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 만들면 ‘비정규직’ 신분에서 탈출할까?

정부의 공공기관 정규직화 전환방식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

정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월 20일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 발표 이후, 공공기관들은 (파견, 용역)노사전문가협의기구 등을 구성해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식을 논의 중이다. 가장 큰 쟁점은 파견, 용역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식이다. 정부는 인건비 상승 등을 우려해 자회사 설립을 통한 우회적 정규직화 방안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간 자회사 정규직 전환을 경험했던 노동자들은 ‘또 다른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낳을 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노동계는 인천공항공사를 시작으로, 한국공항공사, 한수원, 철도, 지하철 등 큰 규모의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 전환 방식이 추진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노동부가 선정한 정규직화 전략기관(공기업) 중 자회사 방식을 논의할 가능성이 큰 5개 기관(도로공사, 철도공사, 남동발전, 한국전력, 한국마사회) 및 인천공항 간접고용 노동자만 3만 명에 달한다. 노동계 내부에서는 자회사 방식이 아닌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과거와는 다른 엄격한 요건에 따른 자회사 설립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고민도 이어지고 있다.


“엄격한 자회사 설립 요건 마련해야”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와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30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공공부문 자회사, 쟁점과 해법’ 토론회를 열었다. 발제에 나선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자회사 검토를 위해 엄격한 요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회사는 용역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간접고용에 불과하다’거나, ‘간접고용 규모가 크기 때문에 자회사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식의 흑백논리식 판단은 논쟁을 소모적으로 이끌 수 있어, 자회사 방식에 대한 일정한 논리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남우근 정책위원은 정부가 발표한 자회사 방식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이 매우 모호하다며, 정부가 추가적인 기준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현재의 자회사 방식은 원청이 법적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 구조다. 때문에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간접적 고용 방식이라는 비판도 상당하다. 남 위원은 이 같은 논란이 위장도급 혹은 불법파견으로 귀결될 수 있다며, 자회사 방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업경영상, 업무수행상 등의 독립성을 갖는 등 기존의 간접고용 법리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경영 전문성 및 효율성 확보를 위해, 사업영역별로 분사(spin-off)에 준하는 사업조정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간접고용 인력만으로 자회사를 구성하는 것이 아닌, 사업영역별로 정규직 조직까지 자회사로 소속을 옮기는 방식이다. 남 위원은 “예를 들어 인천공항의 경우 시설관리 용역업무를 자회사 형태로 전환한다고 하면, 공사의 시설본부에 소속된 정규직까지 포함해 시설관리 전문 자회사로서 운영체제를 갖추는 방식이 타당할 것”이라며 “소위 전문경영을 위한 분사화를 자회사 방식과 혼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자회사 정규직화’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노동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요구도 상당하다. 남 위원은 △임금, 복지에 있어서 적정 수준 보장 △동종 유사업무 정규직과의 차별 없는 노동조건 보장 △안정적인 고용 보장 △노동조합 활동 보장, 노동자 경영참여 등 기업 문화 조성 등을 비롯해, 단체교섭의 실질적 보장이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자회사 방식을 검토하는 핵심 이유는 ‘직무급 적용’ 때문”이라며 “이러한 인건비 우려 때문에 자회사라는 우회적 방식을 꾀하는 것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토론회에서 자회사 방식은 불가피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권구형 고용노동부 공공기관노사관계과장은 “정부의 정규직화 대책은 정규직과 용역업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들이 얽혀 있다. 국민들도 우려하고 있다”며 “이 같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충분히 고려했을 때 자회사 방식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용역회사와 같은 자회사 모델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자회사 설립 원칙이 모호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컨설팅 팀을 통해 합당한 모델을 검토하고 있다”며 “(자회사 모델을 마련한 뒤) 노동계로부터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밝혔다.

여전히 비정규직 신분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자회사 정규직’

노동계는 당사자와의 충분한 협의 없는 현재의 자회사 전환 방식은 또 다른 간접고용 양산으로 귀결 될 것이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처음에는 임금 등을 일정부분 보장하는 형태의 자회사가 설립된다 해도, 결국 인건비 절감을 꾀하며 차별이 고착화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같은 사례는 철도공사의 자회사 모델이 대표적이다. 김영준 철도노조 조직국장은 “철도청은 2005년 철도공사 전환을 앞두고 퇴직 관료의 자리 확보용으로 17개 자회사를 설립했지만, 다 망했다”며 “이후 5개 자회사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적자를 메우기 위해 용역 업무를 떼어 줬다. 현재 역사 내 매점 운영을 독점하는 코레일유통을 제외하면, 독자적인 사업영역과 수익구조를 만들지 못하고 철도공사 하청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철도 자회사 중 코레일네트웍스는 철도공사가 지급하는 인건비 전액을 용역노동자들에게 지급하지 않아, 이를 통해 연 40억 정도의 경영 흑자를 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레일관광개발 역시 KTX여승무원 용역사업을 통해 적자사업을 메우고 있다. 자회사 외주, 용역 노동자들은 철도공사 정규직과 동일 업무에 종사하고 있으면서도, 노동시간, 임금, 고용 안정 등에서 상당한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

김영준 조직국장은 “2006년 철도공사는 KTX여승무원의 자회사 전환을 추진하며 임금 인상 등 많은 처우 개선이 있을 것이라 선전했다”며 “하지만 10년이 지난 현재, 당시 자회사로 전환됐던 KTX여승무원 120명 중 30명만 남았다. 2007년 초반에는 노동조건이 좋았지만, 꾸준히 임금 동결 등을 꾀하며 노동조건이 악화 돼 왔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고용안정과 처우개선 등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 할 수 없다는 것은 공감한다”며 “하지만 자회사 구조가 노동자들의 처우를 단계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자회사 설립이 구조조정이나 인건비 부담 완화의 목적에 맞춰져 있다 보니,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변함이 없다. 지금까지의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 전환 사례들이 그렇다. 도시철도ENG나 우체국시설관리단은 구조조정의 목적으로 자회사를 설립한 탓에 극심한 고용 불안과 임금차별이 만연해 있다. 박정석 우체국시설관리단지부 지부장은 “시설관리단 용역 노동자와 우정사업본부 공무원은 똑같은 일을 해도 월급이 4배 이상 차이난다. 시설관리단 안에서도 정규직 대비 무기계약직 임금은 37%수준”이라며 “사실상 우체국시설관리단은 불법파견 용역업체에 불과하며, 원청의 경영환경에 직접 영향을 받기 때문에 매년 고용불안에도 시달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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