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죽이는 비밀도 지켜줘야 할까?

[워커스 사회주의탐구영역]

TV에 맛집이 나오면 으레 리포터가 맛의 비결을 묻는 경우가 많죠. 그럴 때면 종종 ‘이 집만의 비법’이라거나 ‘알려줄 순 없지만 대대로 전수받은 방법’이라는 등 영업비밀이라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그렇게 맛있다면 좀 같이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알려주면 좋을텐데, 아쉽지만 할 수 없이 직접 찾아가서 먹어보고 올 수밖에 없죠.

이런 수준의 영업비밀은 우리에게 그냥 아쉬움 혹은 직접 찾아가서 사먹어야 하는 수고로움 정도를 줄 뿐입니다. 그런데 영업비밀의 정체가 모종의 범죄와 연관되어 있다면 어떨까요? 맛집을 거론했으니 음식점 얘기를 조금만 더 해보자면, 예전에 공포특급같은 괴담집이나 유머집 같은 걸 보면 이런 얘기들이 있었죠. 맛집으로 엄청 유명한 음식점이 있었는데 그 비밀을 캐보기 위해 밤중에 몰래 찾아가봤더니 으슥한 곳에서 주방장이 혼자 무언가를 하고 있더라, 알고 봤더니 1)피가 철철 흐르는 끔찍한 짓을 하고 있더라거나 혹은 2)남은 음식을 다 쏟아 부어 새 음식처럼 만들고 있더라는 얘기.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가 되었건 과히 유쾌하지는 않죠.

그런데 괴담집에서나 볼 법한 이런 일들이 현실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물론 장소는 음식점이 아니라 공장과 사무실 등 각양각색이죠. 자본주의에서는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이 온갖 영업비밀을 만들어냅니다. 괴담과 달리 음식점 주인이 음식 맛을 내기 위해 실제로 사람을 죽였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만, 최첨단 상품을 생산하는 어떤 기업들은 실제 사람이 죽어나가는데도 아주 ‘당당하게’ 영업비밀이라며 아무 것도 밝힐 수 없다고 하죠. 때로는 사람을 죽이고, 때로는 국민 호주머니를 탈취하고, 때로는 국가를 수탈하기도 하는 영업비밀.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호구’취급을 받으면서 영업비밀로 가득한 세상에 살아야 하는 걸까요?


#1. 영업비밀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얼마 전 삼성이 큰 곤혹을 치렀습니다. 삼성의 노조파괴 공작 문건이 6천 건이나 드러난 거죠. 파장이 커지는 가운데 그로부터 2주일 뒤, 삼성은 부랴부랴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지회와 합의를 체결해 노동조합을 인정하겠다고 했습니다. 80년간 이어온 삼성의 무노조경영이 끝났다는 대서특필이 연이어 나갔죠.

그런데 과연 삼성이 드디어 노동권을 보장하겠다고 나선 걸까요? 삼성이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합의를 체결한 4월 17일 같은 날, 모순적이게도 삼성은 많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자신의 책임을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회피하는 데 성공합니다. 국민권익위원회 산하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삼성전자가 신청한 작업환경보고서 정보공개 집행정지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역시 같은 날, 산업통상자원부는 산업기술보호위원회 반도체전문위원회를 열어 삼성전자가 제기한 대로 반도체공장 작업환경보고서 일부 내용이 ‘국가핵심기술’을 포함하고 있다고 판정했죠.

말이 길어 어렵게 느껴지는데요. 천천히 살펴봅시다.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섬SDI 등 삼성의 전자산업 계열사에서 일하다가 많은 노동자들이 백혈병이나 혈액암 같은 희귀난치성 질환에 걸려 사망했습니다.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를 지속적으로 추적해왔던 단체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에 제보된 사망노동자 수만 118명에 달하죠. 이 노동자들이 직업병에 걸려 죽어간 이유는 작업과정에 들어가는 유해물질 때문이었습니다. 문제는 노동자들이 질병에 걸려 산업재해를 신청해도 입증책임이 피해노동자들에게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해당 작업과정에 어떤 유해물질을 사용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이 내용이 담긴 문서가 바로 작업환경보고서입니다.

