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단체 “DNA법 즉각 개정하고 위헌적인 DNA 채취 중단하라”

위헌 결정 난 DNA법…수집한 정보 폐기까지 갈 수 있을까?

헌법재판소가 불복 절차를 두지 않은 DNA 채취를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하면서 검찰이 위헌적인 DNA 채취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강력범죄 재범을 막기 위해 제정한 DNA법을 그동안 검찰은 노동조합 조합원, 장애인, 철거민 등 사회적 약자에게 과도하게 적용해 비판이 거셌다. 이에 따라 그동안 수집한 DNA 정보 역시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25개 노동조합 및 사회단체는 4일 오후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동안 부당한 DNA 채취제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온 우리 단체들은 헌법불합치 결정을 환영한다”면서 “정부와 국회가 DNA법(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을 즉각 개정하고 검찰은 위헌적인 DNA 채취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DNA 채취대상자는 시료 채취 및 등록 과정에서 신체의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 기본권을 제한받는다. 또 검찰은 DNA 데이터베이스에서 당사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서 나아가, 유전자 일부가 일치하는 가족이나 성씨 전체를 수사대상으로 삼는 ‘가족검색’을 추진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채취영장으로 강제로 DNA를 채취당한 이들은 영장에 불복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기회조차 없었다. 채취대상자 DNA를 채취당할 만큼 중대범죄자인지 재범가능성이 있는지 제대로 된 검토도 이뤄지지 않았다. 헌재가 지적했듯 채취대상자를 범죄수사 내지 예방의 객체로만 취급하고 인권을 침해해 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헌법소원을 청구한 당사자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참가해 검찰의 폭력적인 DNA 채취 과정 등을 증언했다. 직장폐쇄로 출입금지된 공장 점거와 서울 금천구의 한 아울렛 점거로 각각 유죄 선고를 받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KEC지회 조합원들과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임원들이다.

이미옥 금속노조 KEC지회 수석부지회장은 “DNA 채취 시 소명 기회도 주지 않았고, 협조하지 않으면 체포하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채취당사자 48명 중 수치와 두려움으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도 무리하게 강요를 한 것은 국가가 자행한 폭력”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최소한의 삶을 지키기 위해 점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낙인찍기에 불과한 DNA채취를 그만두고 노동자를 향한 폭력을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금속노조 유성지회 조합원들 역시 아직 DNA 채취를 요구받고 있다. 엄기한 금속노조 유성지회 부지회장은 “임금 삭감에 대해 관리자에게 항의했을 뿐인데 관리자 감금이라는 죄목을 쓰고 벌금을 받았다. 흉악 범죄도 아닌데 DNA 채취를 요구받았고 지회장은 얼떨결에 받았다. 판결문을 떼러 갔을 뿐인데도, 채취 시도가 있어 거부했던 적도 있다”고 증언했다. 엄 부지회장은 “노조 파괴로 1년 2개월 만기 출소한 유시영 회장에게도 그런 요구가 있었는지 알고 싶다”라며 “청와대, 국정원, 경찰, 검찰, 노동부가 한통속이 돼 노조 파괴에 나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용산참사 사건으로 구속된 천주석 씨는 감옥에서 강제적으로 채취당한 DNA 데이터 삭제를 요구했다. 천 씨는 “계속 거부했지만 교도관들이 판결문을 가져와 DNA를 채취했다”라며 “철거민을 흉악범 취급하며 DNA를 채취해 갔는데 이러한 정보는 삭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 역시 “부양의무제, 장애등급제 철폐를 요구하며 투쟁해 왔는데 그런 우리에게 예비 범죄자 낙인을 찍는 것을 경험했다. DNA 채취를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자 ‘형량이 무거워진다’라거나 ‘벌금이 많아진다’는 협박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노동자, 노점상, 장애인을 언제나 관리 감독하려 하고 통제하려는 저의를 외면하지 않겠다. 지금껏 구축해 놓은 자료를 삭제하라”고 덧붙였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DNA채취 문제 당사자들은 검찰에 민원을 접수했다. △노동조합, 사회단체 활동가에 대해 기발부된 DNA 영장집행을 즉시 중지하고 DNA 영장 청구 또한 즉각 중단할 것 △헌법불합치 결정에 이른 사건 청구인의 정보는 물론 위헌적으로 채취된 모든 DNA 신원확인정보를 즉각 삭제할 것 △정부와 국회는 DNA법의 위헌적인 조항을 개선하기 위한 개정안 마련에 즉각 착수할 것 등이 그 내용이다.

김태욱 금속노조 법률원장은 “그동안 DNA 채취 대상 범죄가 너무 광범위하게 설정된 게 문제였다. 살인이나 강간 같은 강력범죄 말고도 파업을 범죄시하는 국가이다 보니 노동조합 조합원들, 행정법 투쟁하는 분들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처법)로 걸려 대상이 됐다. 반드시 법개정으로 바뀌어야 할 사항”이라고 꼬집었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사람의 피, 침, 모발 등 DNA감식시료 채취영장 발부절차를 규정한 DNA법 8조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에서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헌법불합치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용산 철거민, 쌍용차 노동자들이 이전에도 DNA 채취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2014년엔 ‘국가가 과잉하여 DNA를 채취하고 보관하지 않는다’며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DNA법 8조는 검사가 채취에 동의한 대상자에게 채취거부권을 고지하고 서면동의를 받도록 정하고 있다. 채취영장 발부 과정에서 대상자가 입장을 밝히거나 불복하는 등의 절차는 없다.

헌재는 "채취영장 발부과정에서 의견 진술 기회를 절차적으로 보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영장발부에 불복할 기회를 주거나 채취행위 위법성 확인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구제절차를 마련하고 있지 않다"며 "재판청구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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