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진상규명의 ‘골든타임’...지방선거 전 개정안 통과 될까?

해방 이후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침해, 조사대상 시기 놓고 여야 합의 지연

과거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 진상규명 등 과거사 문제 해결은 문재인 정부의 주요 공약 중 하나다. 이를 위해 정부는 노무현 정부 당시 가동되다 이명박 정부 들어 중단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원회)를 재가동해 미해결된 과거사 사건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사정리기본법을 개정해 위원회 활동 기간을 연장해야만 한다.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진실화해위원회가 미처 규명하지 못한 사건들이 많았고, 위원회 활동에 대한 홍보 부족 등으로 인해 진정조차 되지 못한 사건들이 많았다. 이 때문에 뒤늦게 국가폭력 피해를 인식한 형제복지원·선감학원 등 국가에 의한 시설수용 피해자, 미규명 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사건 유가족 등은 진실화해위원회의 재가동을 간절히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시작된 국회의 법안 논의는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출처: 비마이너]

‘과거사 통합법’으로 모아진 진상규명 논의...‘진실규명 범위’ 둘러싸고 공회전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애초에 개별 특별법 제정을 통한 진상규명을 요구해 왔다. 이에 진선미 의원은 19대 국회에서 형제복지원특별법을 발의했으며, 20대 국회 들어서도 이를 자신의 1호 대표발의 법안으로 다시 올렸다. 하지만 정부가 포괄적 과거사 문제 해결을 내걸면서, 국회 내 법안 논의 또한 과거사법 개정으로 방향이 정리됐고, 피해자들도 과거사법 개정에 기대를 걸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에서는 지난해 8월부터 개정안 법안심사를 시작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소병훈·진선미 의원,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 자유한국당 최연혜 의원, 정의당 추혜선 의원이 각각 과거사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5개 개정안은 공통적으로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 시기 연장 △기존법에서 ‘권위주의 통치시기’라고 모호하게 규정되어 있던 진실규명의 범위를 명확히 규정 △과거사재단의 설립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에서는 5·18광주민주화항쟁, 제주4·3사건 등 이미 개별 특별법이 존재하는 사건의 경우 별도로 논의하고, 그 외 사건의 경우 포괄적으로 과거사법 하에서 논의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이에 장준하사건특별법 제정안,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사건기본법 제정안이 과거사법 개정안과 함께 병합심사 중이다.

현재 여야 정당 중 어느 누구도 과거사법 개정에 명시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정당은 없다. 그러나 지난 2월 28일까지 총 다섯 차례에 걸쳐 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가 진행됐음에도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조항은 제2조 ‘진실규명의 범위’이다.

기존 법에서는 진실규명의 범위를 ①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 ②일제강점기 이후 해외동포사 ③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④해방이후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공권력에 의한 사망·상해·실종 및 인권침해 사건 ⑤해방이후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대한민국 적대세력에 의한 테러·인권유린 사건 ⑥위원회가 이 법의 목적 달성을 위해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사건과 해방 이후 사건을 묶어서 하나로 갈 것인가, 두 번째는 ④, ⑤항에 담겨 있는 ‘권위주의 통치시’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첫 번째 쟁점에 대해서는 일제강점기 사건의 경우 해방 이후 사건과 비교해 피해의 성격 및 발생지의 특수성이 있기에 따로 분리해 별도의 법으로 처리하는 쪽으로 정리되었다. 그러나 ‘권위주의 통치시’의 범위를 규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기존 법에서 ‘권위주의 통치시’가 정확히 언제까지인지 규정하지 않음에 따라, 기존 위원회 내에서 해석상의 이견이 있었고 위원회의 결정 사항도 일관성이 없었다. 따라서 개정법에서는 정확한 날짜를 명기하는 게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를 진선미 의원안에서는 ‘1993년 2월 24일까지’(즉, 노태우 정부 시기까지)로 규정한 반면, 권은희 의원안에서는 ‘이 법 시행일까지’로 규정하는 등 각각 다르게 제안했다. 만약 범위를 ‘이 법 시행일까지’로 넓혀 놓으면 최근 정부에 의해 일어난 인권침해 사건까지 조사할 수 있는 긍정적 면이 있지만, ‘과거사 규명’이라는 이 법의 취지를 벗어난다는 딜레마도 존재한다.

