꿘페미와 진보남성

[워커스] 반다의 질문

“페미니즘을 어떻게 설명해야 진보남성들이 변할까요?”

그의 목소리는 떨렸고, 약간의 절박함이 묻어났다. 조직에서 페미니즘 세미나를 거듭할수록 ‘벽’을 만나는 기분이라고 했다. 자신은 운동사회 성폭력 피해자이기도 한데, 조직을 꼭 변화시키고 싶다고 했다. 학생운동이 무너진 세대에 속한다는 그는 ‘꿘페미’로서 질문할 곳이 마땅치 않다고도 했다(꿘페미는 운동권페미니스트을 뜻한다). 놀랐다, 아렸다. 그에게서, 십 수 년 전의 나와 동료들을 보는 것 같았다.


[출처: 자료사진]

# 꿘페미님에게

그날 일찍 일어서던 나는, 당신의 갈라진 목소리가 던지는 질문에 그만 멈춰 섰어요. 그 자리의 다른 페미니스트들의 눈동자도 당신에게 고정돼 있었죠. 마지막에 당신은 단단한 표정으로, 위로가 아닌 냉철한 답변과 경험을 듣고 싶다고 했죠. 낯선 이들에게 단호하고 차가운 조언을 청했어요. 그날 건네지 못한 말, 이제야 전합니다.

나는 애초 당신의 질문 자체가 잘못 됐다고 봅니다. ‘남성에게 페미니즘을 설명하고, 변화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뜻입니다. 젠더는 이 사회를 직조하는 체제이고, 적대적 관계를 머금은 권력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자가 자본가와 토론할 수 있지만, 토론이 주요한 변혁 도구일 수는 없죠. 자본가 개인이 문제인 게 아니라, 노동자와 자본가는 계급 구조 안에 놓여 있으니까요. 노·사간엔 투쟁이 아니라,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건 자본가입니다. 노동자는 자본가를 설득하는 게 아니라 파업 등으로 변화를 만들지요. 인류사에서 여성참정권은 남성을 향한 설명과 교육으로 얻어 낸 게 아니라, 투쟁으로 쟁취해낸 결과인 것처럼요.

안타깝게도 나는 운동사회 성폭력을 지난 이십년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여성단체에서 성폭력 상담 활동을 몇 년간 하면서, 남성이 여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좀 더 알게 됐습니다. 최근 소설가 김훈이 했다는 말을 듣고, 깊이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여자를 생명체로 묘사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역할과 기능을 가진 인격체로 묘사하는 데 서투르다. 여자에 대한 악의나 편견을 가진 건 아니다.” 생명체라니, 의미심장한 표현이에요. 젠더폭력에 대한 모순된 해석은, 많은 남자들이 여자를 생명체로 대할 수는 있지만, 인격을 지닌 사람으로 대하는 건 ‘서툴러서’ 그런 것 같은데(서툴렀던 거지, 구타나 강간은 아니다!).

아마 그들은 서투름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안 할 뿐 아니라, 역시나 여자에 대한 악의나 편견은 없다고 굳게 믿고 있나 봐요.

성폭력 피해자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남성은 변하기 힘들다고 말할 때가 많은데, 나 또한 운동사회 남성은 변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남성은 쉽게 자신을 보편이나 초월적 존재로 위치시키는데, ‘진보남성’들은 그런 경향이 더 짙죠. 이 사회가 어떤 구조와 방식으로 굴러가는지 다 안다는 태도, 창조주라도 되는 듯 세상을 훤히 조망하고 해석한다는 자만심, 수없이 봤습니다. 운동에서 과학적 사고, 명확한 분석, 적극적 실천이 중요함에도 유독 젠더차별에 대해서는 과학적 분석이나 실천이 작동하지 않는 이들. 그러다보니, 남성은 공격적이고 여성은 보살핌을 좋아한다는 식의 진화심리학을 신뢰하는 이들도 많죠. 결국 젠더체제를 분석하지 않고, 성별 ‘본능’이나 ‘자연’으로 봉합하며, 눈을 감고 체제유지 신화에 기여합니다(자본주의는 인간의 본능, 자연의 법칙?).

아무리 성폭력이 반복돼도, 여성들이 ‘처리’할 일이라며, 꾸준히 무관심한 게 이상했어요. 줄어드는 활동가 수를 걱정하고, 여성 활동가들이 성차별 성폭력 때문에 계속 조직을 떠나는 상황에서조차, 젠더문제는 ‘관심분야’가 아니라며 외면하는 게 신기할 때도 있었죠. 그러니까, ‘진보남성’이자 ‘세계의 주체’로서 사회의 온갖 문제에 대해 해석하고 명명하던 이들이, 유독 젠더차별에 대해서만 집요하게 침묵하는 걸 보면서 알게 됐어요. 그들은 젠더 문제는 몰라도 되는 권력을 갖고 있으며, 페미니즘은 알고 싶지 않다는 적극적 실천을 하는 중이라는 것을요.

그렇다고 당신에게 남성과 페미니즘 세미나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남성이 페미니즘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은 더더욱 아닙니다(내 주위엔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며, 사소한 실천도 중시하는 남성동지들 꽤 있습니다). 다만, 토론을 통해 진보남성을 변화시키겠다는 큰 기대는 말았으면 합니다. 고통스런 노동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진보남성에게 페미니즘을 설득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고, 신뢰하는 남성동지들과의 관계에서 자기분열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당신이, 당신처럼 고립된 꿘페미들을 찾아내서 고민, 웃음, 연대를 함께하는 데 힘을 쏟았으면 합니다. 그건 ‘손쉬운 자족’이 아닙니다. 당신의 행복에 필요한 일이고, 진보남성들의 변화 그리고 전체 운동을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당신 앞에 고된 날이 많겠지만, 우리에겐 페미니즘이 있습니다. 지난해 정의당 이름으로 걸렸던 현수막, ‘편 가르지 말고 남자여자 친하게 지내요.’ 이는 페미니즘으로 실현 가능한 관계입니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코르셋’, 남성의 ‘맨박스’를 벗어나게 하는 힘을 길러줌으로써, 자신을 훼손·왜곡하지 않고 보다 온전히 존재하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페미니즘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노동과 자본의 현실에서, 새로운 투쟁 좌표를 설정할 때 좋은 렌즈를 제공합니다. 페미니즘만이 유일하거나, 절대적 사상이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당신이 꿘페미로 걷게 될 지난한 길에서, 페미니즘을 놓치지 않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빌고 있습니다. 끝으로 안젤라 데이비스의 말을 전합니다. ‘벽을 밀치면 문이 되고,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된다!’[워커스 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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