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이야기를 찾습니다

[워커스] 노동의 추억

김씨는 오늘도 녹초가 되어 집에 들어온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김씨. 그는 오늘도 ‘실적’을 외치는 관리자와 진상고객에게 시달렸다. 욕을 먹어도 숨 한 번 돌릴 시간이 없다. 회사는 내가 고객에게 어떤 수모를 당했는지는 관심 없고, ‘실적’만을 강요한다. 한 공공기관에서는 콜센터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기 위해 재단을 만들었다고 하고, 어떤 회사는 통화 전 안내멘트를 바꾸면서 진상고객을 획기적으로 줄였다고 하는데 이 회사는 도무지 변할 기미가 안 보인다. 이전 직장에서 이직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또 옮겨야 하는지 자괴감이 든다.

퇴근 길 열어본 페이스북에서 김씨는 못 보던 페이지를 발견한다. 직장에서 겪은 부당한 사례를 카드뉴스나 동영상 등으로 소개해 주는 이 페이지는 법률가, 노동운동가들이 모여 직장에서 겪는 갑질을 상담해주고, 해결방안을 함께 찾아준다고 한다. 직종이나 업종별로 노동자들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서로의 고민을 나누기도 한다는 말이 솔깃하다.


김씨의 갑질 해결기

단체 채팅방에 들어가 각자가 겪었던 갑질을 들어보니 다들 비슷비슷하다. 원래 콜센터 업계가 다 그렇고 그런 것 아니냐는 생각과 함께 이런 문제들을 바꿔 볼 수 없을지를 고민한다. 언론에 제보를 하는 것은 어떨까. 노동부나 공정위에 제소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법률가들이 법적인 조언을 해주고, 활동가들이 다양한 문제해결 선례들을 제시한다. 방에 모인 사람들과 김씨는 ‘콜센터 갑질’ 중 몇 가지를 특정해 대응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갑질’을 제기한 지 몇 주가 지난 후. 김씨가 겪었던 갑질은 사회적으로 공론화 되었고, 그 덕에 직장 분위기도 바뀌었다. 불안하고, 두려운 시간이었지만 단체 채팅방 친구들과 법률가, 활동가가 큰 힘이 되었다. 김씨는 본인이 겪었던 이야기를 고등학교 친구인 이씨와 나눈다. 중소병원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이씨. 김씨와 이씨는 만날 때마다 직장 뒷담화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이씨는 언론에서 본 콜센터 노동자 이야기가 김씨의 이야기였냐며 본인이 겪고 있는 ‘갑질’을 토로한다. 그리고 이씨도 중소병원 간호사들이 모여 있다는 단체 채팅방 문을 두드린다.

김씨 찾기 프로젝트

김씨는 어디에나 있다. 콜센터에도 있고, 판매영업소, 이삿짐센터, 배달, 드러그스토어, 마트에도 있다. 하지만 김씨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김씨는 비정규직 조직률 2%이라는 노동조합 울타리 너머에, 좋은 일자리와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말하는 대통령의 사각지대에 있다. 김씨는 작년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을 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갑질을 폭로하는 SNS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고 있을 수도 있다. ‘대통령이 바뀌면 내 삶도 바뀌지 않을까’라는 소망을 갖고 있을지도 모를 김씨. 김씨는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은 상상 속의 인물이다.

각자의 영역에서 비정규운동을 해오던 활동가들, 법률가들이 김씨를 찾아보자고 모였다.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직장 내 갑질을 신고하고, 각자의 커뮤니티(단체 채팅방)를 구성해 집단적 문제해결을 도모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떻게 하면 김씨를 찾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김씨들이 겪는 갑질을 해결할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있다.

낯설지만 한걸음씩

회의를 하던 중 누군가 온라인 소통공간을 “스레드형 게시판(대한민국에서는 흔히 없는 게시판으로, 주로 일본의 전자 게시판 사이트에서 많이 채용하는 방식)”으로 해보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일순간 전원이 침묵하더니 저게 대체 무슨 말이냐며 일제히 포털사이트에 검색을 한다. 노동운동에서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시도. 더구나 온라인과 SNS가 중심이다 보니 낯설기만 하다. 회의준비 과정도 마찬가지다. 잘나가는 앱과 페이스북 페이지를 비교하고, 네이트 판과 알바천국을 오가며 ‘김씨’들의 이야기를 탐닉한다. 포털사이트 댓글을 분석하고, 김씨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를 상상한다.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기도 어렵고, 노동조합에 자문을 구할 수도 없는 김씨 찾기. 프로젝트를 세상에 공개하는 방식, 프로젝트를 홍보하는 방식, 김씨를 ‘조직’하는 방식까지 하나하나가 새로운 도전이다.

정부와 노동계를 포함한 각계각층에서 노조 할 권리와 노동운동 혁신을 말한다. 중요한 권리고, 소중한 조언이다. 하지만 먼저 ‘노조할 권리’가 김씨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로 들리지는 않을지 의심해 봤으면 좋겠다. 2%를 제외한 98% 비정규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이라는 문턱이 여전히 높은 것은 아닌지 고민했으면 좋겠다. 대통령의 노조조직률 제고 발언과 공정거래위원회의 갑질 근절 대책이 김씨의 일터도 바꿀 수 있을지도 걱정하면 좋겠다. ‘김씨 찾기 프로젝트’는 이러한 우려와 의심에서 출발했다. 추석연휴 이후 프로젝트를 세상에 공개하는 것이 목표다. 위에서 상상한 ‘김씨의 갑질 해결기’가 현실이 되기를 바란다.[워커스 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