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망중립성 폐기, 기울어지는 인터넷 운동장

[기고] 망중립성 쟁점과 역사 그리고 한국에 미칠 영향

지난 12월 14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망중립성 폐지를 의결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유무선 망사업자를 통신법 상 타이틀 I(정보서비스 사업자)로 재분류하는 ‘인터넷 자유 회복(Restoring Internet Freedom)’ 명령을 통과시켰다. 정보서비스 사업자(information service)는 우리로 치자면 네이버와 같은 부가통신사업자로 통신 당국의 강한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FCC가 망중립성 규제를 할 근거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미국 활동가들이 망중립성 폐지를 반대하며 시위하고 있다. [출처: Democracy Now]

왜 망중립성이 중요한가

망중립성이란 KT나 SKT와 같은 망사업자가 인터넷에 연결된 단말기, 콘텐츠, 서비스를 차단하거나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망사업자는 자신의 망을 통해 흐르는 트래픽을 안전하게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전달해주는 역할만 하면 된다. 그런데, 망사업자가 콘텐츠나 서비스를 차단, 차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몇 년 전에 국내 통신사들은 저가 요금제에서 보이스톡이나 스카이프와 같은 무선인터넷전화(mVoIP)의 이용을 제한한 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이용자들이 무선인터넷전화를 이용해 통화하면 자신들의 통화료 수입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망중립성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망사업자(유무선 인터넷서비스제공자)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콘텐츠나 서비스를 차단하거나, 자기 계열사의 서비스는 더 빨리 전송하는 것과 같이 차별함으로써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혹은 자신에게 추가적인 비용을 내는 업체의 콘텐츠나 서비스를 더 빠르게 전송해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은 사라지고, 망사업자의 계열사나 이들에게 추가 비용을 낼 수 있는 거대 자본이 자신의 시장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쉽게 얘기하자면, 돈을 더 내면 빠른 길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기기로,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본적 자유와 권리와 침해받게 된다.

아이폰 도입 이전의 국내 통신 시장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아이폰 도입 이전에 모바일로 인터넷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KT나 SKT와 같은 통신사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마치 포털에서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콘텐츠 사업자들이 광고 경쟁을 하는 것처럼, 이 당시에는 통신사 ‘관문’의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콘텐츠/서비스 사업자들은 통신사에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이용자 역시 모바일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비싼 통신비를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당시에 모바일 인터넷 이용 비율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국내 통신사들이 통제할 수 없는) 아이폰 도입 이후 상황은 반전됐다. 이용자들은 통신사 관문을 통하지 않고 와이파이를 통해서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되었으며, 앱스토어를 통해 수많은 콘텐츠와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스마트폰 경쟁이 시작되었고, 모바일 통신 요금도 하락했다.

즉, 망중립성은 인터넷에서 어떠한 콘텐츠나 서비스를 접근하고, 이용하고, 개발하고, 제공할 것인지에 대해 망사업자에게 통제권을 줄 것인지, 아니면 인터넷에 누구나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지의 문제이다. (물론 국내적으로는 네이버, 세계적으로는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 사업자의 독점력 역시 문제가 되면서 ‘플랫폼 중립성’ 역시 논란이 되고 있지만, 이는 망중립성과 별개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인터넷을 보는 관점과도 관련된다. 즉, 망중립성 옹호 입장에서는 인터넷을 공적 규제가 필요한 기반 시설로 보는 반면, 반대 입장은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통신사의 상품일 뿐이라고 본다. 그래서 망중립성 규제가 통신망의 혁신과 투자를 저해한다고 보는 것이다.

미국의 망중립성 논란의 역사

이번 FCC의 결정은 이미 올해 1월 트럼프 정부에서 망중립성 반대론자인 아짓 파이(Ajit Pai)를 FCC 위원장으로 임명할 때부터 예견됐다. 이번 결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망중립성을 둘러싼 미국의 역사적인 맥락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망중립성 논란은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제기됐다. 그리고 망중립성 규제가 필요하다는 시민사회와 인터넷 업계의 요구를 수용하여, FCC는 2010년에 ‘오픈 인터넷 규칙’을 제정한 바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미국 통신업체인 버라이즌이 FCC가 그러한 규제를 할 권한이 없다는 소송을 제기했고, 2014년 4월 항소법원은 버라이즌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이는 FCC의 오픈 인터넷 규칙이 잘못된 것이라는 결정이 아니라, FCC가 당시 ‘정보 서비스’ 사업자인 유무선 망사업자에게 그러한 규제를 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FCC는 지난 2015년 2월 26일, 다시 ‘오픈 인터넷 규칙’을 통과시켰는데, 그 핵심은 유무선 망사업자를 미국 통신법 상 ‘통신 서비스(telecommunication service, 타이틀 II)’로 재분류하여, FCC가 망중립성 규제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FCC의 이번 결정은 유무선 망사업자를 다시 타이틀 I인 정보서비스 사업자로 재분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오바마 정부에서 3대 2로 통과된 오픈 인터넷 규칙이 공화당 정권에서 다시 3대2로 폐기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미국 민주당, 구글 등 인터넷서비스 업계, 시민사회는 망중립성 옹호 입장을, 그리고 공화당과 버라이즌 등 통신사는 망중립성 반대 입장을 취해왔다.

이번 결정으로 미국에서의 망중립성 논란이 끝났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FCC의 투표 몇 시간 후에 뉴욕주 법무장관은 이 결정에 항소하겠다고 선언했고, 다른 많은 주들도 이에 동참할 예정이다. 법원의 판결에 따라 FCC의 결정이 무효화될 수도 있고, 향후 정권 교체 혹은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의회의 망중립성 법안 통과 여부에 따라 망중립성 정책은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의 영향

미국의 국제적인 영향력, 특히 인터넷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이 지대하기 때문에 FCC의 이번 결정이 국제적인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이번 결정은 세계적인 흐름도 아니고, 각 국의 정책은 각 국가가 결정하는 것인 만큼 당장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이다. 유럽에서는 지난 2015년 10월 유럽의회가 망중립성 내용을 포함한 통신단일시장(TSM) 규정을 통과시킨 바 있으며, 2016년 8월에는 유럽연합의 통신규제기관인 BEREC이 ‘국내 규제기관에 의한 유럽 망중립성 규칙의 이행을 위한 가이드라인(BEREC Guidelines on the Implementation by National Regulators of European Net Neutrality Rules)’을 발표한 바 있다.

한국은 미국과 규제체제가 다르다. 미국과 달리 처음부터 망사업자는 ‘기간통신사업자’로서 통신당국의 규제권한이 강하다. 전기통신사업법에 망중립성과 관련한 직접적인 조항은 없지만, 불합리한 차별금지와 이용자 이익 저해행위를 규제할 수 있기 때문에 방송통신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의지가 있다면 망중립성 규제를 시행할 수 있다. 또한 문재인 정부는 망중립성 지지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다만, 앞서 언급했던 무선인터넷전화 논란에서 볼 수 있다시피, 예전부터 국내 통신당국의 망중립성에 대한 입장은 여전히 모호하고 유동적이다. 여전히 국내에서도 망중립성을 둘러싼 논란, 특히 최근에는 특정한 서비스나 애플리케이션에 대해서만 비용을 면제해주는 소위 ‘제로 레이팅(zero rating)’을 둘러싼 망중립성 위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오히려 미국의 이번 결정이 아니라, 망중립성이 우리의 인터넷 이용과 인터넷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국내적인 연구나 토론이 부족하다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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