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청, 쪽방 주민 쫓아내고선 대학생들에겐 ‘쪽방 체험하세요’ 손짓

주민 동의없이 ‘쪽방 체험’ 홍보하고선 여론 악화되자 ‘취소’

  홈리스행동 활동가가 가난한 이들의 상황은 정작 무시한 채, 다정한 얼굴로 빈곤을 전시하며 대학생을 맞이하는 ‘중구청의 두 얼굴’에 대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출처: 비마이너]

  긴급복지 지원을 요청했지만 이를 거절하는 중구청을 퍼포먼스로 표현하고 있는 홈리스행동 활동가들 [출처: 비마이너]

서울 중구청이 주민 동의도 없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쪽방 체험’을 기획하자 시민사회단체와 쪽방 주민들이 즉각 폐기를 촉구하며 나섰다.

지난 1일, 중구청은 ‘대학생 쪽방 체험, 작은방 사람들과 마음 나누기’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오는 7월, 관내 거주하는 남자 대학생 12명을 모집해 2박 3일간 남대문로 5가 일대 쪽방에서 숙식 체험, 폭염대비 순찰, 후원물품 나눔, 쪽방 주민 말벗 봉사활동 등을 통해 쪽방 주민들의 어려움과 고충을 경험해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참여자는 2박 3일간 체험을 마치면 봉사활동확인서를 받을 수 있다. 보도자료에서 최창식 중구청장은 “쪽방과 같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웃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어루만져주는 체험을 통해 더 나은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5월말 기준으로 중구엔 38개 건물에 900여개의 쪽방이 있으며 주민은 800여명 가량 된다. 기초생활수급자, 65세 이상 홀몸 노인 등이 주민의 대다수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언론엔 “쪽방 사람들을 구경거리로 만든다”는 등의 비판이 잇따라 제기됐다. 여론이 악화되자 중구청은 부랴부랴 사업을 취소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14일에 중구청은 “일부 매스컴과 사회단체, 쪽방 주민들의 반대 의견에 따라 구에서 다시 심사숙고하여 본 사업을 취소하기로 했다”며 언론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러나 이 보도자료는 중구청 홈페이지에선 확인할 수 없다.

  홈리스행동은 14일 중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빈곤은 구경거리가 아니다”라며 중구청에 쪽방체험 계획을 공식적으로 즉각 폐기할 것을 요구했다. [출처: 비마이너]

이에 홈리스행동은 14일 중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빈곤은 구경거리가 아니다”라며 중구청에 쪽방체험 계획을 공식적으로 즉각 폐기할 것을 요구했다.

홈리스 행동은 “쪽방 주민들의 아픔을 알고 어루만져야 할 이들은 대학생이 아니라 관할 지자체인 중구청”이라면서 “중구는 서울시 지자체 중 거리 홈리스와 쪽방이 가장 많지만 복지지원은 가장 빈약하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2015년 말 재개발에 의해 관내 쪽방 200여호가 철거되고 주민들은 아무런 이주 대책없이 쫓겨났지만 중구청은 아무런 대책도 강구하지 않았다”면서 “2012년 3월부터 4년 동안 노숙을 위기로 한 긴급지원도 단 3건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날 동자동에 사는 김호태 씨는 “중구청은 최저 수준 이하를 사는 국민들이 있다는 것을 몰라서 쪽방 체험을 하나? 동물원 원숭이 취급하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주민 의견을 먼저 묻지도 않고 진행할 수 있나. 중구청은 지금 누구를 위한 계획을 세우는 건가”라고 질타했다.

김 씨는 “가난한 사람은 실험 대상도 아니고 교육 교재도 아니다. 하루하루 생존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다”라면서 “이미 생존을 위해 가난을 증명하느라 몸도 마음도 지쳤다”고 말했다.

윤애숙 빈곤사회연대 조직국장은 “오늘 오전 중구청은 쪽방 주민들의 자활 의지를 복돋우겠다며 ‘다시서기 희망체육대회’를 열었다. 그러나 체육대회, 나눔바자회를 한들 이들 삶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게 아니다”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자립의지를 잃고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이유는 중구청 같은 행정기관들이 제도적으로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겉으로 보기 좋은 일들만 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윤 조직국장은 “중구청이 정말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관심 있다면 이들 삶을 바꿀 수 있는 일에 힘을 썼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이날 홈리스행동은 “중구청은 반인권적, 폭력적 전시행정을 즉각 폐기하고 쪽방 주민에 대한 복지지원 책임자로서 본연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면서 “중구청이 할 일은 개발 사업에 의해 쫓겨난 남대문로 5가동 주민들의 무너진 주거권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기자회견 후 이들은 가난한 이들의 상황은 정작 무시한 채, 다정한 얼굴로 빈곤을 전시하며 대학생을 맞이하는 ‘중구청의 두 얼굴’에 대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어 중구청에 면담요청서를 전달했다.

한편, 이러한 유사한 일은 과거 인천에서도 있었다. 2015년 인천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쪽방촌에 외부인 생활체험관을 만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가난을 상품화 한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결국 인천 동구청은 사업을 철회했다.
덧붙이는 말

강혜민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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