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다시 시작된 잔혹한 의자놀이

[워커스 르포]3차 면접 10명 복직, 남은 해고자 120명

2018년 3월 17일 쌍용자동차 인재개발원. 면접관이 김 씨에게 물었다. “만약 늦잠을 자서 출근이 늦어졌어요. 관리자가 늦은 김에 출근하지 말라고 한다면, 출근하시겠습니까?” 또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공장 노동자들이 (쌍용자동차지부에 대한) 반대가 심한데 어떤 자세로 일하겠습니까?”

[출처: 김한주 기자]


면접자는 두 명, 의자는 하나

또 다시 의자놀이가 시작됐다. 면접은 2배수. 둘 중 하나는 떨어진다. 면접관은 김 씨 옆 동료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어떤 다른 대답을 하느냐에 면접 결과가 갈린다. 회사가 원하는 대답은 정해져 있다. 온 힘을 다 해 회사에 대한 충성을 증명하는 것. 김 씨는 2017년 4월, 2차 면접 당시를 떠올렸다. 한 동료는 “저는 50kg 넘는 자재 몇 개를 들 수 있습니다”라고, 또 다른 동료는 “그동안 생계를 포기하고 노부모를 모셔왔습니다. 이제는 정말 공장에서 돈을 벌고 싶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누구보다 절실함을 표현하지 않으면 떨어질 가능성이 컸다.

김 씨는 이번이 벌써 세 번째 면접이었다. 이전에는 해고자, 희망퇴직자, 신규채용 응시자 7명이 한 조를 이뤄 면접을 봤다. 이번엔 고약하게도 해고자들끼리 면접장에 들어갔다. 옆 동료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이 곤두선다. 그동안 동료들이 얼마나 복직을 원해왔는지, 해고 생활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상기해본다. 그제야 언짢았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는 3차 면접에서 소신껏 대답했다. “해고 생활은 내가 선택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내 선택은 쌍용차였습니다. 그래서 들어가야 합니다. 동료들과 다 같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소원입니다”라고 말했다. 1차부터 3차까지. 매번 면접관들은 잔인한 질문을 던졌고, 그도 언제나 똑같은 대답을 했다. 그는 그렇게 면접에서 ‘또’ 떨어졌다.

그도 간절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귀와 입을 막고 공장으로 돌아가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그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내 친구 무창이가 자기 새끼들 남겨놓고 죽었어요. 무창이 와이프는 우울증 걸려서 투신했고요. 지금까지 해고자와 가족 29명이 죽었어요.” 그는 한때 노조 간부를 맡아 전국을 돌며 해고자와 유가족을 만났다. “다들 나보다 어렵게 사는 거예요. 한 노모는 하루에 설거지, 식당 서빙, 여관 청소까지 ‘쓰리잡’을 뛰어요. 몸이 안 좋아서 일을 안 받아준다고 하소연하는 유족도 있었어요. 무창이, 유가족들 생각이 나는데 어떻게 안 울어요. 어떻게 혼자 복직해요.”

집에 돌아오자 아내가 면접은 잘 봤느냐 물었다. 그는 소신대로 말했다고 답했다. 아내는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그래, 잘했다”라고 말했다. 불과 사흘 전, 회사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소식에 들떴던 아내였다. 아내의 들뜬 목소리에 그의 어머니도 방에서 뛰쳐나와 반가워했었다. 자녀들의 눈빛도 기대로 가득 찼다. 하지만 가족들의 희망은 또 한 번 물거품이 돼 사라졌다. 그는 아직도 자녀들에게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김 씨는 다시 해고자 생활로 돌아갔다. 그는 평택항만에서 4년간 사료 청소 일을 했다. 평택항만에는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옥수수 껍질과 야자 껍데기가 들어왔다. 중장비로 나르지 못한 사료는 직접 삽으로 치워야 했다. 매일 아침 6시에 출근했고, 자정이 넘어야 집에 들어갔다. 한 번은 대형 장비 와이어가 끊어져 중국인 노동자가 즉사하고 한국인 관리자의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작업은 중단되지 않았다. 대충 사고 현장을 걷어낸 곳에서 김 씨는 계속 일을 했다. 위험은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었다. 그는 매일 쌍용차 공장을 그리워했다.

