없는데 또 쪼개기 직영화가 결정이 났다”고 비판했다. 이어 “비용절감을 위해 최소한의 인원과 임금으로 자회사가 운영되고 있는데 2인 1조가 불가능한 시간대가 존재하고, 야간엔 근무자가 아예 없다. 진상조사단의 보고서에서도 2배 인원이 필요하다고 돼 있는데 현재는 보수 업무에 급급해 점검 업무는 못하는 위험한 상황이다. 전환에 빠진 업무도 직영화될 수 있도록 정책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찬배 여성연맹 위원장은 지하철 청소 자회사가 용역과 다를 바 없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청소 자회사 노동자들은 용역업체 시절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지방계약법과 용역근로자 보호지침을 적용받고 있다”며 “자회사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적은 인원을 내리꽂고, 그 바람에 월곡역, 가산디지털 사고 같은 안전사고들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토론에 참여한 조성애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국장은 “어떤 형태의 자회사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조 국장은 “도시철도ENG라는 자회사를 만든 공식적인 이유로 전문 기술 육성 등을 들었지만 문제가 드러나 재직영화 되고 있다”며 “드러나는 자회사의 목적은 공공부분 인건비 줄여 예산을 축소하는 데 더 방점이 찍혀 있다”고 비판했다.

양 공사 통합, 중요한 것은 통합 후 내용

한편 모인 이들은 오는 지하철 양 공사가 통합돼 오는 30일 출범을 앞둔 서울교통공사에 앞으로의 역할을 촉구했다. ‘양 공사 통합의 성패는 통합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내용으로 공공성을 강화할 것인지에 달려있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재정구조의 변화를 주문하며 “말만 번지르르하게 마스터플랜이라고 하지만 재정구조를 변화시켜 돈을 마련하고 책임성을 강화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 연구위원은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공적보조가 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에게 부담을 주는 요금인상이나 노동자를 쥐어짜는 비용절감이 아닌 최선의 선택지였다.

우형찬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의원은 “국비 지원이 어려우면 요금 조정도 할 수 있다고 본다. 시민이 듣기 어려운 문제라도 해결해야만 하므로 정말 필요한 재원이 얼마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때”라고 밝혔다. 우 의원은 “문제는 또 돈”이라며 “양 공사가 내포하고 있던 운영적자 및 부채, 노후화, 안전사고 등의 문제는 통합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20년 이상 오래된 시설이 많아 통합 이후에도 안전사고 근절되기 까지 어려운 점이 많다”고 우려했다.

한편 오늘 토론회에 교통 당국인 서울시 교통본부가 불참해 원성을 사기도 했다. 박운기 서울시의회 민생실천위원회 위원장은 “교통본부에 토론자로 참여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노사정 위원회에 들어가 활동하고 있는데 굳이 토론회까지 가야 하느냐’는 답변을 들었다”며 “답답한 부분이 있지만 산적한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치하겠다”고 말했다. 한인임 사무처장 역시 “오늘 교통본부에서 나오지 않은 것은 치명적인 문제”라며 “함께 협력해야 할 교통본부는 따로 놀고 있는 구조라는 생각이 든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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