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창수 철도노동자 위령제… “돈과 목숨 교환되는 현실 바꿔야”

유가족, 동료, 철도노조 조합원, 시민사회단체 모여 안전한 철도 기원

지난 6월 28일 선로 작업 중 순직한 고 김창수 철도노동자의 위령제가 열렸다. 이 자리에 모인 유가족, 철도노조 조합원,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위해 투쟁했던 고인을 기리는 한편 철도 안전을 위협하는 코레일을 규탄했다.


위령제는 19일 오전 서울 동작구 노량진역 광장에서 시작했다. 딸 김지현 씨는 “아버지의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와 유가족의 슬픔을 함께 해줘서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전했다. 또 코레일에 “직원과 시민들에게 안전한 철도, 사람이 먼저인 아름답고 행복한 코레일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며 눈물을 흘렸다.

최세영 영등포시설 조합원은 편지를 통해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외치던 형님이 저를 불러 이제 쉬고 싶다고, 너희가 노조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게 기억이 난다”며 “‘함께 갔다, 함께 오자’ 형님이 좋아하던 그 구호, 지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영면하십시오.”라고 추모사를 남겼다.


시민분향소에 시민이 남긴 추모의 글들도 소개됐다. 철도노조는 지난 3일, 노량진역 안에 시민분향소와 농성장을 설치하고 고 김창수 철도노동자의 추모를 받고 있다. 철도노조는 “개인에 대한 추모글도 많았지만 사회구조적 문제를 비판하는 글들이 눈에 띄었고 코레일에 책임을 묻는 분들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시민들은 포스트잇에 “편리함의 대가가 누군가의 희생이라면 반납하겠다” “열악한 근무환경이 몇 명의 희생자를 내고 개선될까요. 열심히 일한 대가가 죽음이라니요.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위에서 챙길 돈으로 직원 더 고용하면 회사 망하나요? 기업은 핑계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등의 추모 메시지를 남겼다.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노동안전보건위원장으로서 죄송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 부위원장은 “왜 끊임없이 소중한 동지들을 이런 자리에서 위령제를 열고 추모해야하는지, 늘 반복되는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해봤다”며 “끊임없이 추진하는 외주화, 민영화 공세, 구조조정, 인력감축 등이 구조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람의 죽음 앞에 고개 숙이지 않고 돈으로 등치시키려는 사회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지난 3일 산업안전보건의 날 정부가 4가지 대책을 발표하고 노동부 관악지청에서 작업중지구간을 확대하는 보안지시를 내린 일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강은미 정의당 부대표도 위령제에 참석해 유가족을 위로했다. 강 부대표는 “산업재해는 계획된 죽음으로, 죽음이 예정돼 있는 상황을 무시하고 돈을 벌려고 하는 기업의 문화를 바꿔야 한다”며 “그것이 고인을 위로하는 길이며, 노조에서 요구하는 사항이 통과될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강철 철도노조 위원장은 “최근 벌어진 두 건의 산재 사고에 대해 노동청에선 작업중지명령 내렸지만 철도공사 입장은 전혀 바뀌고 있지 않다”며 “여전히 개인의 실수로 치부하고, 무마하려는 게 보인다”고 비판했다. 강 위원장은 “광운대 산재 합의는 이뤘지만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드는 길은 아직 멀다”며 “이 문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조합원들과 끝까지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병점열차에서 일하는 이한주 시인의 헌시가 낭독됐고, 민중가수 임정득 씨의 추모 공연이 이어졌다. 모인 이들이 노란색 바람개비를 ‘죽지 않고 일할 권리’ 플랑 밑에 꽂으며 위령제를 마무리했다.

고 김창수 철도노동자는 만 58세로 1993년 영등포시설사업소에 입사했다. 사망하기 전까지 기찻길 안전 관리 업무를 24년간 해왔다. 철도노조에서 시설국장과 지부장을 역임한 그는 민영화 저지 투쟁으로 정직과 해고, 복직을 거치기도 했다.

한편 철도노조는 고인의 죽음 후 코레일에 인력충원과 열차 운행 중 선로보수 작업 중단을 요구하며 교섭을 벌이고 있다. 정원섭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선전국장은 “최근 연쇄적으로 두 건의 안전 사고가 일어났고, 정부도 관련 대책을 내놓은 상황에서 코레일이 유야무야 넘어가긴 어려울 것”이라며 “부족한 인원 충원이 반드시 필요하며, 외주화를 중단하고 정규직 채용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제 우리가 앞장서겠습니다.

이한주(병점열차지부)

선배님
선배님이 계신 그곳은 어떤가요?
열차가 늘어나고
철길이 길어져도
노동자는 여전히
줄이고
짤라야 할 존재인가요?

철길이 훤히 내다보일 하늘
그곳에서도 노동자는
죽어야 비로소 말을 할 수 있나요?
죽음으로 말하기 전에는
노동자의 이야기
귀 기울여 들어줄 곳 어디 없나요?

죽지않고 일할 권리를 위해
앞장서 싸워온 경험 많은 노동자마저
고꾸라뜨리는 죽음의 철길 위에
오늘 우리
여기 다시 모이는 것은
슬픔을 딛고
분노를 모아
두려움에 맞서는 일

더 이상 노동자는
죽어서 사라지는 소모품이 아니라
더 이상 노동자는
짜르고 없애야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동료가 살아야 내가 죽지않고
내가 죽지않아야 동료가 사는
노동자는 쇠사슬같은 것

우리 오늘
슬픔을 모아
두려움을 딛고
여기 다시 서는 것은
죽지않고 일하고 싶다는
철도노동자들의 막다른 선언

살아서 일하고 싶다는 절규를
들어줄 곳 어디 하나 없다면
세상을 만드는 노동자인 우리가
살아서
죽지않고 우리가 살아서
선배님이 말씀하신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천길 낭떠러지 자갈밭으로
안전표지판을 설치하러 가신 선배님
못난 우리가
지켜드리지 못 했지만
철도노동자들의 안전표지판이 되어
우리 가슴 속으로 다시 돌아오신 선배님
선배님의 발걸음이 멈춘 곳
그곳에서부터
제가 조영량이 되고
제가 김창수가 되어
이제 우리가 먼저 앞장서겠습니다

선배님
선배님이 계신 그곳에서
이제는 앞장서지 마시고
철길이 훤히 내다보일 하늘에서
이제는 못난 우리들 걱정만 하지 마시고
선배님이 하시고 싶은 것만 하세요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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