3월 17일 3차 면접장. 해고자 이 씨에게 면접관이 물었다. “관리자가 돼 팀원을 뽑아야 한다면 어떤 사람을 데리고 일하겠습니까?” “상급자로서 부하직원이 공구 정리를 제대로 못 하면 어떻게 대처하시겠습니까?” 복직한다면 ‘관리자 마인드’를 가지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는 질문인지 사상검증인지 모를 면접을 견뎌냈다. 1차, 2차 면접에서 떨어졌던 그는 3차에서 최종 합격했다. 아내가 준비해준 정장과 구두 덕분이었을까. 복직을 했으니 이제 주말부부 신세도 끝이었다. 쌍용차 옥쇄파업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이들이 벌써 고2, 고3이 됐다. 이제는 떳떳하게 아버지가 노동자로 살아왔던 일들을 얘기해주고 싶다. 그는 반년 넘게 몸담은 평택 삼성반도체 공장을 나왔다.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했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이제 원래 그가 있던 자리, 쌍용차 공장으로 돌아가면 된다.

하지만 그에게서 기쁜 내색은 찾아볼 수 없다. 동료 해고자들이 자꾸 눈에 밟혀서다. 복직 소감을 묻는데 자꾸 동료들 얘기만 털어놓는다. “이번에 세 명이 떨어졌는데 남 일이 아니에요. 저도 1차, 2차 면접에서 2배수로 계속 떨어졌잖아요. 면접을 볼수록 간절함이 강해지고, 떨어질수록 고통은 커져요. 그래서 어떤 때는 아예 면접 대상자가 아니길 바라기도 했어요. 한껏 기대를 높여놓고, 50%는 떨어뜨리는 게 얼마나 상처를 주는데요.”

[출처: 김한주 기자]


면접을 거부했던 3월 15일

사실 이 씨를 비롯한 해고자들은 3차 면접을 거부했었다. 앞서 3월 14일, 회사는 쌍용차지부를 배제한 채 해고자들에게 직접 전화를 돌려 면접을 통보했다. 면접대상자 집에 전화해 가족들에게 면접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지부 통제를 벗어나 면접을 보게 하려는 전략이었다. 회사는 공장 안에서 일하는 동료를 앞세워 회유하기도 했다. 한 조합원의 동료는 “쌍용차지부가 먹고 살게 해주냐? 그냥 면접 보고 공장 들어와”라고 말했다. 해고자들은 다음 날인 15일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고 ‘들러리 복직’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전원 복직을 요구하며 27일째(3월 26일 기준) 단식 중인 김득중 지부장을 외면할 수 없었다. 장대비가 내리는 15일이었다.

“너무나 간절히 원했던 날이 어제(14일)였는데, 그 간절함을 잠시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함께 웃으며 공장에 들어가는 날까지 버텨보겠습니다.”(김범철 조합원) “면접 본다고 아내가 청심환까지 사줬습니다. 솔직히 다 집어치우고, 면접 보고 싶은 마음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회사가 2배수로 장난치는 걸 끊기 위해 어렵게 결정 내렸습니다. 130명 다 복직할 때까지 싸우겠습니다.”(김중식 조합원)

회사는 곧바로 대응에 나섰다. 면접에 응하지 않을 시 차 순위로 넘기겠다는 것이었다. 사측은 해고자 복직 순서 리스트를 갖고 있었다. 이번 면접에서 8명의 해고자를 채용한다는 계획이었다. 1번부터 8번까지의 해고자가 면접을 거부하면, 9번부터 16번까지를 부르면 그만이었다. 만약, 다음 차 순위에 속한 조합원이 면접에 응한다면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게 된다. 3월 15일 이미 조합원 한 명이 지부 결의에 이탈해 당일 면접을 봤다.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아야 했다. 김득중 지부장은 조합원들에게 면접에 응할 것을 요청했다.

그렇게 3월 17일 해고자 면접만 뒤늦게 진행됐다. 16명 중 윤충렬 수석부지부장과 김정우 전 지부장 2명은 회사의 일방적 채용 강행에 대한 항의로 면접을 거부했다. 15일에 면접을 본 한 명을 제외한 13명이 면접을 봤고 8명이 붙었다. 해고자 2명은 복직을 포기하는 대신 자녀의 신규채용 TO 면접 자격을 얻었다. 그렇게 해고자 10명이 줄었다. 그럼에도 남은 해고자는 아직 120명이다.

이번 면접은 4월 2일부터 시행된 주간연속2교대제에 따른 것이다. 주간2교대제가 시행되면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63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들게 된다.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일자리가 늘어나 상당수의 해고자를 복직시킬 수 있다. 지난해 12월 노노사(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쌍용자동차기업노조, 쌍용자동차)는 주간2교대제 도입, 신차 출시 시점에 해고자를 복직시키는 데 합의했다. 해고자 3, 희망퇴직자 3, 신규채용 4의 비율로 채용하는 것도 이때 결정됐다. 합의에 따라 주간2교대제는 시행을 앞두고 있고, 신차도 출시됐다. 아직 지켜지지 않은 것은 오직 해고자 복직뿐이다.

