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은 ‘스튜핏’하지 않다

[워커스] 아무말 큰잔치

‘스튜삣’ 소리에 들고 있던 치킨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야밤에 혼자 1+1 두 마리 치킨을 먹으면서 다음 달 월세를 걱정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통장에 얼마가 남았는지 걱정하면서, 동시에 얼마는 남았으니 치킨은 1마리보다 2마리를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고 고독한 뚱땡이의 길.

엄마는 늘 말했다.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사고 싶은 거 다 사면서 언제 집사고 언제 장가갈래?” 사실 내가 장가를 못가는 건 비단 집이 없고, 돈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설명하기 너무 구차해서 앞으로 아껴 쓰겠다고 대답했다. 결혼은 뭐 혼자서 하나.

월세방을 구하러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한 선배가 “이 김에 대출을 받아 집을 사거나 좀 큰 전세를 얻으라”고 했다. “열심히 일하면서 차근차근 갚으면 대출금은 금세 갚을 수 있다”면서. 대출금을 갚기는커녕 대출을 받기도 어려운 사람이 있다는 걸 모르는 순진하고 해맑은 사람이라고 (좋게좋게) 생각했다. 그 순간에는 좀 짜증이 났던 건 이제 지난 일이니까 뭐.

[출처: <김생민의 영수증> 갈무리]

‘스튜핏’과 ‘그레잇’이 유행이다. 사람들이 보내온 영수증으로 재무상담을 해주는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은 그 인기에 힘입어 공중파 방송까지 진출했다. 스튜핏과 그레잇이라는 유행어를 배출한 이 방송은 근래 가장 핫한 프로그램이다. 20여 년의 방송 생활 동안 근검절약과 저축, 재테크의 달인이라는 이미지를 쌓아온 김생민은 커피를 마시지 말고, 야식을 먹지 말고, 가죽점퍼를 사지 말고 그 돈을 모아 저축을 하라고 말한다. 차근차근 성실하게 내일을 대비하고 준비하는 삶을 예찬한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대신 작은 성취를 이루고 다시 조금 더 큰 목표를 설정하는 순리의 삶을 권장한다.

“우리는 ABCDEF로 F에 도착하기 위한 과정을 밟습니다. 이건 정말 중요해요. 0.01%의 친구들이 A라는 행위를 하고 F로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인생에 접근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순서를 지켜야 합니다. 마치 계단을 밟듯 차근차근 가야 우리의 열매를 지킬 수 있고 수확이 지속 가능합니다.”

김생민은 영수증을 보내오는 사연 신청자들에게 조금씩 노력하면 목표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다고 격려한다. 그런 노력을 하는 사람들을 칭찬한다. 눈앞의 작은 목표를 실천하면서 큰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는 설득이다. 사람들은 그런 김생민의 격려와 위로, 위트있는 설득에 열광한다. 실제로 그는 길었던 무명의 시절을 딛고 타워팰리스를 산, 살아있는 재테크의 증거물 아닌가. SNS에는 김생민의 격려와 질타에 감응한 이들의 고백이 수두룩하다. 고독한 뚱땡이의 길을 걷고 있던 나도 들고 있던 4개의 닭다리를 보면서 ‘나 혼자 먹는 야식에 왜 닭다리가 4개나 필요한가’라고 자괴해 버렸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노력하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걸까? 닭다리 4개를 포기하면 난 월세 걱정 없이 살 수 있을까? 이번 겨울을 조금만 더 춥게 지내면 난 장가를 갈 수 있나. 고양이 치약을 사지 않으면 난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 그건 ‘뽕’이잖아

이 방송이 유행한 후 한 언론은 <김생민의 ‘절실함’이 2017년에 빛을 발한 이유>라는 기사를 실었다. 기사는 “어쩌면 ‘이번 생은 망했다’는 비관이 팽배한 시대가 가고, 성실이 미덕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돌아오는 걸지도 모른다”고 분석했다. 헬조선, 비정규직, 탈조선의 정서가 지배하던 시대에서 “바닥까지 떨어진 노력의 가치를 끌어올리고, 땀과 인내는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는 희망의 시대로 변모하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김생민 현상은 그 전조와도 같다는 것. 희망과 노력, 땀과 인내라는 말은 참 아름답다. 근면하고 성실하고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고 힘을 내고. 아침이면 택시 대신 지하철을 타기 위해 1시간을 일찍 일어나고. 음. 어디서 많이 보던 얘기인 것 같은데.

사실 어쩌면 김생민의 ‘절실한 노력론’은 그냥 다시 새마을운동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얘기와도 크게 다르지 않고, 요즘 것들은 노력을 안 한다는 꼰대들의 얘기와도 맥이 통한다. 다만 이젠 포기마저 지긋지긋한 이들의 자기 위안이랄까. 일종의 ‘뽕’이다.

