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공정함을 들려줘

[워커스] 너와 나의 계급의식

9월 9일 교육부가 학교 기간제 강사들을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지침을 결정했다. 한마디로 공정하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정교사와 입직 경로가 다르니 처우도 달라야 한다는 뜻이다. 심각한 고용불안과 저임금을 해결해달란 것이지 정교사 시켜달란 게 아니라는 호소도 소용없었다.

이번 결정이 비정규직보단 임용고시생의 억울함에 손 들어준 국민여론 때문이라는 평들이 많다. 만약 여론이 그러하다면, 우리 국민들은 누군가의 고용이 불안해야 전체 사회가 공정하다고 판단하고 있단 얘기다. 고용불안에 신음하는 같은 노동자들끼리도, 민주노총 산하조직들끼리도 입장 합치가 안 됐다. 각자가 겪은 온갖 불공정에 대한 반감이 모여 이 여론이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2017년 대한민국 학교 일자리의 공정함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고용안정을 허락지 않았다는 것이다.

[출처: 김한주 기자]

이 칼럼의 이름인 ‘너와 나의 계급의식’은 ‘계급의식’이 ‘너와 나’를 묶어준다고 가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진 자의 몫이 점점 더 커지는 우리 사회에서, 계급이란 단일 전선보다 더 실감나는 게 어째 만인의 각개전투 같다. 이 전투는 당장 옆 사람보다 내가 더 편해야 하고 또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게임이기도 하다.

어차피 성공의 룰을 만드는 소수가 실제 성공도 독식하는 사회다. 그러니 ‘그들만의 리그’를 최고층으로 하는 생존게임의 위계도 굳어졌다. 어떤 이들은 단지 성공에 도전할 기회를 꿈꾸고, 어떤 이들은 돈을 벌어 얼마간 남길 기회 정도를 소망한다. 더 아래선 정규적으로 노동력을 착취당할 기회를 열망한다. 현실 목표가 이렇게 층층인 가운데, 모든 층의 불만불평은 ‘기회의 평등이 곧 공정함’이란 믿음으로 모인다.

학교 기간제 강사의 경우, 임용시험 응시 기회는 모두에게 열려있는데 왜 시험을 안 보고 정교사 대우를 탐내느냐는 게 이번 공정성 논란의 요지다. 실제 기간제 강사들이 제기하고 있는 처우 문제는 지나치게 낮은 임금, 계약 갱신 불안, 부당한 업무 지시와 비인격적 대우 등 ‘정교사 대우’를 탐냈다고 보긴 힘들다. 그러나 ‘정교사 대우’가 워낙 희소한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의 감각은 ‘기간제가 정교사 시켜 달라 한다’는 풍문에 곤두서게 마련이다.

따져보면 지금 이 상황은 이런저런 편의와 인건비 절감을 핑계로 애초 기간제 강사라는 직종과 그들의 낮은 처우를 만들어낸 교육부의 권위를 강화해 줄 따름이다. 기간제 강사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무산시킨 국민여론이 사실상 교육부에 ‘공정함의 룰’을 다 맡겨놓은 채 그 룰에 승복하겠다는 집단 선언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전권자가 주도하는 공정함의 세계

공정함을 요구하면서도 그 룰을 권위 있는 누군가가 만들고 집행해 주길 바라는 기대 심리는 인기 TV 프로 <프로듀서101>과 <쇼미더머니>에서도 종종 감지된다. 두 프로의 공정성을 책임지는 심사, 투표, 토너먼트라는 포맷에 푹 빠져 시청을 하다 보면 어느새 제작자 앞에서 펼치는 단 한 번의 무대야말로 실력을 평가받을 수 있는 가장 공정한 기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그 결과가 극적이고도 확실하다. 선발 즉시 한 사람을 위한 집중 훈련과 투자가 이뤄진다. 지금 십대들 사이에서 대세 아이돌 가수나 힙합 뮤지션이 누리는 엄청난 수입과 화려한 생활은 개인의 노력과 실력에 대한 마땅한 보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확실하기 때문에 더 공정해 보이는 장면들의 배후에는 전권을 쥔 제작자의 판단과 결정, 사업 계획이 있다. 혹독한 아이돌 ‘연습생’ 시절이나 가혹한 오디션 진행 룰만 해도 그렇다. 연예기획사와 방송제작사가 손수 만들어낸 이 관행은 일개 후보가 실력을 쌓고 검증받는 최적의 절차로 납득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쉽게 폐기되는 후보들, 전체 연예산업을 떠받치는 비정규직들의 존재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시청자들은 전권자가 주도하는 공정함의 세계에 익숙해지는 중이다.

우리는 물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공정함의 기준을 직접 만들어야 하고 그 과정에 모두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평등이 불공정해서 싫다면, 예컨대 정교사가 하는 일과 기간제 강사가 하는 일이 얼마나 다르고 그래서 처우는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를 끈질기게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 이어 최선의 제도를 만들어야 하고, 이 모든 과정을 민주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즉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데는 엄청난 사회적 에너지와 활기가 필요하다.

공정한 일자리를 만드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정교사와 기간제 강사 사이의 합리적 차이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닌 바, 지금부터 새로 기준을 세우고 내용을 채울 수 있다면 좋겠다. 당신이 모든 노동자가 자신의 역량과 책임감을 쌓고 또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면, 기간제 강사의 근속을 인정하거나 최소한 기간제를 폐기하는 방안을 검토하면 된다. 이제는 교육부가 아닌 당신의 공정함의 기준이 궁금하다.[워커스 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