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꽃동산, 원장들의 부동산?

[워커스] 사회주의탐구영역



#1. 왜 동생은 유치원에 가지 못했을까

살면서 처음으로 ‘유니폼’을 입는 게 유치원 혹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부터라고 하죠. 사실 개인적으로 유치원과 단복은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IMF 위기로 온 나라가 혼란스럽던 1998년 초, 동생이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 아버지가 정리해고를 당했었죠. 당시 동네 아파트단지 안에 유치원이 하나 있었는데, 어릴 적 기억으로도 짙은 남색의 단복이 꽤나 멋들어졌습니다. 집에서 코앞에 있었으니 당연히 동생이 그 유치원에 갈 줄 알았고, 부모님도 아버지 해고 전에 그곳에 등록을 하셨던지 단복까지 받아왔었죠. 그런데 원비가 생각보다 비쌌던 모양입니다. 당시 첫째였던 저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이렇다 할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두 아이에게 들어가는 교육비가 커지는 것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부모님은 어쩔 수 없이 동생을 원비 부담이 좀 더 적은, 대신 집에서 떨어진 곳에 보내기로 결정하셨던 듯합니다. 정식 유치원은 아니었고, 아이들 미술학원을 겸해 어린이집 비슷하게 운영하던 곳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어린 동생이 원래 다닐 줄 알았던 유치원의 단복이 퍽 마음에 들었던지, 다른 곳에 가기 싫다며 그 옷을 입고 주저앉아 울면서 떼를 쓰던 기억입니다. 부모님에게도 20년 전의 이 일은 아픈 상처로 남아 자식들에게 가장 미안했던 때라고 하시죠.

이 유치원은 사립이었습니다. 집 근처엔 마땅한 국공립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 없었고, 그나마 한두 개 있던 공립 유치원은 초등학교 병설이라 학급 수가 턱없이 적었기 때문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어렵죠. 의무교육도 아니고, 지금처럼 누리과정 지원이라는 것도 없었으니 보육비는 전적으로 각 개인이 부담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공적인 유아교육 기반이 미비한 상태에서는 결국 지불능력이 보육수준을 결정하게 되죠. 요즘에는 누리과정 지원 등 보육지원정책으로 돈이 없어 유치원에 못 가는 경우는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대신 최근 사립유치원 비리라는 거대한 문제가 터져 나왔죠. 교육부에 따르면 사립유치원 지원금으로 들어가는 예산이 매년 2조 원 가량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교사 임금 보조, 학급운영비, 급식비 보조 등의 항목이 포함되어 있죠. 사립유치원은 이렇게 세금으로 주는 돈에다 학부모 부담금을 받아 운영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드러난 비리의 면면을 보면 이 돈으로 성인용품을 구매하거나 유흥주점을 가고, 급식비까지 횡령하는 등 점입가경이죠. 세금을 쓰면서도 제대로 된 회계 처리조차 없었고, 교육당국은 여론이 들끓자 이제야 과거 감사내역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사립유치원 원장들은 정부가 감사결과를 공개하고 규제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하자 ‘엄연한 사유재산’을 통제하려 한다며 반발합니다. 아예 유치원을 폐원하겠다며 공공연히 협박하기도 하는데요. 사실 보육과 교육을 비롯한 사회서비스가 광범위하게 민영화 ·시장화 되어있는 한국에서 새로운 일도 아니긴 합니다. 자본주의는 사유재산을 신성한 권리로 떠받들죠. 하지만 이번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는, 공적으로 제공되어야 마땅할 공공재를 사유재산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2. 세금 먹고 자라는 ‘신성한’ 사유재산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사실상 보편적인 교육과정이 되었습니다. 정부의 인구통계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의 만 0~5세 인구는 256만8516명입니다. 그런데 교육부가 발표한 <2017년 교육통계>를 보면 해당 연령대의 유치원 원아 수는 69만 3830명이고, 보건복지부의 <2017년 보육통계>에서는 만 0~5세 어린이집 보육아동 수가 144만3535명으로 나옵니다(유치원과 어린이집은 각각 교육시설과 보육시설로 구분되기 때문에 소관부처가 다르죠). 이 수치를 합하면 213만7365명으로, 해당 연령대 전체 인구의 83%에 해당합니다. 교육부가 최근 내놓은 <유치원 공공성 강화방안>이라는 자료에서는 대상 아동의 연령대를 만 3~5세로 잡고 있는데, 이 경우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합한 취원율은 93.2%에 달합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는 얘기죠.

