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깔깔 희망버스 영도의 밤은 감동!

[파견미술-현장미술] 부산으로 떠나는 희망의 여정(4)


희망버스와 촛불의 물결은 어느새 한진중공업 정문에 도착했고, 사측과 사측의 요청을 받은 경찰은 정문을 철문으로 막고 공장 벽은 경찰차로 빙 둘러 쌓아놓았다. 공장 정문 앞에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가족들이 피켓을 들고 소리치며 울고 있었다. ‘당신을 통해 희망을 봅니다’ 피켓을 흔드는 모습에 촛불을 든 시민들도 함께 소리 지르며 울었다. ‘고생하셨습니다’ ‘힘내세요’ 서로에게 힘을 주며 격려했다. 멀리 제주도에서 올라온 문정현 신부의 꽃마차가 보인다. 문정현 신부와 평화바람의 꽃마차는 희망버스 탑승자들에게 연대의 밥을 준비해주기 위해 영도로 달려왔다. 파견미술팀은 미리 준비한 꼬마전구를 연결하여 꽃마차에 설치했다. 꽃마차가 반짝인다. 희망의 불빛이다.



바로 담벼락 옆으로 크레인 85호가 보인다. 밤이 깊어 어두웠지만 파견미술팀은 대형현수막을 도로에 펼쳤다. 희망버스의 도착을 김진숙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그러는 사이 귓속말이 전달되고 있었다. “공장 담 쪽으로 이동 하세요” 순식간에 도로에 있던 행진 대오는 공장 담벼락 쪽으로 이동했다. 경찰차와 담벼락사이로 이동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갇힌 공간에서 집회를 한다는 것이 못마땅했기 때문이고, 뭔가 굴복당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오듯 공장 담벼락 안쪽에서 사다리가 내려지고 사람들은 사다리를 넘어 공장 안으로 빠르게 넘어갔다. 경찰들이 사다리를 빼앗기 위해 달려왔지만 사람들의 일사분란 함을 막을 수는 없었다.

공장 안에 모인 사람들은 정문으로 달려갔다. 정문에는 방패와 안전모를 쓴 용역 100여명이 있었다. 공장으로 들어온 시민 500여명은 용역과 몸싸움 끝에 정문을 확보하게 되었다. 공장 밖에 있던 일부 시민들은 정문을 통해 공장 안으로 들어왔고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우린 김진숙이 있던 크레인 85호 아래 모일 수 있었다. 이때부터 희망버스를 준비한 친구들은 더 바빠진다. 우선 마이크를 설치해야하고, 현수막을 걸어야하고, 공연과 발언을 한다고 약속한 사람들을 불러 모아야했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누가 무엇을 하라고 하지 않아도 그냥 몸이 스스로 움직이는 듯했다. 차량 탑승자 소개 및 연대온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의 인사와 김진숙과의 인사. 김진숙의 목소리는 떨렸고 울음 섞인 목소리에 사람들도 울컥했다. “웃으면서 끝까지 투쟁!” 그녀의 목소리에 힘을 받은 우리는 그렇게 밤이 새도록 힘을 이어졌다. 음악과 춤과 노래, 자유발언 등 미리 준비된 것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무대는 어느새 가득 차고도 남을 정도로 풍요로웠다.









트위터를 통해 모인 ‘날라리 외부세력’ 공연은 공장안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에너지를 최대로 끌어 모았다. 신나게 놀다오자는 희망버스의 기조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민중가요부터 트로트까지 노래와 춤은 끝이 없었고 간간이 이어지는 발언은 눈물과 웃음을 오가며 감동을 만들었다. 새벽까지 이어지던 감동은 한진중공업 조합원의 발언과 발언 중에 터져버린 한 맺힌 통곡으로 공장안은 울음바다가 되었고 분위기는 서서히 정리되었다. 한바탕 놀고 한바탕 울고 난 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허기진 배를 채우기도 하고 지난번 파견미술팀이 왔을 때 묵었던 조합원 숙소로 이동해 잠을 청하기도 했다.

희망버스를 준비한 친구들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침을 준비해야했고, 해가 뜨면 다시 서울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했다. 공장을 떠나기 전 김진숙과 한진 조합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위한 준비가 필요했다. 파견미술팀은 밤 새 바람개비를 접었다. 그리고 다음 날 써야할 현수막을 챙기고 티셔츠와 손수건 등에 찍을 판화를 준비했다. 이런저런 준비로 아침을 맞을 즈음 경찰 쪽에서 연락이 왔다. 공장안 모든 사람을 연행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촬영일정으로 미리 공장을 나가던 배우 김여진의 연행소식으로 분위기가 심각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여서 제각각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그냥 앉아서 연행당할 수는 없고, 서울로 갈 수 없다면 끝까지 남아서 공장을 지키자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이런 삼엄한 와중에도 몇몇은 준비된 것을 진행해야 했다.




아침 9시쯤 사람들은 모여 다시 신나게 놀아보기로 했다. 파견미술팀이 바닥에 대형 현수막을 펼친다. 현수막에는 ‘사람은 꽃이다. 우리는 꽃이다. 노동자는 꽃이다’라는 글자와 그 가운데 꽃이 그려진 이윤엽의 판화가 그려져 있다. 사진가들은 85호 크레인 중간쯤에 올라가 카메라를 아래로 고정시킨다. 사람들은 친구들과 함께, 가족과 함께, 동료와 함께 멋지게 포즈를 취한다. 그것은 카메라를 향한 포즈이기도 하고 85호 크레인 그 위에 있는 김진숙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참가자들의 흔적남기기도 했다. 펼쳐진 이윤엽의 대형걸개그림에 각자의 손바닥을 찍는 퍼포먼스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크레인에 올라가 달라고 했다. 김진숙이 있는 35미터 높이까지는 아니지만 20미터 높이의 중간지점까지 오르는 것에 사람들은 주저함이 없었다. 긴 사다리 형태의 난간에 일렬로 늘어선 사람들은 아래로부터 올라가는 바람개비를 전달했고 85호 크레인이라 적힌 기둥에 바람개비를 하나둘 붙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가고 다행인지불행인지 경찰에게서 다시 전원 무사귀환을 약속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제 서울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남은 이들을 걱정하는 사람들, 이후를 약속하는 사람들, 돌아서는 발길이 무겁기만 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배웅길을 만들어 주었다. 길게 두 줄로 늘어선 노동자들은 벌써부터 눈시울이 벌겋게 변해있다. 우린 서로를 모른다. 그저 하룻밤 신나게 놀다가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눈물이 나온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에 서로가 부둥켜 운다. 한진중공업 문제가 해결되고, 김진숙이 땅으로 내려오는 그 날까지 희망버스는 계속 내려올꺼라고 힘내라고 약속을 하고 다짐을 한다. 이 땅의 모든 노동자가 함께 연대해야하는 한 희망버스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약속했다. 이 약속은 우리 모두의 약속이며 희망이었다.

멀리 85호 크레인 35미터 높이에 위치한 김진숙은 몇 시간이고 서서 손을 흔든다. 희망버스 탑승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악수를 청하듯 말이다.





덧붙이는 말

이 글은 문화연대가 발행하는 이야기 창고 <문화빵>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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