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라는 코르셋

[워커스] 코르셋 벗기

[출처: 사계]

유아기를 한 마디로 정의하라면, 사람이 살면서 가장 많은 상처를 받는 시기라고 말하고 싶다. 거대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사물들 사이에서 매 순간이 충격과 공포의 연속. 아이들이 하루 동안 우는 만큼 오늘 내가 울었다고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워진다.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는 내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속한 상황과 내가 지닌 물질이 한 아기를 행복하고 건강하게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미 자신들의 싸움을 시작한 어린 친구들을 도울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동시에 나는 턱없이 무시되고 소외된 채로 아이를 기르고 있는 많은 엄마들의 짐도 나누어지고 싶었다. 20대 중반을 넘어선 여성으로서 그들은 나의 엄마이기도 했고, 친구이기도 했으며, 동생이기도 했으니까. 이것이 내가 비출산주의자로서 유아 교육업 종사자가 된 이유이다. 지극히 사적이고 소소해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을 것 같지만, 이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상황은 생각보다 잦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유아 교육업계에 종사하는 여성에게 으레 ‘모성애’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생각하는 ‘모성애’는 곧, 길거리에서 아이만 보면 덥썩 안아 들고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나 내 아이는 낳고 싶은 게 당연하다는 마음가짐을 필수 조건으로 수반한다. 그들의 앞에서 아이를 보면 담담히 인사를 건네는 모습, 혹은 아이가 태어난 뒤 내가 맞닥뜨릴 현실을 고민하는 모습을 들킨 순간에는 ‘모성애’에 맞서 최선을 다해 내 나름대로의 사랑과 진정성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추상적이고 평면적이고 그 때문에 폭력적인 그들의 ‘모성애’없이도 내가 이 회사에, 이 업계에 존재할 필요와 정당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 상황은 종종 내가 그들이 생각하는 ‘그’모성애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죄로 자신을 변호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럴 때면 나는 정말로 억울해진다. 회사 안과 바깥의 사람들이 나에게 “너는 애도 안 낳는다며 000은 왜 다니냐? 돈 벌려고 다니냐”라고 물을 때마다, 돈 벌려 다니는 게 아니면 회사를 왜 다니냐는 대답을 삼킨다. 동시에 출산과 육아 휴직 후 복직하지 못한 수많은 선배들의 얼굴과, 낮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남자라는 이유로 최종 합격한 사원들의 당당한 얼굴을 생각하게 된다. 진정으로 진정성 콘테스트 같은 게 있어서, 아이를 낳은 여성이 1위, 낳을 여성이 2위, 자식이 있는 남성이 3위, 그 아래로 아이를 낳을 의향이 없는 여성들이 미혼 남성들과 함께 실력 경쟁을 통해 자신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증명하는 구조라고 가정해 보자. 정말 그렇다면 회사의 대표가 남성인 것은, 임원의 대부분이 육아의 ‘육’자도 경험해본 적 없는 남성인 것은 어떻게 설명될 것인지.

결핍된 것은 모성애가 아냐

설명이 안 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 나는 언젠가부터 스스로에게 모성애 코르셋을 들이밀고 있었다.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라는 내 말에 조용히 나를 향하던 몇 쌍의 눈초리를 지울 수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모성애’가 없으니 남들보다 조금 더 실력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으로 퇴근 후에 외국어 학원을 다니느라 기진맥진해지기도 했고, 아이디어를 낼 때에는 내가 방금 낸 아이디어가 조금 ‘모성애적’이었다고 생각하며 혼자 기뻐하기도 했다. 죄책감이나 피해의식 같은 게 자꾸 자라났다. 아이가 있는 진짜 엄마들이 나와 같은 죄책감과 피해의식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에야 잘못이 있는 쪽은 우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엄마들에게 ‘모성애’를 기대하고 강요하는 시선의 주체였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에게 있을 모성애를 가정하고, ‘그것’이 없는 나를 생각했던 것이니까. 나는 이 피해-가해의 싸이클을 그만 끝내기로 결심했다. 우리에게 결핍된 것은 모성애가 아니라, 각자의 사랑을 부를 이름들이다.

그 이름들을 생각하고 불러주는 일이 내가 나로서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자랑스런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그것이 단순히 ‘모성애’라고 부르기에 너무나도 구체적이고 입체적인 삶과 사랑을 겪고 있는 엄마와 아이들을 진정으로 존중하는 방법일 것이다.[워커스 41호]
덧붙이는 말

글쓴이 | 대학에서 문학과 인류학을 공부했다. 2016년 페미당당 활동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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