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했다는 재개발, 법도 버린 철거민

[워커스 르포] 마포구 재개발, 속출하는 철거민들 ‘믿을 건 연대뿐’

‘운도 실력이야. 너의 재수 없음을 탓해.’
철거민들을 만나면서 돈뿐 아니라 운도 실력일 수 있겠다 싶었다. 운이 나쁘면 가난한 도시인 누구나 철거민이 된다. 재개발에 따른 협조 요구 문서, 후려치기 공탁금 몇 푼이면 몇 십 년을 밟고 살았던 땅이라도 밀려난다. 준엄한 법은 억울함을 호소해도 요지부동이다. 아직 대한민국 노른자 땅에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산다면 그들은 운이 좋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서울에만 200여 곳에서 세입자를 내쫓는 강제철거가 진행 중이다. 단지 운이 나빠 철거민이 된 이들을 만났다. 개혁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 마포에 사는 어떤 이들은 정치를, 법을 믿지 못하게 됐다고 한다. 뉴스에선 개혁 정부에 대한 기대로 가득하지만 철거 지역의 여당 의원들은 단 한 번도 철거민을 만나러온 적이 없다. 철거민들은 국회로, 청와대로, 광장으로 뛰어나가 생존권을 외친다. 이 땅은 가난하고, 운 없는 사람을 투사로 만든다.


마포의 지도가 바뀌고 있다

전국철거민연합회로부터 강제집행을 막기 위해 도와달란 메시지가 온 것은 지난 5월 24일 새벽이었다. 24일 오후 강제집행이 예고돼 있으니 서울 마포구 공덕동 마포로 6개발지역에 있는 JY뮤지컬 실용음악학원 앞으로 모여 달라는 연대 요청이었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어쩌면 첫 번째 강제집행이 벌어질 수 있었다. 마포에서 24년간 실용음악학원을 운영해온 박제연 원장은 “제2의 용산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많은 관심을 바란다”며 호소문을 썼다. 전철연, 맘상모, 노동당 등이 모였고 실용음악학원의 강제철거를 막았다. 하지만 강제철거 집행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강제철거 집행관은 2주의 시간을 주겠다고 말하곤 떠났다.

마포로 6구역은 16,857㎡ 면적에 29층짜리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는 도시환경정비사업이 진행 중이다. 인근엔 인천공항철도, 경의중앙선, 5호선, 6호선 등 4개 지하철 노선이 지나는 공덕역이 있다. 재개발업자들이 서울의 금싸라기 땅인 이곳을 내버려 둘리 없었다. 특히 마포는 서울 안에서도 재개발 범위와 속도가 남다르다.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낮은 주택들은 허물어지고 높은 빌딩이 들어선다. 공덕동 이외에도 신수동, 대흥동, 염리동, 아현동 등지에서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항간에선 ‘마포 지도가 바뀐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들린다.

공덕의 주상복합 재개발 사업을 위해 2008년 ‘마포로 6도시환경정비사업 조합’이 설립됐다. 2015년부터 본격화된 재개발은 건축 시설 계획, 토지 보상 등을 거쳐 지난해부터 철거에 들어갔다. 일부 집주인은 세입자들과 함께 재개발을 반대하기도 했지만 지난해 4월, 재건축 범위의 건물과 땅은 조합에 다 넘어갔다. 200여 명의 세입자는 대부분 보상을 받고 나갔지만 9명의 세입자가 남아있다. 지난해 7월 상가세입자에 대한 첫 번째 강제집행이 있었고, 그 후로도 강제집행은 다섯 번이 더 있었다. 강제집행이 끝나고 건물로 들어가는 것은 불법 점유가 된다. 복잡한 소송에 휘말릴까봐 철거민들은 쫓겨났다.

이들이 무턱대고 쫓겨난 건 아니다. 나름의 절차가 있었다. 마포로 6조합과 세입자, 서울시 코디네이터, 마포구청 관계자가 참여한 사전협의체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4월까지 총 7차례 열렸다. 사전협의체는 서울시가 2013년 세입자 이주 대책으로 내놓은, 일정 구성원을 갖춰 최소 5회 이상 대화를 거치도록 한 제도다. 그러나 협의체에선 조율이 되지 않았고 지금은 명도소송 절차가 진행 중이다. 철거민들이 건물과 토지를 불법 점유하고 있다며 재개발조합이 이를 돌려받기 위해 법원에 제기하는 소송이다.

