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다녀오면서 마주한 장면들

[워커스] 초록은 적색

[편집자 주] 가뭄에 농심이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집니다. 농업정책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지난 대선을 돌아보며 용석록 객원기자가 타들어가는 농심의 고향에 대해 전합니다.

내 기억 속에 있는 고향은 5월이면 모내기 준비에 논을 갈아엎고 물대기가 한창이다. 5월은 논두렁과 개울가에 찔레꽃이 피어나고, 아까시나무 꽃향기가 스치면 무언지 모를 축복 받는 느낌에 설레곤 했다.

강원도 홍천, 떠나온 지 30년이 다 돼 가는 사이 고향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논은 더 이상 벼를 심기 위한 땅이 아니다. 콩이며 고추를 심던 밭이 인삼밭 지붕으로 시커멓게 덮이더니 어느새 논마저 온통 인삼밭으로 변했다. 농사지을 일손이 없기도 하고 젊은 귀농인 또는 그나마 고향을 지키는 농민이 특용작물을 심어 수익을 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 고향을 지난 5월 초 연휴에 다녀왔다.

[출처: 자료사진]

# 장면1
고향 가는 길에 중앙고속도로에 있는 휴게소에 들렀다. 우동을 먹고 싶었으나 우리밀로 만든 우동은 팔지 않았다. 수입밀로 만든 우동만을 파는 휴게소 운영은 중앙고속도로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 장면2
홍천읍내에 도착해 찬거리를 찾다가 ‘언양식 소불고기’를 발견했다. 상품 설명에 “경남 언양 지방에서 유래한 언양식 불고기는 고기를 얇게 저며 재워두지 않고 즉석에서 양념해 구워 먹는 것이 특징입니다”라고 돼 있었다. 원재료인 소고기는 미국산. 집었던 물건을 도로 내려놓았다.

# 장면3
내가 살던 고향은 메밀국수, 메밀전, 메밀전병이 유명하다. 울산에 내려올 때 메밀가루를 사려고 홍천읍내에 있는 시장에 들렀다. 식품상회 두 곳에서나 국산메밀가루를 팔지 않아 발걸음을 되돌렸다. 그동안 내가 맛있다고 시장에서 사 먹은 메밀전은 모두 수입산 메밀가루로 만든 것일 테다. 시장 전체를 두 바퀴 돌면서 국산메밀 파는 가게를 겨우 한 곳 찾았다.

대통령 후보나 유권자 모두 농업정책에 관심 없다

대통령 선거기간이었으나 고향 사람들에게서 농업정책을 두고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역으로 각 후보들이 내놓은 선거 공보물에서도 농업정책은 아예 없거나 후순위였다.

19대 대통령 선거 공보물에 밝힌 다섯 후보의 정당정책과 공약을 농업정책 중심으로 살펴봤다. 공약은 1순위부터 10위까지 분류돼 있었다. 농업정책은 문재인 당선자에겐 공약 9순위, 홍준표 후보에겐 6순위이었지만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보호 등이 대부분이고 농업정책은 단 한 줄, 안철수 후보는 10순위, 유승민 후보 공보물에는 아예 농업정책이 없었다. 심상정 후보의 농업정책은 6순위였다.

자세히 보면 문재인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 공보물 ‘농촌과 어촌’ 공약으로 대통령 직속 ‘국민행복농정위원회’ 설치, 쌀생산조정제 시행, 직불제 확대개편, 농산물 최저가격 안정제 등을 약속했다. 홍준표 후보는 농업인 월급형 소득제 확대 시행을 위해 농가의 농산물을 담보로 정부(지자체)가 이자와 금융비용을 지원한다는 한 줄짜리 공약이 전부다. 안철수 후보는 국민 먹거리 기본권 보장을 위해 유전자조작식품과 수입 위해식품 관리강화, 쌀 소비 확대를 위한 학교급식 확대개편, 농가소득안정, 식량자급률 향상과 수급안정화를 통한 식량주권 확립을 약속했다. 유승민 후보는 농어민 정책이 없다. 심상정 후보는 친환경 농축산물 직불금 지급, 주요농산물 식량자급 기초농축산물 지정, 단계별 식량자급률 목표치 법정화, 65세 미만 노인에게 농민기본소득 월 20만 원 지급, 45세 이하 청년취업농에 월 100만 원씩 정착지원금 최대 5년간 지급 등을 약속했다.

농업정책은 모든 후보들에게 있어 일자리, 안보, 노인복지, 교육정책 등에 밀려나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대다수 국민(유권자)이 농업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2015년 기준 50.2%,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23.8%다. 밀 자급률은 2015년 기준 1.2%, 콩은 32.1%다. 쌀은 2015년 자급률이 100%를 넘어섰으나 2015년부터 쌀 시장이 전면 개방됐다.

귀농하려고 해도 ‘돈 들고 귀농’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한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자고 고향 다녀온 이야기를 적었다. ‘고향’에 대해 더 고민해 보려고 한다. 당신은 고향 다녀올 때 어떤 경험을 하는지 궁금하다.[워커스 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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