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CU알바 피살 후…여전히 편의점은 안전하지 않다

[워커스] 노동의 추억

6월 19일, 충주 KT 인터넷 설치수리기사가 고객에게 살해됐다. 가해자는 소위 ‘진상고객’이었다.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6월 28일, SK브로드밴드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당일 오전에 비가 내렸고, 감전 위험이 있는 설치수리기사는 일정변경을 요청했다. 일정변경을 안내하던 상담노동자에게 고객은 “기사가 오면 죽여 버릴 것 같다”, “누구든 오면 죽일 것 같으니 오지 말라”는 식의 발언을 수차례 반복했다. 다행히 개통을 중단해 달라는 노동조합의 요구를 원청이 받아들여 끔찍한 참변은 벌어지지 않았다.

경산CU알바노동자 살해사건부터 SK브로드밴드에서 벌어졌던 사건까지, 그릇된 분노는 항상 힘없고, 약한 이들을 향한다. 문제는 사건의 책임도 가해자 개인만을 향한다는 점이다. ‘흉악범죄’가 소비되는 과정은 언제나 비슷하다. 언론은 사건이 벌어지면 가해자의 심리 분석에 열을 올린다. 가해자에 대한 재판은 빠르게 진행되고, 가해자는 엄벌을 받는다. 피해자를 후원한다는 미담 기사가 줄을 잇고 나면, 사건은 많은 이들의 기억에서 잊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사건이 반복된다.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 또 다른 예비 피해자들은 두려움에 떨며 일터를 향한다.

[출처: 알바노조]

CU의 거짓말, 그리고 외면

경산CU알바노동자가 피살된 지 벌써 6개월이 훌쩍 넘었다. 지난 5월 26일 가해자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지만 유가족과 대책위는 아직도 본사의 책임을 묻는다. 가해자가 모든 것을 책임지는 방식으로는 온전한 의미의 ‘재발방지’가 이뤄질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BGF리테일(CU본사)은 대책위와 유가족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다분히 언론을 염두에 둔 ‘보여주기 대책’만을 내놓으며 대책위와 유가족을 실망시키고 있다.

사건 바로 다음 날인 2016년 12월 15일. 알바노조는 CU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본사 총무팀과 면담을 가졌다. 본사는 ‘유가족과 적극 협의 노력’을 하고, ‘추후 안전대책 마련 예정’이라 답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사건이 이렇게 길게 갈 줄 누구도 몰랐다.

2017년 3월 4일. 유가족과 피해자 친구들이 알바노조를 찾아왔고, 사건 발생 이후 본사로부터 단 한 번의 연락도 받지 못했음이 확인됐다. 그리고 2017년 3월 25일. 편의점 알바노동자, 알바노조를 중심으로 구성된 ‘경산CU사건해결을위한모임’은 본사의 사과 및 면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이후 회사는 갑자기 유가족에게 비공식면담을 제안하고, 경산까지 본사 직원을 보내 밀실협의를 시도했다. 본사에 신뢰를 잃은 유가족이 대책위와 함께하지 않는 대화를 거부한다고 밝히자 회사는 4월 2일, 언론을 통해 안전대책을 발표하고, 4월 4일에는 홈페이지 팝업창을 통해 일방적인 입장문을 게시했다. 유가족과는 일체의 협의도 하지 않은 입장이었으며, 유가족은 게시된 후에야 문자로 ‘입장문이 게시’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안전은 ‘시혜’가 아니야

대책위의 활동들로 사건이 다시 언론의 관심을 받자 CU본사는 부랴부랴 안전대책을 내놓는다. 실태조사, 경찰청과의 업무 협약, ‘더 안심한 편의점 만들기 위원회’ 구성. 안전가드를 설치한 안심편의점 공개, 결제 단말기(POS) 버튼으로 112 신고를 할 수 있는 ‘원터치 긴급 신고 시스템’. 상해 사고에 대한 본사 차원의 위로금 지급 제도….

대책위의 활동에 압박을 느낀 조치였다. 물론 안전가드를 설치한 편의점은 아직 전국에 1개뿐이고, 이후 구체적인 확대계획은 없다. ‘원터치 긴급 신고 시스템’은 오작동이 많아 주의를 요한다는 경고가 공지사항으로 뜰 정도로 미흡하다. 서울중앙지검 검사 출신인 대표이사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 경찰과의 업무 협약의 실효성은 밝혀진 바 없다. 철저히 대책위와 유가족을 외면한 채 안전대책을 발표하고 있는 본사. 이들의 노림수는 착시효과와 꼼수다. 본사의 ‘시혜’로 안전대책이 마련됐다는 착시효과. ‘안전할 권리’를 요구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무마시키려는 꼼수.

본사에게 ‘공동 사용주’ 책임을

2014년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세월호 참사 원인을 묻는 사람들의 분노가 높아지던 5월, 박근혜는 해양경찰을 해체하겠다고 밝혔다. 진상규명, 재발방지 대책 마련 대신 택했던 쇼였다. 아마 박근혜는 이 정도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이 누그러질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후 해양경찰은 간판만 바뀌었고, 책임자 그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CU도 마찬가지다. 본사가 언론을 등에 업고 벌이는 쇼만으로 편의점 알바노동자들은 안전해질 수 없다. 여론을 잠재우기에 급급한 대책은 또 다른 범죄를 막기에 부족하다. 안전할 권리는 노동자 스스로가 어디에 어떤 위험요소가 있는지를 판단하고, 이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요구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요구를 본사가 받아 전 점포로 확대 할 수 있을 때, 안전한 편의점은 가능하다.

외국의 경우 가맹점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을 본사에 물은 사례들이 있다. 미국의 맥도날드와 브라우닝페리스(쓰레기 폐기업체)가 그렇다. 미국 노동관계위원회는 알바노동자들이 맥도날드를 대상으로 고발한 사건 중 일부에 대해 ‘공동 사용주’인 맥도날드 본사와 가맹점 모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브라우닝페리스 사건에서는 노동관계위원회가 브라우닝페리스와 인력파견회사 노동자들의 관계를 직간접적인 통제력을 가지고 있는 ‘공동 사용주’로 인정하면서 본사인 브라우닝페리스와 인력파견회사 노동자들의 단체교섭을 인정했다. 한국의 프랜차이즈 노동자들에게도 이런 요구가 필요하다.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최소한 ‘안전’ 만큼은 본사가 책임지라고 외쳐야 한다.[워커스 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