서울시는 감정평가 금액의 30%를 더 보상하겠다는 협상을 끌어내기도 했지만 세입자들은 감정평가액이 워낙 미미하므로 의미 없는 인상이라며 제안을 거절했다. 세입자 비상대책위원회와 조합은 계속 협상 중이지만 이견 조율은 쉽지 않아 보인다. 세입자들은 1년 이상 싸우며 법에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들의 손실은 감정평가사가 계산하고, 이를 거부하고 버티면 불법점유가 돼버리는 게 현실이었다.

내 노년을 망친 재개발과 강제 철거

공덕동의 한 주택에서 50년을 산 손 씨는 지난 3월 9일 강제철거 후 넉 달째 바깥을 전전하고 있다. 오전 9시, 노인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시커먼 옷을 입은, 문신한 남자들’이 들이닥쳤다.

손 씨 부부는 강제철거를 말리다 쓰러졌고 근처 적십자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그는 올해 일흔다섯 살, 그의 남편은 여든 살이다. 다시 가본 집은 쑥대밭이었다. 문짝이 뜯기고, 쓰레기통은 엎어져 있었다. 수십 년간 모은 살림살이들은 대부분 사라졌는데 남은 것들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물건을 보관해놨다는 곳을 물어물어 찾아가니 냉장고 안 음식물은 썩었고, 박살 난 물건들은 가슴을 뒤집어 놨다.

강제 철거 직후, 조합이 손 씨에 모텔을 구해준 건 단 3일뿐이었다. 그 이후엔 하루 4~5만 원 하는 숙박업소를 이용할 수 없어 지하철역에서 잔 적도 있다. 무서워서 꼬박 밤을 새웠다고 했다. 이후 하루 1만 원짜리 청량리 여인숙에서 한 달간 지냈다. 남편을 병원에 입원시키고 홀로 마포구청, 서울시청, 경찰서, 법원을 쫓아다니며 억울함을 호소했는데 ‘기관장’이라는 사람은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다. 손 씨의 말은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 채 흩어졌다. 5월 13일 이후, 손 씨는 남편을 데리고 빈집이 있다는 경남 함양으로 잠시 내려가 있다.

손 씨에게 도와줄 이는 없냐고 물으니 자식들에게 왜 폐를 끼쳐야 하냐고 반문했다. 손 씨 부부가 살던 집은 23평짜리 단독주택이었다. 감정평가사는 1평당 1,300만 원을 책정했다. 실거래가의 1/3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집 하나 장만하려고 기를 쓰고 50년을 살았는데 이런 세상이 어디 있어요? 나는 아직도 박스 주워서 팔아먹고 살아요. 고기도 못 사 먹고, 채소도 아주 싼 거 사 먹어요.” 살뜰히 모아 장만한 집은 손 씨 부부의 전 재산이었다.

임대주택공급신청 대상자인 손 씨는 오는 23일 공덕의 13평짜리 임대주택으로 이사할 예정이다. 생돈이 나가는 것 같아 월세는 피하고 싶었지만 월세를 내야 한다고 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 강제철거의 후유증으로 지병이 있던 남편은 아직 손을 떨고, 오줌을 지린다. “달랑 몇 푼 쥐여 주면서 50년 산 내 집에서 나가라니 누구를 위해서 개발하는 거예요? 이 돈으로는 서울에서 다른 집을 얻을 수도 없어요. 죽으라는 소리잖아요. 벼락 맞을 놈들이에요.” 손 씨는 눈물을 쏟았다.