그런데 삼성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이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국가 역시 좀처럼 삼성의 직업병 피해노동자들의 산업재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죠. 그러다가 지난 2월, 대전고등법원이 작업환경보고서는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으며 공익을 위해 공개해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노동부 역시 산업재해 입증을 위해 삼성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폰 공장의 작업환경보고서를 공개하라고 결정했죠. 그러자 삼성은 국민권익위원회에 정보공개를 막아달라고 집행정지를 신청하고, 법원에 소송도 넣고, 산업부에 작업환경보고서가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한다는 판정을 요청했습니다. 즉, 자신들의 작업환경보고서는 국가핵심기술이라 영업비밀이고, 따라서 공개할 수 없다는 겁니다. 결국 국민권익위가 집행정지를 결정하고 산업부도 국가핵심기술이라는 판정을 내리면서, 삼성은 노동부와 법원의 결정을 뒤집고 작업환경보고서 공개를 거부했습니다.

사람을 죽여 놓고 그 사람이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조차 영업비밀이라 밝힐 수 없다는 삼성, 그리고 그 삼성을 뒷받침해 준 ‘국민권익’위원회. 500년 전,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모어는 뒷날 그 이름만으로 명성을 떨친《 유토피아》라는 책에서 “영국에서는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라는 문장을 남겼죠. 당시 자본주의가 발흥하기 시작하던 영국에서 양모산업을 위해 토지에서 농민들을 내쫓고 울타리를 쳐 대규모의 양 목장을 만들자 이를 개탄한 것이었습니다. 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우리는 ‘영업’이 사람을 잡아먹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죠.

#2. 사회를 호구로 만드는 ‘영업비밀’

영업비밀을 앞세워 사회적 해악을 끼치는 건 삼성만 유별난 게 아닙니다. 삼성이 노동자들을 알 수도 없는 유해물질 속으로 떠밀었다면, 가습기 살균제나 유해 생리대처럼 독성물질을 은폐하고 소비자 피해를 양산한 기업들도 있죠. 꼭 어떤 물질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영업비밀의 핵심 중 하나는 바로 기업의 회계장부죠. 기업들은 회계장부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을 피합니다. 얼마나 많은 이윤을 벌어들였는지, 어떤 돈을 어디에 얼마나 썼는지를 감추고 싶다는 건데요, 업계 용어로는 ‘마사지’라고 한다나요, 회계장부를 공개하는 경우에도 전문가들을 동원해 기업의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도록 ‘적당히 가다듬어’ 발표한다는 거죠. 지난 2009년 쌍용자동차에서는 사측과 회계법인이 회사 회계장부를 조작해 대규모 부실을 그야말로 ‘만들어냈고’ 이로 인해 2천 명이 넘는 노동자들을 해고하겠다며 구조조정을 밀어붙였습니다. 그 여파로 29명의 쌍용차 노동자와 그 가족이 목숨을 잃었죠.

이번에 공장 문을 닫고 2,600여 명의 노동자들을 내보내면서 국가의 재정지원까지 뜯어가겠다는 GM은 어떤가요? 부채비율은 85,000%에 달하는데 대부분이 본사가 고리대로 강제로 떠넘긴 것이고, 100원의 매출을 올리면 원가비용만 90원 이상이 빠져나가는데 인건비 비중은 오히려 낮은 희한한 적자구조. 이 이상한 비용구조의 실체를 밝히라고 하면 “영업비밀이라 공개할 수 없다”면서 줄곧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며 노동자들의 희생만 주문합니다. 한편으로는 대강 잡아도 무려 5천억 원 이상의 정부지원을 내놓으라면서 부실원인을 밝힐 핵심 회계자료는 내놓을 수 없다는 GM. 정부 역시 노동자들은 희생시키면서 세금 퍼주는 호구 노릇을 자처하고 있는데요. 정부는 2002년 대우차를 GM에 팔아넘기고 2010년 GM과 또 한 번 계약을 맺었죠. 대체 어떤 합의를 했기에 지금 이 꼴이 나도록 아무 것도 못 한 것이냐, 합의내용을 공개하라는 요구에 정부의 답변은 한결 같습니다. “GM과 비공개를 약속했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 이러면서 지금 또다시 GM과 비공개 합의를 진행하고 있죠. GM의 이윤과 비밀을 지켜주면서 정부 관리들이 손해 보는 건 없습니다. 피해를 떠안는 건 노동자들과 세금을 바치는 국민들뿐이죠.

