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4일 투쟁 끝에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동양시멘트지부 투쟁승리 보고대회 서울서 열려

“짓밟힐수록 불꽃이 이는 것, 이것을 ‘서돌’이라고 해요.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은 진짜 서돌입니다. 노동운동의 불빛이 될 것이고, 나 같은 할아버지에게도 길라잡이가 됩니다. 한창 싸우는 모습을 보고 그 기백을 알아봤고 반드시 이길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934일 동안 싸웠던 노동자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싸웠던 사람들이 모였다. 삼척에서 상경 투쟁한 지 3년.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지기도 전에 광화문 정부 청사 앞에서 대정부 투쟁에 앞장섰고,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 노동3권 쟁취’를 걸고 고공 단식농성을 감행했다. 삼표 본사 앞과 삼척을 오가며 노숙투쟁을 이어나갔다. 승리하기 위해선 더 오래 싸워야 할 줄 알았다. 비정규직 투쟁은 1,000일은 기본으로 간다고 했으니까. 10년 넘게 싸우고 있는 동지들이 있으니까. 그래서 아직 “얼떨떨하다”는 이들은 지금의 이 상황이 기쁘지만, 앞으로의 과제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28일 저녁, 서울 종로구 이마빌딩 앞에서 ‘동양시멘트지부 투쟁승리 보고대회’가 열렸다. 정규직 복직을 이뤄낸 39명을 축하하기 위해 100여 명이 넘게 모였다. 지난 23일 강원도 삼척에서 1차 승리보고대회가 열린 다음 갖는 두번째 자리였다.

이재형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노조 동양시멘트지부 지부장은 “투쟁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 덕분에 정규직으로 현장에 돌아갈 수 있게 됐다”며 “비정규직 철폐라는 미완의 승리를 돌아가서 이룰 수 있도록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900일 넘게 농성을 벌여온 이들은 지난 2015년 2월 28일, 동양시멘트가 사내하청업체의 도급계약을 해지하며 집단 해고당했다. 2014년에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2015년 2월 고용노동부로부터 동양시멘트와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에 있다는 위장도급 판정을 받은 직후였다.

2015년 3월부터 동양시멘트 삼척공장 입구에 천막농성장을 설치하고 ‘부당해고 철회, 정규직 복직 이행’을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했다. 8월엔 동양시멘트를 인수한 삼표 본사를 찾아 상경 투쟁에 나섰다. 그해 겨울은 삼표 회장의 저택이 있는 성북동에서 보냈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농성장을 지어놓고 나무를 떼면서 버텼다. 찍소리도 안 나던 동네에서 날마다 집회 신고를 하고 “우리는 더이상 동양의 노예가 아니다”라고 외쳤다.

법적으로는 계속 정규직을 확인받았지만, 삼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측은 50여억 원의 손배가압류를 걸었고, 노동자 개별에 연락해 회유를 시도했다. 올해 7월, 1년 8개월 만에 다시 교섭이 열리기 시작했고, 지부는 정규직 전환을 쟁취했다. 근속연수를 인정받았고, 사측이 제기했던 손배가압류, 가처분 신청 등도 철회하기로 했다. 이런 합의 뒤엔 노조 간부는 책임을 지고 물러나곤 했지만, 동양시멘트는 전원이 현장으로 돌아가게 됐다.

“하나의 승리가 절실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정의·평화 위원회 남재영 목사는 “비정규직 문제는 밀어도 꿈쩍 않는 철벽같았는데 그 철벽을 여러분들이 뚫었다”며 “오늘의 승리는 비정규직 철폐 투쟁에 한 획을 그은 투쟁”이라고 기뻐했다. 남 목사는 “아직도 많은 형제들이 거리잠을 싸우고 있는데 하나의 승리가 절실하다”며 “이 승리를 디딤돌로 해서 비정규직이라는 제도가 없어지는 그 날까지 투쟁에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는 “현장에 들어가서 민주노조를 사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항상 복귀하고 나서의 과정이 더 어려웠다”고 걱정했다. 권 대표는 “노조가 반의 반 토막이 됐을 때 공동투쟁단위들과 함께하면서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며 “지역과 사업장으로 돌아가서 잘 싸우고 남은 싸움을 위해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도 자리해 이들을 격려했다. 최 직무대행은 “여러분들의 투쟁은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며 “불법파견에 경종을 울리고, 연대의 힘이 얼마나 큰지 보여줬던 승리”라고 강조했다.

“현장에서 민주노조 깃발 꽂게 될 것”


‘정리해고철폐, 비정규직철폐, 노동3권쟁취 노동자민중 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위원회(공투위)’를 만들고 함께 동고동락했던 노동자들도 마이크를 잡았다.

김선영 전국자동차판매노동자연대 노동조합 위원장은 “동지들의 결기를 봤기에 현장에 돌아가서 반드시 민주노조의 깃발을 꽂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판매연대도 반드시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승리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민주노조 사수 투쟁위원회 김혜진 씨는 “현장에 돌아가도 식구로 남아있을 것”이라며 “노동 3권을 쟁취하고 노동자 해방 세상으로 나아갈 때까지 우리 모두 든든한 뒷배가 되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모인 이들은 김호철 작곡가가 연주하고 노래하는 ‘민중의 노래’ ‘찔레꽃’을 팔뚝질하며 따라 부르기도 했다. 1시간가량 진행된 승리보고 대회는 복직자들이 ‘파업가’를 부르며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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