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시위: 배제된 세계의 이반

[워커스 인터] 1979년 혁명 후 체제의 운명은

2017년 12월 28일 이란 제2의 도시 마슈하드에서 시작돼 열흘 정도 지속된 반정부 시위가 있었다. 예상보다 일찍 종결됐고 후반부에는 친정부 시위도 등장해 질서 회복으로 끝나는 고전적인 패턴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중동 또는 아랍 세계 시민들의 실천은 주로 거리 시위다. 그리고 이번처럼 ‘이제 무너지겠구나’라는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주시한다. 실제 무너진 경우도 있었다. 2011년 ‘아랍의 봄’이라고 불리었던 사건이 그 경우다. 그리고 이번 이란의 시위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때를 떠올렸을 것이다. 외부세계에서 이 사건에 대해 갖는 관심은 이란사회에 대한 평소 관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일 게다. 이란정권은 무너질까? 민주주의와 병존하는 이란의 신정국가는 세속화될까? 대중의 관심과 연관지어 이번 시위의 다음 두 가지 측면을 살펴본다. 하나는 주체의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체제의 변화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출처: Democracy Now]

충족되지 않은 기대

시민들은 심각한 경제상황과 부패문제를 거론하며 거리에서 시위를 벌였다. 2009년 시위1) 이후 최대 규모였으며 사망 25명이라는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 당연히 2011년 아랍의 봄을 떠올리게 된다. 튀니지에서 한 청년의 죽음으로 시작된 저항운동이 아랍 전역으로 확대됐고 몇몇 나라에서 불가능할 것 같았던 정권의 전복이 이루어졌다. 아랍의 봄과 이번 이란의 시위는 유사한 점이 많다. 예를 들어 아랍의 봄이 전개된 배경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사회적 결과에 대한 반발, 권력 독점에 대한 반발, 지배체제에 대한 총체적 거부가 거론되는데 이란에서도 이러한 점을 찾아볼 수 있다.

이란 시위에 대한 설명들을 보면 국민의 사회경제적인 여건의 악화가 주된 배경으로 거론됐다. 2015년 이란이 역사적인 핵 합의를 이루었지만 그 반대급부로 기대했던 경제상황의 개선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에 분노가 폭발했다. 실제 2017년 5월 재선에 성공한 하산 로하니 현 대통령은 이 합의의 핵심 인물이었고 선거유세 당시 이 합의로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 장담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연말에 정부가 발표한 2018년 예산안이 보다 직접적으로 분노를 유발했다. 저소득층 보조금 삭감, 기름값 인상, 곡물가격 인상 등 새로운 긴축안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배제된 세계’의 정치적 부상

2009년 시위와 비교해보면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먼저 2009년 시위가 ‘녹색운동’이 주도한 오로지 정치적인 성격의 시위였다면 이번 시위는 사회경제적인 측면이 주된 동기였다. 참여한 사람들의 유형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2009년 시위, 1999년 학생들의 시위, 최근 몇 년간 운송, 자동차 분야에서 전개된 노동운동 모두 특정 부문이나 집단에 국한된 사건이었다. 이와 달리 이번 시위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다양한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참여하였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최근 이란의 어려운 경제상황이 다수에게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번 시위는 이러한 하층민이나 배제된 집단이 만든 것이다. ‘빈민층이 주도한 가장 단순한 경제적인 성격의 시위’2)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이란사회에서 전개된 시위는 모두 혁명 이후 형성된 새로운 중산층이 주도한 것이었다. 이들은 과거 유럽의 신흥부르주아지와 유사하게 자신들의 역량에 걸맞은 대우를 사회에 요구했다. 대선은 신 중산층의 요구가 결집되는 장이었고 그래서 이란사회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항상 개혁파 대 보수파 간의 대립구도가 형성됐고 쟁점 역시 주로 정치적인 성격의 것이었다.3)

그런데 2017년 12월 말에 시작된 시위의 주체는 아무것도 잃을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 최소한의 삶의 수준도 유지할 수 없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선 것이다. 반면에 2009년 당시 시위의 주역들은 이번 시위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이들은 여전히 현 대통령이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할 거라고 믿었다. 사회적으로 보잘 것 없는 존재가 전면에 등장하는 사례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1980년대 튀니지의 빵 폭동도 이번 시위와 유사하고, 중동 전역에서 이슬람주의의 부상을 이끈 대중들 역시 지배세력이 거들떠보지 않았던 평범하고 비참한 처지의 사람들이었다. 아랍의 봄 역시 도시빈민이 주역이었다. 결국 분배가 관건이다. 하층민과
중산층 일부가 재정적으로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기업이나 기득권층이 기존의 혜택을 그대로 받는 상황을 이해시키기는 어려운 것이다. 기득권의 저항을 극복하는 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이란의 개혁세력이 당면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성공하기 못하면 주기적인 아래로부터의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출처: Democracy Now]

