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태를 몰고 올 위험한 바람, 맞서 싸우는 사람들

[워커스 이슈] 탈핵, 쇼미더머니

[워커스 이슈] ‘탈핵, 쇼미더머니’ 연재 순서

(1) 태양광 발전소를 혐오하는 마을, 이것은 님비입니까?(링크)
(2) 산사태를 몰고 올 위험한 바람, 맞서 싸우는 사람들(링크)
(3) [관계도] 신재생에너지가 내게 오는 길(링크)
(4) 깜깜한 미래, 내게 ‘광(光)’ 같은 태양광 투자(링크)

(5) 신재생에너지에 빨대를 꽂다
(6) 삼성물산과 손잡은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재생에너지 비극


악산이라 소문난 주산에 올랐다. 잘려나간 나무뿌리 주변에 능선부를 깎아 생긴 토석류가 널려 있다. 25도가 넘는 가파른 경사를 평평하게 만들기 위해 산을 밀어버렸다고 했다. 파헤쳐진 땅 위해 쌓아놓은 나뭇가지들이 위태로워 보였다. 큰 비가 내리면 절벽으로 쓸려 내려갈지도 모른다. 운이 나쁘면 돌무더기가 무너져 내릴 수도 있었다. 주민들은 이 황량하고 불안한 땅에 거대한 풍력 발전기가 심어질 것이라 말했다.


산사태가 가장 무섭다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홍계리에 위치한 주산에서 풍력발전기 22기 공사가 진행 중이다. 2014년 3월 발전사업 허가가 난 뒤,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했다. 홍계리 주민들을 중심으로 작년 4월부터 풍력발전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홍계리 풍력발전반대 비상대책위원회’도 꾸려졌다. 홍계리에서 만난 대책위 주민들은 “산부터 봐야 한다”며 취재진을 공사 현장으로 안내했다. 가드레일도 없는 좁은 비포장길을 달려 주산으로 향했다. 차에서 내린 주민들과 취재진은 토석류가 드러난 가파른 산을 올랐다.

“은폐하느라 어설프게 나무를 세워놨는데 마을 사람들은 다 알아요. 저기도 수십 군데가 무너졌어요.” 임기덕 비대위원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들은 산사태의 위험성이 가장 두렵다고 했다. “우리가 원하는 건 보상도 뭣도 아니에요.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 달라는 거예요.” 그는 황량하게 깎인 산을 돌아다니며 불안한 지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흙무더기, 나무더미, 돌덩이들이 절벽 끝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지점들이었다.

그들이 괜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영양군은 2002년 태풍 루사, 2003년 태풍 매미가 덮쳤을 때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곳 중 하나다. 흙더미가 논과 밭에 쏟아지고 주산의 큰 나무들이 뽑혀 내려와 도랑에 꽂혔다. 홍계리 마을 입구 주변 집들이 붕괴되기도 했다. 전문가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산사태 전문가인 이수곤 서울시립대 교수는 우면산 산사태, 경남 밀양산사태 사례처럼 인위적인 지형 변경은 산사태의 가능성을 높인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영양에코파워 풍력사업 공사 중지 요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그는 주산의 지층 사진을 제시하며 “경상도 지역은 층리에 따라 상당히 큰 규모로 무너져 보강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교수는 “산을 개발하면 지형이 바뀌고 물길이 바뀌어 산사태를 유발할 가능성이 생기는데 발전기 사이를 잇는 도로들이 제대로 된 토목공사를 동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영양군청이 공사 관리 감독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비대위는 지난 6월 권영택 영양군수와 이종건 남부산림청장을 각각 안전관리 소홀과 직무 유기로 고발했다.

임 비대위원장은 공사 현장의 퇴적암들을 가리키며 불안함을 토로했다. “바위에 점토가 다 들어있대요. 그래서 물을 머금으면 자동으로 미끄러지게 돼 있고 그 방향이 전부 동네를 향해있다는 거예요.” 군청과 산림청에 산림훼손과 안전 문제로 수차례 진정을 넣었지만 형식적으로 둘러보기만 할 뿐, 어떤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산림청, 환경청은 안전하다면서 허가를 내줬어요. 우리가 재검토를 요구해도 다시 할 이유가 없대요. 공동 조사를 요구해도 안 된다하고요.”

주민들은 막대한 사업에 개입할 틈이 없었다

홍계리 주민 30여 명은 결국 공사 현장에 몸을 묶었다. 깎인 산 중턱에 텐트를 치고 공사를 막았다. 공사는 잠시 중단됐지만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일이다. 이들은 여전히 4명씩 돌아가며 텐트에서 밤을 지새운다. 반대 투쟁 과정에서 마을 전체가 고소당하는 일도 있었다. 비대위 관계자들이 공사에 항의하던 중 현장 소장이 언덕으로 미끄러졌다. 시공사는 집시법 위반과 폭행치사 등 업무방해 혐의로 주민 57명을 고소했다. 하지만 현재 비대위로 결합해 싸우고 있는 주민은 30여 명 남짓이다. 수년 전 고인이 되거나 몇 년 전 요양병원에 입원한 주민, 이사를 간 주민들까지도 포함해 막가파식 고소를 한 것이었다.