문제는 이 가운데 국공립 시설이 대단히 부족하다는 겁니다. 유치원의 숫자로만 보면 2017년 기준 국공립은 4,747개소(국립은 3곳), 사립은 4,282개소로 국공립유치원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국공립의 경우 92%에 달하는 4,393곳이 주로 기존 초등학교의 남는 교실을 사용하는 병설유치원입니다. 이러다보니 학급도 대개 1~2개에 그치고 인원도 적게 받을 수밖에 없죠. 그렇기에 국공립유치원이 개소수는 더 많지만 정작 다니는 원아 수는 17만 명에 그치는 반면, 사립유치원 원아 수는 52만 명으로 국공립의 3배 규모입니다. 어린이집은 개소부터 확연한 차이가 납니다. 2017년 전체 어린이집 40,238곳 가운데 국공립은 3,157곳(약 8%)에 불과합니다. 보육아동 수를 보면 전체 약 145만 명 가운데 국공립 비중은 13%(18만7천 명) 정도죠. 이조차도 전체 국공립 어린이집 가운데 민간위탁 비중은 97%에 이른다고 합니다. 부산은 아예 100% 민간위탁이라고 하죠. 즉, 어린이집 대부분은 민간의 손에 맡겨져 있는 셈입니다.

이번 비리 사태가 공개되자 일부 사립유치원 원장들은 자신들이 자영업자라고 주장합니다. 유치원은 사유재산이니 자신들의 사익추구는 정당하다는 거지요.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사회적 낭비입니다. 누구나 누려야 할 보육서비스를 위해 국가재정을 투입하고 학부모들의 부담금까지 따로 들어가는데, 이 돈으로 원장들의 주머니를 채워주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은 양질의 보육과 교육서비스를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것이지, 운영자들의 돈벌이가 아닙니다. 심지어 내부 비리를 고발하는 보육교사들에 대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재취업조차 막아버리는 지금의 사립보육기관들은, 방해받지 않고 계속 세금을 떼어먹겠다고 행패를 부리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공공의 목적을 위해 공적 재원을 사용한다면, 그 운영과 통제 역시 공적 책임 하에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3. 네, 그게 사회주의입니다

“아이 교육을 정부가 하겠다는 것은 사회주의적 발상입니다.” 지난 10월 16일, 사립유치원들의 모임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주최한 토론회 겸 기자회견에서 이 단체의 비상대책위원장이 했던 발언이라고 하죠. 이들에게 이런 통찰력을 발견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사회주의에서는 정부와 국가가 보육과 교육을 책임지고 담당합니다. 그래선 안 될 게 있나요? 오히려 학부모들은 더 안심할 수 있고, 아이들에게는 온전한 양질의 보육과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고, 기관의 운영은 투명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데 말입니다.

사회주의자들은 보육과 교육을 비롯한 사회서비스의 국공영화와 공적인 통제를 주장합니다. 공공재가 이윤추구의 수단으로 활용될 때, 바로 그 이윤만큼 사회적 낭비가 발생하죠. 공적인 서비스는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면 되는 것이지, 그 중간에서 누군가가 사익을 빼가는 구조를 유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보육과 교육의 부담을 개인이나 가정에 전가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책임 하에 이 공적 서비스들을 제공하자는 것이죠. 사회주의에서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국공립을 기본으로 하게 될 겁니다. 물론 마음이 맞는 학부모들이 모여 협동조합처럼 운영하는 유치원을 만들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유아와 아동에게 기본적으로 제공해야 할 교육과정과 보육서비스를 보장한다는 전제 하에, 그리고 국고 지원을 받는다면 그에 따른 감사와 일정한 공적 통제 하에 운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보육기관이 사적인 이윤추구의 수단이 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누구에게나 국공립 보육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보편적인 권리이자 공공재로 보장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소유구조를 국공립으로 바꾼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원장이 사라진 대신 관리책임자가 되었든 아니면 해당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짬짜미’를 해서 세금을 떼어먹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지요. 그렇기에 소유구조 못지않게 민주적이고 공적인 통제가 중요합니다. 사회주의는 노동자들의 통제를 주요 근간으로 하는데, 이를 확대해서 보육노동자들과 학부모, 재원을 공급하는 지역사회 일원으로 구성된 상시적인 운영기구를 구성할 수 있을 겁니다. 필요하다면 국가기구에서 감사인원을 파견할 수도 있겠지만 일상적으로 모든 시설들을 관리하도록 하는 것은 비효율적일뿐더러, 이러한 민주적 운영기구가 존재한다면 중앙기구의 역할이 비대해질 필요도 없습니다.

