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사전투표소 접근성, 지난 대선보다 고작 0.8% 나아졌다

사직동주민센터 사전투표소 찾아간 장애인들, 엘리베이터 없는 2층 투표소에 ‘좌절’

  지방선거 사전투표 마지막 날인 8일, 사직동사전투표소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접근할 수 없는 엘리베이터 없는 2층에 설치된 것에 항의하며 장애인단체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출처: 비마이너]

지방선거 사전투표 마지막 날인 8일, 서울 종로구 사직동사전투표소가 설치된 사직동주민센터에는 사람들이 붐볐다. 투표용지가 7장이나 됐지만, 신분증 확인하고 투표용지 받아 기표하고 거주지로 보낼 봉투에 투표용지를 담아 투표함에 넣기까지 딱 5분이면 된다. 전국의 어느 투표소에 가도 내가 사는 동네의 투표를 할 수 있는 이 간편함 덕분에 8일 오후2시 기준 전국 투표율은 벌써 15%를 넘겼다. 동시간대 2014년 지방선거 투표율보다 2배 높아졌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장애인들은 높은 계단 문턱에 또 가로막혔다. 사직동사전투표소는 주민센터 2층에 마련되어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주민센터 1층 마을복지팀 건물에 임시기표소가 마련되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본인확인을 위한 기기와 투표함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투표사무원이 신분증을 건네받아 대신 본인확인을 하고, 기표한 투표용지도 다시 투표사무원이 전달받아 2층으로 올라가 넣어줘야만 한다. 제대로 된 비밀투표가 보장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것이다.

사전투표는 2014년 지방선거에서부터 시작되어 이번이 벌써 네 번째다. 그러나 사전투표소의 장애인 접근권 문제 개선은 여전히 더딘 상황. 지난해 실시된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전체 3516개 사전투표소 중 장애인이 접근 불가한 곳이 무려 644개로, 전체의 18.3%나 됐다. 당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등 장애인단체들은 엘리베이터 없는 2층 투표소 문제 개선을 강하게 요구했고, 지난해 5월 5일 사전투표 둘째날 삼청동사전투표소(삼청동주민센터) 앞에서 이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장추련이 올해 사전투표소를 조사한 결과 전체 투표소 3512개 중 614개(17.5%)가 여전히 휠체어 장애인의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난해보다 겨우 0.8% 개선되었을 뿐이다.

  사직동사전투표소는 계단으로 2층에 올라갈 수 없는 사람을 위해 1층에 임시기표소를 마련했으나, 신분증 확인,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는 등의 행위를 투표소 직원이 대신히야 하는 문제 때문에 비밀투표가 온전히 보장될 수 없었다. [출처: 비마이너]

  투표소 직원들이 이형숙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의 전동휠체어를 들어서 2층으로 옮기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출처: 비마이너]

장추련 등 7개 장애인단체는 이날 11시 사직동사전투표소에 모여 장애인 투표소 접근권 제한 문제 개선을 요구했다. 이형숙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지난해 투표 할 때 엘리베이터가 없는 2층에 투표소가 설치되어 있어서 직접선거도 못하고 비밀투표도 보장받지 못했다”면서 “집에 우편으로 내가 장애인이라고 거소투표 신청을 하라고 안내문이 왔다. 하지만 내가 당당하게 직접 투표장에 나와 투표할 권리가 있는데 왜 비밀투표도 보장되지 않는 거소투표를 해야 하나? 다시는 이런 안내문을 받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이 소장은 투표를 하기 위해 투표장 입구까지 나아갔지만, 예상대로 계단 앞에서 좌절해야 했다. 투표사무원들은 1층에 마련된 임시투표소에서 투표를 할 수 있다고 안내했지만, 그는 비밀투표가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는 투표를 할 수 없다고 맞섰다. 결국 남성직원들이 전동휠체어를 들어올려 2층까지 가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투표지원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청각장애인 이진경 씨는 투표를 하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으나 수어통역이 가능한 안내원이 없었다. 다른 안내원의 손에 글씨로 “안 들려요”라고 써주자 그제야 “잠깐 기다려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5분여를 기다린 끝에 안내원은 다른 투표소에 있는 수어통역사와 영상통화를 연결해 줬다. 영상통화로 안내를 받은 끝에 이 씨가 투표를 마치기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20여분이나 걸렸다. 이 씨와 동행한 박미애 장추련 활동가는 “투표소의 구조가 서로 다른데 다른 곳에 나가 있는 수어통역사가 영상통화로 안내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청각장애인 이종운 씨는 앞에서 어렵게 투표를 하는 모습을 보고, 투표안내원과 필담을 택했다. 이 씨는 “수어를 할 줄 모르는 청각장애인도 있으니 투표장에 미리 잘 정리된 안내문이 있다면 불편하게 필담을 나눌 필요가 없을 텐데, 그런 부분이 고려되지 않아 아쉽다”고 전했다.

전체 지방선거 사전투표소 중 수어통역사가 배치된 곳은 259곳으로 7.4%에 불과하다. 56개 투표소 중 9곳에 수어통역사가 배치된 울산이 비율이 가장 높고(16.1%), 세종시의 경우엔 단 한 곳에도 배치되어 있지 않다.

11시 반부터 1시간이 넘도록 휠체어를 탄 장애인 십여 명이 투표를 하기 위해 기다렸지만 역시 투표를 하지 못했다. 이날 현장을 지켜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어느 누구나 참정권이 있고 따라서 투표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 하는데, (장애인 접근이 가능한) 사전투표소를 100% 확보하지 못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다음 선거 때는 더 많은 사전투표소가 확보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기사제휴=비마이너]
덧붙이는 말

이 기사는 참세상 제휴 언론 비마이너의 글입니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하금철 비마이너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