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 우리 어디까지 왔나

[워커스] 너와 나의 계급의식

8월 17일 취임 100일을 맞은 문재인 대통령이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국정 목표를 재천명했다. 돌아보면 대통령 100일 행적의 첫 발은 인천공항 방문이었다. 그냥 방문만 한 게 아니라 직접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 선언까지 했다. 대통령의 이 파격 행보에 뜨거운 환호와 지지가 모였다.

지금 이 순간도 공공부문 현장과 노조는 정규직 전환을 위한 각종 실무로 폭풍 속을 지나고 있다. 그러나 현장 바깥에선 이제 많이들 심드렁해지고 무덤덤해졌을 것이다. 어쩌면 지난 100일이 대통령이 내린 정규직이란 선물을 비정규직과 노조가 받아 챙기는 과정이었다고 상황판단을 다 끝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정답은 없다. 다만 요 며칠 내가 겪은 풍경을 짚어보며 나의 100일 소회도 정리해 보려 한다.

[출처: 사계]

터져 나오는 솔직한 마음들

100일 내내 지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던 인천공항지역지부 정책국장이 며칠 전 페이스북에서 허탈감을 토로했다. 모두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지만 막상 해결의 실마리가 잡혀가니 현실적 이유로 어렵지 않느냐고들 한단다. “바꾸자고 했던 ‘현실’과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현실’이 같은 것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바꿔야 할 것들이 현실이라서 바꿀 수 없다고 하면 사람이 살아갈 이유는 굳이 무엇인가.”

그 며칠 전엔 페이스북 화면을 쭉쭉 내리다가 간담이 서늘해진 일이 있었다. 평소 예수님 말씀을 옮기고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던 누군가가 학교 비정규직 교사들이 알고 보면 나태하고 무례한 사람들이며 ‘솔직히’는 사교육 종사자가 아니냐고 열이 바짝 올라 쓴 글이 눈에 걸린 것이다. 글을 쓴 사람은 학교 정규직 교사다. 너도나도 적폐를 지목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지금 분위기에서 이 사람 역시 자기 존재를 걸고 입장을 세우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이런 ‘솔직한 마음들’에 이어 정규직 전환이 ‘퍼주기’이자 ‘떼쓰기’라는 목소리도 점차 터져 나오리라.

공고한 생각의 틀

또 며칠 전 일이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무심코 올려다 본 전광판에 65세 이상 노인 무임 정책으로 적자가 심각하다며 정부의 보조금을 촉구하는 서울교통공사의 입장이 찍히고 있었다.

노조에서 교통을 담당하는 연구위원에게 상황을 묻자 돌아오는 답변이 명쾌했다. 적자가 쌓인 것도, 국고보조가 필요한 것도 맞지만 그건 돈 안 내는 노인들 때문이 아니라 재정의 70%를 운임에 의존하는 지금의 기형적 재정구조 때문이라는 얘기였다. 현장 조합원들의 생각도 같은지 묻자 그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적자 해소와 경영 개선에 대한 조합원들의 입장이 ‘운임 인상이냐 인건비 감축이냐’ 양자택일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아쉽다고 했다. 적어도 노조의 입장이라면 그간 공공부문에서 통용된 ‘무상’이나 ‘적자’라는 개념을 지적하고 또 파기해야 한다는 정답도 덧붙였다. 이 정답은 연구위원의 막연한 구상에만 그치지 않고 최근 외국의 대중교통체계 운영 현황을 참조하고 노조 개입의 시사점을 제시한 연구 결과로까지 진척됐다. 문제는 역시 노동자 당사자의 생각, 대중의 생각이다.

얼마간 운임 수입을 늘린다고 지하철 적자가 해소될 리 만무한 상황에서 그보다 노인 운임 유료화는 노인들의 교통권을 제약할 것이 빤한 정책이다. 공기업 적자가 민영화와 노조 분쇄를 위한 전가의 보도였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공공부문에 대한 생각과 대화가 교통권, 공공성, 복지를 다뤄야 한다는 게 연구위원 혼자만의 기대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미 공고해진 생각의 틀은 어떻게 바꾼단 말인가. 노조의 정답이 쌓이면 언젠가는 해결될 시간문제일까?

비정규직이라는 죄와 벌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될 노력을 게을리 한 죄로 받는 벌이란 생각은 또 어떤가. 우리 사회에 넓게 깔린 이 발상은 그 벌을 누가 내리는지가 가려졌단 점에서 수상하고 또 부당하다고 해야겠다. 그보다 비정규직은 자본이 손수 차리고 독식하는 상이라고 해야 옳다.

그러나 이 옳은 말도 모두가 정규직을 상으로 절감하는 세상 앞에서는 힘을 잃는다. 공정함에 대한 만인의 감각이 이미 그렇게 형성되고 굳어졌다. 이 탄탄한 공정함의 감각을 노조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단번에 뚫을 수 있을까?

시작은 존중과 존엄

어쩌면 우리는 딱 여기까지 왔다. 묻혀 있던 차이가 마침내 드러나고, 익숙한 생각과 감각이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존중받는 세상’을 발목 잡는 이 상황. 여기까지 온 걸음들을 인정하고, 나아가 존중하겠다면 다음의 질문들을 던지고 답하는 데까지도 우리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노력 끝에 정규직이 된 자들의 보상심리가 충족돼야 공정한 사회라면, 그 사회에서 비정규직이 감수해야 하는 처벌은 무엇일까? 적은 임금 정도면 될까, 아니면 언제 잘릴지 모를 불안감까지여야 할까? 임금은 얼마나 적고, 해고는 얼마나 쉬워야 할까? 안전 매뉴얼과 장비는 얼마나 멀어야 할까? 교대근무제는 얼마나 마구잡이여야 할까? 휴게공간은 얼마나 더럽고 좁아야 할까? 지금은 이 질문들을 던지고 답하는 존중만은 보여야 할 때다.

그 존중을 넘어 ‘솔직한 마음들’, ‘무상’ 개념, ‘공정함의 감각’을 뒤흔들 힘은 결국 자신의 존엄을 회복하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용기에서 나올 것이다. 문재인 정부 100일, 혹자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냉소하고 혹자는 대통령이 다 해준다고 비아냥거린다. 그리고 8월 17일 인천공항지역지부장이 같은 100일에 대해 <경향신문>에 적어 보낸 글을 읽었다.

“현장은 17년 만에 가장 큰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노조는 1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 손을 내밀고 있다. (...) 정규직 전환은 고용안정을 넘어 노조를 통해 불합리에 맞서면서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계기”였다. 그 계기를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워커스 3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