국가가 유아교육을 책임진다고 해서 획일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보육과 교육체계는 모든 시설이 공통으로 갖추어야겠죠. 하지만 그 외에 다양한 프로그램들은 바로 앞서 언급한 당사자들로 구성된 운영기구에서 자유롭게 논의해 결정하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령 어느 유치원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조기 영어교육을 시키고, 어느 유치원은 시키지 않는 불균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 않을까 걱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주의에서 교육은 더 이상 특권과 불평등을 재생산하지 않도록 바뀐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우리 사회에서 유아 때부터 시작하는 조기교육 열풍은 더 좋은 학벌을 위해, 나아가 이를 통해 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조장되고 있죠. 하지만 사회주의는 직장이나 지위에 따른 특권을 철폐하고(이 점은 9월호에 실렸던 “자본주의가 약속한 직업선택의 자유, 얼마나 누려보셨나요?”를 참고해 주십시오), 교육 역시 학벌에 따른 차등대우가 아니라 보편적 권리이자 평등한 기회로서 보장합니다. 즉, 경쟁적으로 유아시절부터 무리하게 과다한 교육을 시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진정 아이의 행복과 자기발달을 위해 어떤 프로그램이 더 좋을지, 보육노동자들과 학부모들이 함께 논의해 결정할 수 있는 것이죠.


#4. 애를 낳든 안 낳든

사실 지난 수년간 보육정책은 급감하는 출산율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누리과정 등 보육지원정책에 예산을 투입하는데도 출산율이 계속 떨어지자 ‘무상보육’ 정책을 폐기하자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나오죠. 그러나 출산은 여성의 결정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고, 보육과 교육은 그 자체로 아이와 부모의 보편적 권리를 위해 보장돼야 하는 것입니다. 출산율이 오르지 않는다고 국가의 보육책임을 줄이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여성은 아이를 키울 조건이 마련된다고 자동적으로 아이를 낳는 기계가 아니죠.

물론 사회주의자들은 임신과 출산, 육아와 보육, 장기적인 양육과 교육에 이르기까지 개인과 가정에 전가되고 있는 엄청난 비용을 사회적 책임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경제적 비용뿐만 아니라 아이를 낳고 기를 때 여성이 겪게 되는 직장에서의 차별 등 사회적 불평등도 철폐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조건들은 분명 많은 여성들과 부부들이 선뜻 출산의 결정을 내리기 어렵게 합니다. 인구 자체의 재생산은 사회를 유지하는 근간이니 마땅히 사회적 책임으로 해결해야죠.

하지만 사회경제적 조건들이 마련된다고 해도 아이를 낳는 부담은 결코 완전히 해소될 수 없을 겁니다. 아이를 통해 또 다른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주의에서도 임신과 출산이 생물학적으로 여성의 삶과 시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부모-자식 간의 개인적 관계가 존재하는 한, 아무리 사회적 책임으로 보육과 교육을 보장한다고 해도 개인적 돌봄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 그리고 그 생명에 모종의 책임감을 갖게 되는 관계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여하간의 이유로, 사회경제적 조건과 무관하게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건 전적으로 그들의 자유입니다. 사회주의는 그들의 자유를 옹호하면서, 또한 조건에 구속받지 않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자 하는 이들의 자유를 온전히 보장할 것입니다.[워커스 48호]