자유한국당의 ‘직무유기’

이에 대해 여당 측은 특정한 안을 고집하지는 않겠다는 태도다. 중요한 건 개정안을 통과시켜 위원회가 하루 빨리 가동되도록 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28일 열린 법안심사소위에서 “우리는 (정부가 내놓는) 수정안 자체를, 전체를 수용한다는 입장”이라며 “이것(과거사법 개정안)이 1년이 넘은 법안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일단 정부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근거라도 마련해 주자 해서 정부에 수정안을 만들도록 맡긴 것”이라 발언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측은 이때까지 당 차원의 합의된 안을 들고 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다섯 차례에 걸친 법안심사소위 회의록을 검토해보면 자유한국당 측 입장은 일관되게 ‘아직까지 입장 정리를 못했다’는 것 뿐이다. 행안위 자유한국당 측 간사 의원인 홍철호 의원은 “저는 양심상 이 법안에 대해서는 의견이 없습니다. 금방 이렇게 들어 가지고 어떤 판단을 한다는 것은 내가 신도 아니고요. 각 당 전문위원들이 우리 위원회 전문위원실과 좀 더 압축해서 (...) 소통해서 다시 한 번 (논의를) 했으면 좋겠습니다.”(2017년 9월 20일)이라고 발언했지만, 5개월이 지난 올해 2월 20일 회의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것은 지금 사실 우리 원내에서 정확한 팩트에 대해서 이해가 안 돼 있어요.”라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인 2월 28일 회의에서도 “죄송하게도 그 부분을 우리가 정리를 지금 못 해 줘 가지고 (...) 그래서 하여튼 지금 그것을 정리를 못 했어요. 오늘 내놔라 그러는 말씀에 사실 제가 궁색합니다.”라며 논의를 또 다시 미룰 것을 제안했다.

이와 관련해 홍철호 의원실 관계자는 “(과거사법 관련 민원을 제기하는 유족 단체 등) 관련자 및 정부 부처별로 입장이 달라 조정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정부에서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는다면 우리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공을 정부 측에 돌렸다.

그러나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운동을 해 온 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은 유족 단체들의 입장이 서로 다르다는 홍 의원 측 주장을 일축했다. 안 사무국장은 “우리가 요구해 온 최소치는 위원회가 다시금 가동되게만 해달라는 것이었다. 유족 단체의 입장이 갈린다는 것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발언일 뿐”이라며 “현재 개정안은 의원 발의안으로 올라와 있는데 정부가 대안을 내놓으라는 것은 무책임하다. 의원안이니 만큼 여야가 합의해서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논의가 진전되지 않자 법안소위 위원장인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은 진실규명 범위 중 여야 간 이견이 없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만을 이 법에 제한적으로 담아 우선적으로 통과시키고, 나머지 쟁점에 대해서는 위원회에서 추후 논의하자는 제안을 한 상태다. 궁여지책이긴 하지만, 이는 해방 이후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 피해자 입장에서는 또 다시 배제되는 결과여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이 권은희 의원과 면담을 마치고 농성장으로 돌아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 [출처: 비마이너]

이에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모임 회원들은 27일 오후 2시경 권은희 의원실을 찾아가 진실규명 범위 축소 없는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한종선 피해생존자 모임 대표는 이 자리에서 “의원 간 합의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합의가 되도록 정치적으로 압박하는 게 위원장의 역할”이라고 주장하며, 권 의원의 결단을 촉구했다.

행안위 법안심사소위는 28일 오전 10시에 다시 열릴 예정이다. 4월 임시국회가 예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시기를 놓치면 정국은 지방선거 국면으로 급격히 쏠려 정상적인 논의를 기대하기 어렵다. 5월에는 국회 하반기 원구성을 새롭게 짜기 때문에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갈 우려도 있다. 사실상 28일 열리는 행안위 법안심사소위가 과거사법 개정안 처리의 골든타임인 셈이다.

이때를 놓치면 공권력에 의해 인권을 유린당한 시설수용 피해자,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유족들의 원한을 풀을 길을 찾기는 더욱 어려워 질 것이다. 국회는 과연 그들의 호소에 어떤 응답을 할 것인가.[기사제휴=비마이너]
덧붙이는 말

이 기사는 참세상 제휴 언론 비마이너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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