체제에 대한 거부

북한에 대해서처럼 우리는 이란사회가 잘 통합되어 있는지 관심이 있다. 독립을 상징하는 이란 혁명에 기반을 둔 체제는 외세의 압력이라는 ‘우호적인’ 조건 속에서 정당성을 유지해왔다. 현 정권 역시 일견 그렇게 보인다. 게다가 로하니는 아랍의 봄으로 물러난 튀니지의 벤 알리나 이집트의 무바라크가 아니다. 장기집권을 한 권위주의적인 지도자가 아니라 선거에서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아 권좌에 오른 인물이다. 그래서 이번 시위는 의외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로하니가 퇴진요구를 받고 심지어 독재자로 불린 것은 쉽게 이해되는 대목이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예상된 것이기도 하다. 경제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정부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일반적으로 혁명이 그렇듯 반발은 객관적인 상황 자체만큼이나 기대가 충족되지 않은 것에 대한 박탈감이 계기가 된다. 이 점에서 이란 시위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번 시위는 이전의 것과 달리 체제 자체를 거부하는 반체제 운동의 성격을 명시적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시위대는 모든 권력에 반대하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슬람 성직자들이 지배하는 체제를 전복시키자는 요구도 나왔다. ‘독재자에게 죽음을’, ‘하메네이에게 죽음을’, ‘이슬람공화국을 원치 않는다’와 같은 구호를 연호했다. 구호와 달리 체제 전복에 대한 의지가 있다기 보다는 정부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는 것이 시위의 목적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그렇다고 로하니가 대국민연설에서 한 말처럼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할 수는 없다. 국가와 사회의 관계에서 이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시위는 국가와 사회 간의 괴리가 어느 정도인지 잘 보여주었다. 국가와 사회, 즉 종교세력, 정권, 지배층, 혁명 수비대와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기업 등과 이번 시위에 나선 배제된 민중들 간의 괴리가 상당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이란의 이슬람 중심 체제가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볼 수 있다. ‘하메네이에게 죽음을’이라는 과격한 구호가 단지 분노에서 나온 우발적인 것을 넘어서 오랜 경험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40년 신정국가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측면이 있는 것이다. 신정국가가 종교세력이나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견딜만 하거나 또는 유리할 수 있지만 하층민들로서는 종교적인 메시지나 애국주의적인 담론 이외에는 실질적으로 기대할 것이 없는 체제임이 드러난 것일 수 있다. 직접적으로 이해관계가 충돌하기도 한다. 소수의 양질의 일자리를 이슬람공화국의 지배세력들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란 청년들의 전망은 암울하기만 한 것이다. 40년의 세월이 이란 사회를 기득권자들의 전유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양보하지 않는 경화된 지배세력이 있는 한 개혁적인 경제정책이나 시민들의 노력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은 것이 될 수 있다.

이번 시위가 겨냥한 것이 로하니 정권과 경제정책임에도 불구하고 로하니 대통령은 어느 정도 시위대를 인정하고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 반면,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외부세력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매국적인 세력이라면서 강경한 입장을 표명한 것도 이러한 계급적 측면과 연관성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슬람 체제다. 당초 평등을 주창하며 시작된 ‘79년 체제’가 반민중적인 체제로 고착화된 것이다. 대다수 민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이슬람주의와 이슬람 정권이 역설적으로 일부 집단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것은 이미 중동과 북아프리카 여러 지역의 사례에서 입증된 것이다. 체제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허황된 것은 아니다. 즉 아직은 금기시되어있는 하메네이의 후계자 승계문제, 이후 이란사회의 전망이 향후 주요 쟁점이 될 것이다. 1979년 혁명 이후 유지되고 있는 이란 체제가 앞으로 어떤 운명을 겪을지가 관심거리인 것이다.[워커스 39호]


[각주]
1) 2009년 6월 12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의 당선에 반발하여 일어난 시위로 당시 70여 명의 시위대가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2) 둔야, 2018, 「최근 일어난 이란의 민중시위: 원인과 배경」, 『사회주의자』, 2018년 1월 12일.
3) http://www.irisfrance.org/105363-la-societeiranienne-ne-peut-plus-accepterlimmobilisme/ 2018년 1월 23일 검색.
덧붙이는 말

엄한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문화사회론』, 『이슬람주의』, 『프랑스의 이민문제』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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