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 ‘랄’을 기억해주세요

[기고] “이주노동자도 똑같은 사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갖고 있다”

네팔에서 온 청년 타파 체트리 랄 바하둘. 줄여서 랄바우둘이라 부르며 나는 그를 ‘랄’이라 부른다. 랄과 나는 친구다.

우리의 인연은 2015년 초 이주노동자 태권도 모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주노동자 친구들 대부분이 그렇듯 랄은 고강도 장시간 노동에 늘 지쳐 있었고 그런 그에게 태권도 수업은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문화생활이자 해방구였다. 특별한 일이 아니고선 어떻게든 모임에 참석할 정도로 열심이었다.

  타파 체트리 랄 바하둘의 모습

그런 랄은 모임 때마다 항상 어깨와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급기야 상태가 악화됐는지 몸이 아프다며 몇 개월째 모임을 쉬었고, 2016년 11월부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랄을 다시 만난 건 8개월 만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영안실에 누워있었다.

  랄의 영정사진

2017년 6월 14일 대우조선 C안벽 4303호선에서 발생한 중대재해의 피해자가 랄이었다. 랄은 이날 오후 1시 36분 경 컨테이너선 라싱브릿지(대형 컨테이너 적재를 고정하는 철 구조물)의 도장작업을 위해 최상부로 이동하다가 7~8미터 아래로 추락한 것이다. 사고 직후엔 우측 안면 함몰, 어깨 골절, 대퇴부 골절과 췌장, 간 손상으로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었다. 긴급히 부산대학병원 외상센터로 이송됐으나 뇌사 상태였고 15일 새벽 2시 30분, 사고발생 반나절 만에 사망판정을 받았다. 랄은 그렇게 먼 이국땅에서 숨을 거뒀다.

랄의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평소 어깨와 허리의 통증을 호소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 랄의 노동시간은 월 400시간이 넘었고 종종 모임에 빠지던 이유도 늦은 시간까지 잔업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소위 조선업이 가장 잘나가던 2009년부터 파워공(사상공)으로 살인적인 착취를 당해왔으니 몸이 성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회사는 사고원인을 “수직 사다리 이동시 3타점 미지지”, “인양로프 미사용”이라며 개인 잘못으로 치부했다. 과연 사실일까?

  랄의 카카오톡 상태메시지

  랄의 카카오톡 상태메시지

“원청이 산업안전보건법을 지켰더라면 랄은 죽지 않았다”

사망사고가 발생한 4303호 컨테이너선은 14일(사고당일) 선주사에 인도 예정이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17일로 일정이 연기됐다. 그만큼 마무리 공정이 임박했을 것이다. 또 대우조선은 회사가 어렵다는 핑계로 그 어느 때보다 생산성에 혈안이 돼 있어서 사망사고는 충분히 예고된 인재임을 추론할 수 있다.

뿐만 아니다. 랄은 태권도 모임에 참석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분명 파워공이었다. 그랬던 그가 도장작업을 하다 추락했다. 도대체 왜? 무슨 이유로? 언제 도장(페인트)으로 바뀌었단 말인가?

네팔친구 S의 진술에 의하면 랄은 지속적으로 어깨 통증을 호소했고 더 이상 파워 일을 할 수 없다며 보직변경을 요청했다. (당연히 산재신청으로 치료를 받았어야 했지만 하청 노동자에게 산재는 곧 블랙리스트 등록이자 해고다.)

올해 초 휴가를 떠난 랄은 네팔에서 어깨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직종이 변경된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으나 휴가 전후로 본다면 도장작업을 한지 길어야 6개월 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도장작업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근골격계질환으로 몸이 엉망이 된 랄에게 사다리를 타고 팔을 어깨 이상 올리는 페인트칠의 고소작업을 시켰다는 것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살인 행위와 다를 바 없다.

2인1조의 위험한 작업이었지만 그는 혼자서 일을 하다 변을 당했다. 2미터 이상의 고소작업을 할 때 회사는 추락 방지를 위한 안전조취를 해야 했지만 사고가 난 라싱브릿지에는 그물망도, 발판 설치도, 라이프라인도 없었다. 이는 당연히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에 책임이 있다. 원청이 산업안전보건법을 지켰더라면 그는 죽지 않았다.

  랄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네팔노동자들, 대우조선동문식당 앞

위험한 일을 거부하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제도적 문제도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바로 고용허가제라 불리는 현대판 노예제를 말한다. 보다 좋은 조건, 안전한 회사로 이직을 하고 싶어도 사장의 허락 없이는 이동할 수 없다. 행여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다 자칫 눈 밖에 나면 미등록자가 되어 강제추방을 당할 수도 있으니 그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모든 것을 통틀어 보면 랄의 죽음은 결국 국가와 자본의 탐욕에 의한 예고된 살인이다. 사람이 죽어도 고작 몇 십에서 몇 백의 벌금으로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니 기업주는 안전비용을 지출할 필요가 없고, 국가는 기업만을 위한 고용허가제로 이주노동자를 이중 탄압하는 구조가 되풀이 된다. 생명보다 이윤을 추구하는 산재공화국 대한민국의 적폐가 랄을 죽인 것이다.

“사람의 정체성은 피부색이나 신장색이 아닙니다.
사람의 정체성은 마음과 생각으로 정의됩니다.”


랄은 어린 딸과 임신한 아내를 두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났다. 우리도 당신과 똑같은 사람이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갖고 있다고 말하던 그였다.

부디 산재 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소서! (랄을 기억하는 모든 이에게 이 영상을 바칩니다)

덧붙이는 말

이 글은 경남노동자민중행동 블로그 ‘필통’과 거제뉴스광장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사진은 글쓴이 김정열 님이 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