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우먼과 연대할 수 있을까

[워커스] 너와 나의 계급의식

DC코믹스 원작의 영화 <원더우먼>이 전 세계에서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평가도 좋다. 아름다움, 진지함, 강인함을 겸비한 여주인공이 남성의 도움 없이 몸소 전쟁의 신을 처단한다는 설정에 관객과 평단이 마음을 열었다.

주연 배우도 덩달아 화제다. 이름은 갤 가돗. 원더우먼으로 할리우드 첫 주연을 맡은 이스라엘 모델 출신의 배우다. 첫 주연작이 대형 출세작이 된 행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출세작에 불매운동이 일어나게 한 장본인도 바로 가돗이다. 지금 그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축하와 칭찬 일색은 아니란 뜻이다. 팔레스타인 점령국이자 그의 ‘고국’인 이스라엘이 문제였다.

[출처: 워너브라더스]

구체적으로는 가돗이 SNS에 올린 사진이 문제였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침공이 한창이던 2014년 7월, 가돗은 이스라엘 군의 선전을 기도하는 자신의 모습을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이 사진이 최근 영화 개봉에 맞춰 온라인에 퍼져 나갔고, 가자의 참상을 기억하는 이들 사이에선 <원더우먼> 보이콧이 선언됐다.

가돗은 자신의 기도 사진에 ‘가자를 하마스*에게서 해방시키자’라는 해시태그를 달기도 했다. 2,200여 명의 가자 주민을 살육한 자국 군대에 스스로를 이입해 심판자와 구원자를 자처하는 이러한 서사는 가해자 정의론의 오랜 전형이다. 더 씁쓸한 것은 가돗의 기도 사진 공개를 단순한 사고나 사생활로 보긴 힘들다는 점이다. 오히려 할리우드 세계가 그 사진에 드러난 가돗의 면면을 21세기 여성 영웅의 캐릭터로 선호하고 또 채택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가돗의 할리우드 진출 과정부터가 그 이유를 잘 보여 준다.

19살이던 2004년 ‘미스 이스라엘’로 연예계에 데뷔한 가돗은 이듬해 2년간의 군복무를 시작한다. 여성이 징병 대상이긴 해도 입영 유예 사유가 폭넓게 인정되는 이스라엘에서 이처럼 여자 연예인이 군에 입대하는 것은 흔치 않다. 2007년 가돗은 남성지 <맥심>의 이스라엘 여군 화보를 촬영해 이스라엘 바깥에도 이름을 알리게 된다. 화보를 눈여겨 본 할리우드 관계자의 소개로 가돗은 영화 <분노의 질주> 4편에 새 조연으로 투입되는데, 이때 역할이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출신인 미모의 여성이었다. 출연 당시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봉쇄·침공한 시기와 겹친단 점에서 다소 정치적 악의가 느껴지는 배역과 캐스팅이다.

내막이 무엇이든 이제 할리우드 세계는 소련과 맞서는 영국 정보기관보다 이슬람 테러리스트에 맞서는 모사드를 선호하게 된 것 같다. 즉 업계에서 ‘이스라엘 여전사’ 이미지는 전격 호기를 맞았고, 성조기 문양을 딴 원더우먼의 철갑옷과도 자연스레 어울린다. 실제로 <원더우먼>이라는 초대형 영화 프로젝트에 발탁될 당시 가돗이 가진 특이경력이라곤 이스라엘 군 복무 경험이 다였다. 분명하게도 할리우드는 원더우먼이라는 새 영웅과 새 여성상을 표현하는 데 이스라엘 여군 출신을 택했고, 이로써 아랍 세계에 확실한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캐스팅 당시 가돗의 외모를 두고 불거진 자격론도 흥미롭다. 그의 유난히 마른 체형이 아마존 최고의 전사라는 원더우먼의 설정과 어울리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재미있게도 당사자와 영화 홍보팀은 이 문제제기를 ‘다양성’ 의제로 풀어나갔다. 가돗은 섹시한 여성이 똑똑하고 힘도 셀 수 있다며 세간의 젠더 편견을 조소했고, 자신의 작은 가슴에 대해서도 당당히 인터뷰했다. 백인 여성의 ‘모델 몸매’가 다양성 몸매를 대변하게 된 순간이었다.

다만 가돗의 ‘모델 몸매’를 내세우는 연예 기사들에는 절대로 그의 이스라엘 군 복무 경력이 빠지지 않는다. 지금 관객과 평단이 환호하는 원더우먼의 이미지가 여성 외모에 대한 새 기준보다는 팔레스타인인을 처단하는 이스라엘 여군에 대한 상상력에 더 의존하고 있진 않은지 고민하게 되는 대목이다. 특히나 그 상상이 여전사의 ‘전사답지 않은 몸매’를 보완하고도 남는다면 말이다.

발언할 수 있는 여성과 없는 여성

최근 할리우드는 인종, 여성, 성소수자 의제에 대한 정치 발언이 터져 나오는 주요 무대로 자리 잡았다. 올해 초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미국 배우 메릴 스트립이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반 이민·여성·장애인 태도를 맹비난해 큰 박수를 받았다. 일찍이 스트립은 미국의 아프간 침공 당시 아프간 여성들을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게서 구출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하며 할리우드에서 가장 정치적인 배우로 부상한 바 있다. 지금껏 여러 정치 발언으로 주목과 박수를 받은 사람답게 그는 새 대통령을 겨냥하면서도 자신감이 돋보였다.

아랍·무슬림 여성들을 향한 스트립의 연설이 서방 주류의 열렬한 호응을 샀고, 사실상 미국의 아프간 침공에 힘을 실어주었다는 비판은 잠시 접어두자. 그보다 지금 묻고픈 것은 이런 것이다. 스트립이 구원하겠다는 아랍·무슬림 여성들에게는 언제쯤 자신의 정치 입장을 스스로, 자신감 있게, 널리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까? 아랍·무슬림 여성들도 메릴 스트립처럼, 그리고 원더우먼이 전 세계 여성을 대변하도록 유엔 명예대사로 임명된 데 반발한 유엔 직원들에게 그렇게 항의할 일이 없냐며 비아냥댄 갤 가돗처럼, 자신의 정치 의사를 공적으로 표출하는 데 똑같이 거침없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스트립이 늘 강조하듯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을 다니거나 기업가가 되겠다고 선언해야지만 박수를 받는 지금의 숙명을 깨고 말이다.

또 이런 생각도 든다. 갤 가돗의 페이스북을 살피던 중 “우리는 평등한 인간이다. 세상에 불법인 사람은 없다”는 글귀가 눈에 띄었다. 저 금언은 나의 신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와 나의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동지들은 언젠가 갤 가돗과도 연대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과연 어떻게 출발을 해야 할까? 갤 가돗 개인도, 영화 <원더우먼>과 갤 가돗의 당당한 인터뷰들에서 위안과 용기를 얻었을 여성들도 무턱대고 비난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에 나는 이 질문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 일단은 우리 세계의 의제를 정하고 대표자를 세우는 일을 할리우드에 맡겨둬서는 안 된다는 답이 떠오른다.[워커스 32호]


* 무장투쟁을 포함하는 노선의 가자지구 집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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