[출처: 김한주 기자]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단식

김득중 지부장은 해고자 전원 복직을 위한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어떻게든 남은 해고자 120명의 복직 시한을 못 박겠다는 의지다. 그는 지난 1월, 쌍용자동차 모회사인 인도 마힌드라 그룹 회장을 만나기 위해 53일간의 인도 원정 투쟁을 벌였다. 여독도 풀지 못한 채 곧바로 단식 투쟁을 준비했다. 2015년 45일간의 단식 이후 망가진 몸은 지금까지도 말썽이었다. 그는 이번 단식은 조금 어렵다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비를 맞으며 기자회견을 했던 지난 15일에는 결국 농성장에 몸져누웠다.

그럼에도 그가 또다시 단식을 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10년 동안 같이 싸운 간부들도 상당수 복직했습니다. 남은 간부는 지-수-사(지부장-수석부지부장-사무국장) 포함 4명이에요. 4명이 옛날 같이 싸우기엔 버겁죠. 조합원들도 전국에 흩어져 생계 투쟁 중이고요. 이제는 정말 끝을 봐야 한다는 고민에서 인도 원정을 떠났습니다. 떠나기 전, 원정 투쟁에서 성과를 남길 경우와, 빈손으로 돌아올 경우를 생각했어요. 그 과정에서 단식까지 기획하게 된 것이고요. 지부장으로서 책임지는 방법은 단식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인도에서 돌아온 후, 2월 5일부터 단식을 결심했습니다. 범대위나 주변 동료들은 대화 노력을 이어가자며 만류했어요. 하지만 2월 교섭 과정은 지난했고, 더는 미룰 수 없어 2월 28일 조합원 총회 때 단식에 돌입하게 된 것이죠.” 그는 꽤 오래전부터 단식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단식에 돌입했던 2월 28일 조합원 총회에서 그는 몇 번이나 눈물을 삼켰다. 2시간의 총회가 이틀처럼 길게 느껴졌다. “조합원들이 처음으로 총회에서 속 얘기를 꺼냈어요. 모두 힘든 걸 알고 있으니까, 평소에는 속마음을 얘기하지 못해요. 그런 그들이 총회에서 9년 동안 살아온 얘기를 했어요. 복직에 대한 간절함도 꺼내 놓았고요. 조합원의 현실과 여건을 신경 써야 하는 지부장으로서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조합원들이 지부장 결의에 따라줬어요. 복직의 문턱에서 면접대상자 15명이 기회를 내려놓는 모습을 봤을 땐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습니다.”

지난 3월 22일.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국가폭력을 주도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됐다. 혐의는 뇌물수수와 횡령. BBK와 다스 관련 보도는 쏟아졌지만, 쌍용차 국가폭력 얘기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2009년은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지금까지 해고자와 가족 29명이 질병이나 자살로 숨졌다. 2016년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보건과학과 연구에 따르면, 쌍용차 해고자 79.1%가 우울증상을 보이고 있다. 불면증을 앓고 있는 해고자는 71.8%에 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3일 쌍용차 국가폭력에 대해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사 주체는 경찰개혁위원회다. 김정욱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은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우리를 괴롭혔던 경찰은 그대로”라며 “사실상 경찰청이 지휘하는 조사에서 진상이 제대로 밝혀질까 의구심이 든다. 조사기간이 6개월이라는데 쌍용차뿐 아니라 용산참사,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건에 이어 밀양, 강정까지 조사해야 한다. 실효성을 거두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쌍용차 해고 10년 역사는 분명 국가와 자본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여전히 노사 문제로만 책임을 떠넘긴다. 노동부 평택지청 관계자는 “쌍용차 문제는 노사가 대화로 풀어야 할 문제”라며 “양측을 만나며 실무협상이 끊기지 않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사측 관계자는 “쌍용차 범대위가 영업소 1인 시위를 하는데 회사가 교섭에 어떻게 응하겠느냐”며 “쌍용차 시장 점유율도 떨어지는 상황이다. 현재로서 채용 계획은 없다”고 했다.

해고자는 120명이지만, 남은 의자는 0개다. 시간이 갈수록 해고자의 고립감이 깊어진다. 지난 3월 18일, 해고자들은 평택 일대에서 쌍용자동차를 밧줄로 끌며 행진했다. 행진 대오가 거리에 설치된 10개의 문을 통과했다. 공장 출입문 사진이 담긴 마지막 문을 통과할 때까지 행진은 이어졌다. 그들은 고립감과 불안감, 두려움과 싸우기로 했다. 모두가 다 함께 공장 문을 열자고 다짐했다. 동료를 밀어내야 내가 살아남는 잔혹한 의자놀이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남은 의자는 0개지만, 앞으로 이들이 함께 만들어갈 의자는 120개다.(워커스41호)

[출처: 김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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