“투쟁하면서 진화했다. 법 개정 위해 싸울 것”

마포로 6구역에 남은 세입자는 이제 다섯 손가락 안이다. JY뮤지컬 실용음악학원, 영호카센터는 매일 집회를 하고 관계자들을 쫓아다니며 저항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감정평가사들이 제시한 영업보상금을 받고 떠나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오랫동안 키워온 사업을 접기도 싫거니와 감정가로 책정된 금액은 사업을 재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영호카센터 김영채 사장은 마포로 6세입자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106평 규모의 카센터를 운영 중이다. 영업보상금은 서울토지수용위원회, 중앙토지수용위원회를 거치며 다소 뛰었지만 다른 지역에 지금과 같은 카센터를 짓는 덴 턱없이 부족하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카센터 특징상 이동하지 못하는 장비들이 더 많다. 땅에 단단히 묻었기 때문에 파내면 망가져 쓸 수 없게 된다. 세차장 역시 폐수 처리 시설을 반드시 설치하게 돼 있어 지하에 저수조가 있다. 장비 몇 개 견적을 냈더니 1억이 넘어갔다. 김 위원장 몫의 영업보상금은 9,700만 원이었다. 손 씨 부부와 마찬가지로 감정평가액이 문제였다. 널뛰기 감정평가 결과는 꾸준히 논란이 되고 있다. 감정평가법인이 발주 과정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체의 편의를 봐줄 가능성, 업종의 특이사항을 고려하지 않은 계산 때문에 잡음이 나오는 것이다. 그는 이제 보상을 넘어 법 개정을 위해 싸울 것이라고 했다.

같은 처지인 사람들과의 연대도 그에겐 중요한 과제다. 지난해 여름엔 성주에 찾아가 사드 반대를 외치고, 최근엔 개포동에서 벌어진 강제 철거 현장에 나가 온종일 함께 싸웠다. 그의 연대는 옆에 있어 주는 것이다. “강제 철거가 끝나면 철거민이 어디에든 분풀이해야 해요. 경찰, 용역에게 한마디라도 하면서 억울함을 표현하죠. 이때 욕지거리라도 할 수 있게 지켜주고 싶어요.”

마포 토박이 박제연 원장은 지금 위치한 자리에서 8년 간 학원을 운영했다. 20여 명의 강사와 200여 명의 학생들이 다니는 제법 큰 학원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철거 작업이 주변부터 진행되면서 현재는 일 년 넘게 운영을 못 하고 있다. 강사들도 반 넘게 줄었다. 학원 앞은 철거 잔해물로 가득하다. 박 원장은 지난해 5월 26일 세입자 9명과 함께 마포경찰서에 형사고발 당했다. 공익사업법 제43조 위반, 불법점유 건이었다.

박 원장은 “앞에서는 협상하자고 하면서 뒤에선 고소하며 뒤통수를 치고 있다”며 “협상으로 문제를 풀기 위해선 모든 진행 상황을 중단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박 원장은 ‘기부채납’ 문제를 지적하며 앉아서 구경만 하는 지자체를 비판했다. 기부채납이란 땅 용도 변경, 용적률 상향, 도시계획시설 해제 등으로 이익을 보는 사업자가 단지 내 부동산 일부를 해당 지자체에 기부하는 것을 말한다. 개발에 따른 추가 이익 일부를 공공을 위해 사용하는 제도다. 박 원장은 한 토론회에서 “결국 원주민과 지역발전에 이바지한 영세 상가세입자들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해 얻은 이익을 공공기관과 조합, 건설사가 나누어 가지게 되는 것”이라며 “세입자의 손해는 거대하게 한 몸이 된 이들의 이익에 묻히고, 싸워도 이길 수 없어 빨리 포기하도록 종용당한다”고 비판했다.

조합장 “법대로 했는데 조합도 억울하다”

마포로 6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장은 남은 세입자 때문에 큰 손해를 보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계속되는 건설 지연에 108명의 조합원 중 현재는 66명만 남아있다고 했다. ‘서울 도심에서 이렇게 거지 같이 살 순 없다’는 동네 어르신들의 부탁을 받아 법대로 사업을 진행했을 뿐인데 나쁜 역할을 맡게 돼 억울하다고 했다.

누군가의 말대로 ‘법대로의 종착점은 폭력’이었다. 우린 언제까지 쫓겨나는 사람들의 비명을 들어야 할까. 오늘도 누군가는 백주에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참담함을 느끼고 있다.[워커스 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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