유수의 명문대를 나와서 굴지의 대기업에서 그럴듯한 연봉을 받는 한 친구의 얘기를 빌어보자. 대학을 졸업한 27살에 취업해 8년 동안 열심히 적금한 그 친구는 현재 통장에 4천만 원의 잔고가 있다고 했다. 4천만 원에 가까운 연봉으로 시작해 지금은 5천만 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다는 그는 술도 잘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차도 없고, 집도 없다. 가끔 맥주 두 캔을 사 들고 야구장에 (심지어 가장 싼 외야석에 앉는다) 가는 게 취미의 전부라는 친구는 ‘마흔 전에 자기 명의의 집을 사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친구무리 중 가장 먼저 취업에 성공한 그가 ‘집을 사겠다’는 목표를 처음 얘기했을 때 우리는 모두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한 달에 200만 원을 저축하면 1년이면 2,500만 원이니까 10년만 모으면 3억 원, 대출을 조금 끼면 그래도 서울 변두리에 작은 아파트 하나는 살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8년이 지나 아등바등 4천만 원을 모은 그 친구는 여전히 집을 사는 게 목표하고 말하지만 우리는 아무도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김생민도 김생민의 방송을 듣는 이들도 커피값을 아끼고 택시비를 아껴서 집을 살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을 테다. 그건 그저 위로고 격려다. 그보다는 유희거나 자조일 수도 있고, 희망이나 긍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뽕’에 가까울 수도 있다. 이 외통수 같은 세상을 견뎌내기 위한 작은 마취제. 대마초도 못 피우게 하는 나라에서 이런 ‘뽕’은 참 잘도 권장한다.

# 우리 보통의 삶

재테크 노하우 전수라는 ‘뽕’의 기능 말고 사실 김생민이 진행하는 방송의 의미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보통’이 무엇인지 던지는 질문의 기능이다. 김생민은 방송마다 “깊이 생각해보라”고 한다. 커피에 대해, 옷에 대해, 다이어트에 대해, 고양이 치약에 대해, 감자칩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라고 한다. 그것을 소비하는 것이 당신을 정말 행복하게 해주는지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김생민은 그런 사유를 ‘그런 소비는 당신의 말초신경을 잠시 자극해 쾌락을 줄 뿐 실은 행복이 아니’ 라는 결론으로 이끈다. 커피 마실 돈을 아껴서 저축하면 월세에서 반전세로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다고, 당장의 소비를 참으면 내일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건 삶의 행복을 ‘집을 사고 돈을 모아 결혼하고 노후를 풍족하게 보내는 것’이라 규정한 전제에서 가능하다. “언제 집사고 언제 결혼할래”라고 묻는 우리 엄마가 제시한 삶의 ‘정상성’과 같은 전제다. 이런 삶의 전제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서민이 그리는 삶의 궤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기업에 다니며 10년을 숨만 쉬며 돈을 모아도 5천만 원을 모으기 힘든 세상에서, 그 고연봉의 대기업에 들어가는 게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세상에서, 5천만 원으론 집을 사기는커녕 전셋값도 안 되는 세상에서 그런 삶의 지향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삶에서 오늘의 닭다리를 포기해 20년 후에도 있을지 없을지 모를 내 집 마련의 자금을 모으는 건 무슨 의미일까. 김생민에게 되묻고 싶다. 희망, 내 집 마련, 미래, 저축 같은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사실 우리 보통의 삶은 모순된 욕망의 연속이다. 오늘의 닭다리를 외면하기 어렵지만 10년 후의 미래를 포기하기도 어렵다. YOLO가 유행하지만 그건 실은 되는대로 막 살라는 말에 가깝다. YOLO도 저축도 어려운 삶도 있다. 난 지난 《워커스》 기획에서 대출을 받기 위해 사채시장과 장기판매 루트까지 알아봐야 하는 삶에 대해 쓰기도 했다. 다양한 삶의 양태는 다양한 욕망, 다양한 결핍, 다양한 행복을 의미한다. 그 욕망들은 모순되기도 하고 허황돼 보이기도, 때론 안타까울 정도로 절실해보이기도 한다. 그 모든 것들에 어떻게 스튜핏과 그레잇을 외칠 수 있을까.

20년간 스타가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차근차근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 근면과 성실을 무기삼아 경제적 기반을 마련한 김생민의 삶을 존경하고 또 응원한다. 그가 주는 위로와 격려로 내 얇은 지갑의 허전함을 잠시 달래기도 한다. 하지만 어차피 먹지도 못할 1+1의 치킨과 쓸데없을지 모르지만 큰맘 먹고 구입한 만년필이 주는 위로와 격려가 있음도 사실이다. 원래 야식과 선물의 의미는 길티플래져인 걸.

희망 같은 불온한 말로 서로를, 자신을 속이지 않아도 괜찮다. 미래 같은 불확실한 것 대신에 오늘의 즐거움을 따라도 괜찮다. 더 나은 내일의 삶을 위해 오늘을 견뎌내도 좋다. 당신의 삶을 향해 “그레잇”이라 외치겠다. 그러니 갈팡질팡 아직 삶의 궤적을 정하지 못한 보통의 우리, 모순된 삶에 서로 “스튜핏”을 외치지도 말자. 우리의 삶은 고작 그런 것으로 어리석어지는 게 아니다.[워커스 3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