3년 전 영양으로 귀촌한 조을환 씨는 “신재생이고 뭐고 이건 토건사업”이라며 “20만 평방미터가 조금 안 되는 공사 규모라 대규모 환경평가도 피해갔다. 하지만 여기저기 지어지는 면적을 포함하면 주산 전체가 바람개비로 채워질 것”이라고 분개했다. 20년 간 안경점을 운영하다 귀농한 그는 2,000평 농사도 제쳐두고 풍력발전 반대 투쟁에 뛰어들었다. “농사 안 짓는다고 굶어 죽기야 하겠냐는 심정으로 풍력 공사 중지 운동을 하고 있죠. 조금 고생해도 앞으로 살날들을 생각하면 이게 더 중요하죠.”

조 씨는 그동안 조사했던 것을 꼼꼼하게 설명하며 산림 훼손 문제를 지적했다. 공사 과정에서 번식에 중요한 ‘씨 나무’를 베기도 하고, 보존 가치 높은 소나무를 반출하는 일도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페인트로 하얗게 칠해놓은 게 경계목이에요. 그런데 공사를 하면서자기네들필요에따라서베고저밑에 있는 다른 나무에 페인트를 칠해버리는 거예요. 처음에 왔을 땐 공사현장이 이렇게 넓지 않았어요.”

풍력단지가 들어서기 위해선 지방산림청, 환경청의 심의를 거쳐 지자체의 최종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50만m² 이상이면 산지전용지 타당성에 관한 중앙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 영양군은 이 모든 법적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풍력단지 건설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다.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 때 홍계리를 대표해 이장이 왔고, 이장에게 이야기를 전했다는 것이다. 영양군 측에 주민 설명회를 어떤 식으로 고지했는지 묻자 군청 홈페이지에 온라인 공지, 신문 게재 등을 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홍계리 마을 주민들의 평균 연령은 75세다. 공지 방식의 적절성을 묻자 “개별적으로 전하기엔 무리”라는 해명이 돌아왔다.

일자리 창출? 소득 증대?

김관용 경상북도 도지사는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동해안 에너지클러스터’ 사업을 추진 중이다. 선봉에 선 곳은 영양군이다. 전국 500여 기의 풍력발전기 중 59기가 영양군에 밀집해있다.현재70기정도가공사,입안중에 있다. 허가, 신청 중인 것도 77기에 달한다. 주민들은 권영택 영양군수를 강하게 규탄하고 있다. 풍력발전단지의 최종 허가권이 있는 군수가 토건업자로서 사익을 챙기기 위해 이 모든 사업을 벌였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권영택 군수는 ‘태화건설’이라는 건설업체 대표를 역임한 인물이다. 2010년에는 감사원이 권 군수와 장인이 대주주로 있는 태화건설에 총 27건의 수의계약을 몰아주기 했다는 혐의 등을 제기해 논란이 됐다.

권 군수는 ‘신재생에너지 특구 조성’을 공약 사업으로 내걸었다. 이를 통해 ‘일자리 창출 및 지역민 소득 증대’를 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풍력발전기 41기를 운영하고 있는 영양제1풍력의 직원 수는 고작 16명이다. 영양군청을 찾아가 담당 공무원에게 지역주민에게 어떤 이익이 돌아가는지 물었다. 그는 토목공사 일자리가 늘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토목공사나 기타 몇 천 억짜리 공사할 때 나오는 고용 창출도 생각해주셔야 합니다.” 이번에는 지자체 지원까지 받는 풍력개발업자들이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바를 물었다. 그는 “영양제1풍력 같은 경우는 10년 전 일이라서 정확하게 뭘 해줬다고 말씀드리긴 어렵다”고 했다. 이어서 “GS E&R 같은 경우엔 kW 당 얼마를 지원하는데 사업상 기밀이라 말씀을 못 드린다”고 설명했다.

대책위나 주민들은 풍력 발전으로 들어오는 세수는 전무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어떤 통계에도 잡히지 않아 확인할 수도 없을뿐더러, 수익이 발생한다 해도 투명하게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상철 영양군풍력반대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군수는 풍력회사들에게 넓은 면적의 산을 넘겨주고 취득세며, 등기세며 이런 걸 받아 세수라고 우긴다”며 “풍력 회사들이 마을 7~8개에 200만 원 정도 발전 기금 명목으로 낸 게 보상의 거의 대부분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마을 발전 기금 외에 풍력회사가 개인들에게 주는 금전은 불화의 씨앗이 됐다. “대기업 만행이 뭐냐면 평생 흙 파먹고, 호형호제 이웃사촌으로 지내는데 이간질을 시켜서 동네 사람끼리 고소고발하고 동네를 풍비박산 만들어 놨어요. 이렇게 가다간 살인까지 나겠다 싶어요.”

30여 명의 주민들이 22기 풍력발전기 공사를 중단시킬 수 있었던 건 삶의 터전을 지키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그동안 개발업자들은 한 번의 설명회와 선심 쓰듯 내놓는 마을발전기금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온 모양이다. 저항하는 사람들에겐 얼마간의 돈으로 입막음을 하고, 주민간의 싸움을 부추겨 그 틈에서 사업을 해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선 분명 다른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 촛불집회 한 번 나가본 적 없다는 주민은 때론 투사로, 때론 생태전문가로 삶의 방향을 튼다. 그들은 작은 바람이 모여 거대한 바람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 이 곳에서는 거대한 바람개비에 맞선 소외된 사람들의 투쟁이 무르익고 있다.[워커스 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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