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표 ‘정규직화’를 둘러싼 노동계의 고민

자회사 정규직 전환, 직무급제 도입...또 다른 ‘간접고용’ 만들어낼까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방안을 둘러싸고 노동계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최근 인천공항공사의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화 방식이나, 직무급제 도입 논의가 또 다른 간접고용 형태를 확대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부의 정규직화 방식을 둘러싼 노동계 내부의 온도차도 존재한다. 회사 형태만을 놓고 정규직 여부를 판단하기는 힘들다는 의견과, 현재 ‘간접고용 정규직화’의 프레임을 ‘직접고용 정규직화’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이에 민주노총은 21일 오전, 정동 프란체스코 교육회관에서 ‘간접고용 문제 올바른 해법찾기’ 토론회를 열고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화 방식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자회사-직무급제, 저임금 고착과 원청 책임 요구 어렵게 해”

발제에 나선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공공기관 정규직화의 유력한 방안으로 검토되고 있는 자회사 형식이 과연 정규직화의 본질을 담아낼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포장만 그럴듯한 면피용인지에 대해 진진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 정책위원이 사례로 제시한 공공부문 자회사 전환 사업장은 도시철도ENG, 메트로환경, 우체국시설관리단, 다산콜센터, 경희대 사회적기업이다. 이 중 도시철도ENG와 우체국시설관리단은 ‘구조조정’ 목적으로 자회사를 설립했다. 이들은 열악한 임금과 동종유사업무 정규직과의 극심한 차별, 노사갈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우체국시설관리단의 경우 구조조정 시도로 고용조차 불안정했다. 간접고용 해법으로 자회사를 설립한 메트로환경과 다산콜센터, 경희대 사회적기업은 고용안정은 보장됐지만 임금은 기존과 동일하거나 부분 개선만 이뤄졌다.

남우근 정책위원은 “자회사 방식이 구조조정의 수단일 경우 소속 노동자들은 임금, 고용에서 열악한 조건에 처하게 된다. 간접고용 해법으로서의 자회사는 고용안정을 이룰 수 있지만 임금 등 노동조건 향상은 별도로 논의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자회사 방식이 ‘원청 사용자 책임 인정’까지 담보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남 위원은 “자회사 방식은 본사(원청) 직접고용이 아닌 원거리 고용의 한 형태이며, 이로 인해 원청의 법적 책임을 요구할 수 없는 구조”라고 밝혔다. 공공부문이 직접고용을 회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건비를 통제하는 총액인건비제(기준인건비제) 때문이다. 이는 정부가 현재 고려하고 있는 ‘직무급제’ 도입과 맞닿아 있다.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기존의 연공급 방식을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자회사를 설립해 직무별로 별도의 임금체계를 수립하겠다는 것이다.

또 다른 발제자인 오민규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전략사업실장은 “청소노동자만이 아니라 노조를 갖지 못한 대부분의 미조직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임금체계에서 기본급은 어김없이 최저임금의 100~120%로 설계돼 있다”며 “한국의 사용자들은 직무 전체를 외주화, 하청화 하는 방식으로 매우 왜곡된 직무급제를 간접고용 비정규직에게 이미 강요해 왔다”고 설명했다. 과거 정규직 전환이 ‘무기계약직’이라는 또 다른 차별적 직군 확산으로 나타난 바와 같이, ‘자회사 설립’이 왜곡된 간접고용 방식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오민규 실장은 “자회사로의 전환 역시 원하청 관계는 본질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며, 파업 시 원청 자본이 직접 대체 인력을 투입하는 현상 역시 용역, 위탁업체 시절과 동일하게 벌어지기도 한다”며 “여러 개의 자회사를 두는 방식으로 사실상 용역, 도급업체와 다름 없는 운영이 이뤄지는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현재 민주노총은 △원청의 사용자책임 인정 △상시 지속업무 직접고용, 정규직화라는 2가지를 기본 방향으로 하고 있다.

“자회사와 직무급제는 ‘차별’이 아닌 ‘차이’다”

반면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차별’과 ‘차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수행하는 업무에 대한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간접고용의 정규직 전환 역시 원청 직접고용만을 고집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배규식 연구위원은 “같은 학력과 자격조건이 비슷하더라도 수행하는 업무가 질적으로 다른 경우 다른 임금을 줄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며 “원청 정규직에 비해 숫자가 적고 기존 정규직과 다른 직종의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경우, 직종별로 임금, 승진체계를 달리 마련해 기존 정규직과 차등해 관리하되 차별은 없애는 방법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공공부문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수가 원청 정규직 수보다 많을 경우, 자회사 정규직 채용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노동계의 ‘원청의 사용자책임’ 법제화에 대해서는 현재의 여소야대라는 국회 상황 때문에 당장의 현실화는 어려울 것이라 내다봤다.

배규식 연구위원은 “문재인 정부가 아무리 의욕이 있어도 법 개정을 요구하며 국민적 동의를 필요로 하는 개혁이나 굳어진 구조를 바꾸는 개혁, 재정이 많이 소요되는 개혁은 쉽지 않다. 몇 개월 안에 실현할 수 있는 역량도, 재정도, 국민들의 지지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계의 높고 많은 요구는 불감당 상태가 될 것”이라며 “10년 만에 찾아온 기회이니만큼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때로는 정부와 협력해가면서 개혁이나 요구를 달성하는 방법으로서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천공항지역지부의 상급단체인 공공운수노조는 민주노총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원칙에는 공감하지만, ‘자회사 고용’을 ‘비정규직 유지’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조성덕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회사 형태가 정규직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기준으로 보기는 힘들다. 공공기관에서는 전문성, 독자 수익 등을 감안해 별도로 설립된 자회사도 있고, 양호한 고용조건을 가진 사례도 있다”며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모회사가 바람직한 것은 사실이나, 모든 경우에 ‘자회사 고용은 비정규직 유지이다’라고만 보기에도 곤란하다. 구체적인 상황이나 노사(정) 교섭을 함께 고려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별도의 직무, 직군 분리와 관련해서도 “직무가 크게 다른 경우(이번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과정에서는 청소, 시설관리 등이 다수) 기존 정규직과 같은 임금체계를 당장 실현하기 곤란하다”며 “직무의 차이가 있는 경우, 전환 초기에는 이윤과 관리비를 전액 비정규직 처우개선에 사용하며, 복리후생에서 정규직과 차이를 완전히 폐지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최저임금에 가까운 직종의 처우개선은 최저임금 1만원의 조기실현을 통해 임금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은 “자회사 방식은 원청의 사용자책임이 제대로 인정되지 않고, 언제라도 파업대체인력을 투입할 수 있는 등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점에서 용역업체와 다를 바가 없다”며 “지금 공공부문에서 운영되는 대다수의 자회사는 ‘인력파견 자회사’”라고 지적했다. 직무급 논의에 대해서도 “직무급제에서 임금차별을 정당화하는 기준은 대단히 정치적이고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며 “사회적으로 직무에 대한 차별 인식이 높고, 소위 임금을 많이 받는 직무를 ‘숙련도’로 인정하는 것이 아닌 경쟁에서 승리한 결과물로 인정하는 한국사회에서 직무급은 어떤 형태로든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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