앞에서 휴대폰 같은 전자제품을 만드는 노동자들이 영업비밀로 어떻게 희생당하는지를 얘기했는데요, 그렇다면 그렇게 만든 휴대폰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우리는 어떨까요? 얼마 전인 지난 4월 11일 대법원은 이동통신사들에게 통신요금 원가산정 자료를 공개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통신망은 공공재 성격을 띤다는 판결이었는데요. KT,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 국내 이동통신 3사는 모두 재벌그룹 소속이죠. 이들은 값비싼 통신요금으로 수익을 거둬들이면서도 그 통신요금의 기준이 되는 원가내역은 영업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공개를 결정한 자료도 2005~2011년 기간에 국한한 것인데요, 이동통신사들은 ‘당연하게도’ 영업비밀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불만을 표했습니다. 또한 통신업 특성상 통신망 구축 초기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기 때문에, 초기투자를 지난 특정 시기의 원가내역만 보면 마치 원가는 적게 들이면서 가격을 높게 책정한 것 같은 ‘왜곡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왜곡효과가 걱정이라면 초기투자내역까지 전부 투명하게 공개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보수언론과 경제신문들은 시장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라며 길길이 날뛰고 있죠. 그런데, 사실 지금의 재벌그룹 산하 이동통신 3사는 원래 국영기업인 한국통신 소속 공기업들이었습니다. 이걸 민영화해서 지금의 이동통신 3사가 만들어진 거죠. 국가자산을 점유하고 국민 호주머니를 털어먹으면서 막대한 이윤을 챙기게 해 주었던 것이 바로 영업비밀이라는 방패막이였던 겁니다.

#3. ‘신성한’ 영업비밀은 없다

영업비밀이라는 미명 하에 노동자와 소비자들이 목숨을 잃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까지 지출하는데도 영업비밀을 고수하는 이유는 단 하나, 기업의 이윤창출 때문입니다.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앞서나가기 위해서건, 비용을 최소화해서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건, 아예 비용구조 자체를 숨겨 이익을 부풀리기 위해서건 말이죠. 통신비 원가공개 판결에 대해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가 언론에 전한 메시지는 의미심장합니다. ‘수도나 전기처럼 공기업도 아니고, 수익을 추구하는 민간기업에 대해 영업비밀인 원가를 공개해 요금과 연계하는 것은 억지’라는 건데요. 거꾸로 보면 민간기업의 수익추구라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국가재정, 공공자산까지 수탈하고도 ‘신성하게 보호해야 할 비밀’로 숨겨주는 게 과연 합리적인 걸까요?

한 번 생각해봅시다. 정말 적은 비용으로, 안전하게, 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기술이 있을 때 꼭 하나의(혹은 몇 개의) 기업이 독점할 게 아니라 그 기술을 공개하고 공유한다면, 혜택도 넓히고 혹시 잘못된 게 있어도 더 쉽게 찾아내 빨리 고칠 수 있지 않을까요? 각자의 기업이 각자의 이윤을 위해 경쟁하며 생산하는 게 아니라 사회의 필요를 위해 생산이 이루어진다면, 회계장부를 숨기거나 조작해 비용절감을 핑계로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일도 없지 않을까요? 노동자들이 생산과정을 직접 통제한다면, 유해물질이 넘쳐나는 걸 알면서 그걸 감출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애초에 스스로의 생명을 위협하는 유해물질을 사용하지도 않겠지만 말입니다.

이윤창출의 주요 수단인 영업비밀은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하지만 방금 보았듯 사회주의에서는 영업비밀이 존재할 필요가 없죠. 자본에게는 영업비밀을 ‘침해’하는 게 비합리적일지도 모르지만, 노동자들을 비롯한 사회구성원들에게는 영업비밀 자체가 생존과 생활을 침해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자본의 합리성이 평범한 우리들에겐 지독한 비합리인 것이죠. 영업비밀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윤을 낼 수 있었다? 이 말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영업비밀이 없고 사회 전체가 기업들을 소유하며 통제한다면, 그 이윤은 몇몇 자본소유주가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의 이익으로 누릴 수 있을 겁니다. (워커스 4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